복잡한 마음의 리뷰
1.
소설가 김중미 선생님이 쓴 에세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외할머니와, 아버지와, 자식들과, 식구들과, 이웃들에 대해 쓴 책이다. 20세기를 관통하며 살아온 이들의 삶이 그렇듯 한반도의 복잡한 역사 속에서 조그만 개인의 일상이 요동치고, 그러면서도 거대한 역사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고 단단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감정이 복잡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몰랐던 김중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사적인 친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김중미 선생님의 개인사를 샅샅이 알고 있는 정도는 아니고, 누구나 자기만의 개인사가 있듯이 그런 개인사를 읽는 게 무겁기만 한 일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아온 선생님의 밝고 씩씩한 면 뒤에 숨겨진 힘들고 아픈 모습들을 본 것 같아서 쑥스러울 따름.
마음이 무겁고 감정이 복잡한 두 번째 이유는 김중미 선생님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분들과 김중미 선생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읽으면서 자꾸만 우리 아빠, 엄마가 생각이 나고 엄마 아빠와 나의 관계가 포개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 부모님과 김중미 선생님의 부모님은 세대가 다르고, 살아온 지역이 다르고, 삶의 궤적이 무척이나 다르다. 하지만 자유분방하면서도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김중미 선생님의 아버지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우리 아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지혜롭고 자식에게 헌신적인 김중미 선생님의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우리 엄마가 보고 싶었다.
김중미 작가는 병원 간병사에게 딸이 작가라며 당신 꿈을 이뤄줬다고 자랑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지청구를 놓는다. "내가 아버지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작가가 됐나? 난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거 쓴 거야. 작가가 되고 싶어 쓴 게 아니라고." 그러고선 이내 후회한다.
"늙고 병든 아버지 앞에서 또 몽니를 부렸다. 아버지 때문에 글 쓰는 사람이 된 게 아니라고 끝까지 부르댔지만 공부, 성공에 집착하지 않는 아버지 덕분에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성장한 것을 틀림없다. 아버지의 지지 덕분에 어리바리하고 엉뚱하기 짝이 없던 아이가 단단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203쪽)
이 장면을 보면서 어쩜 김중미 선생님이 나랑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유명 작가에다 빈민운동을 수십 년 해온 활동가지만, 부모에게 역정 내는 모습이 나랑 똑같다는 게 어쩐지 웃음이 나고 또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나도 늘 이런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20대 때는 엄마랑 맨날 싸웠다. 엄마는 나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인데 나는 엄마의 생각이 너무 속물 같아서 그때는 그게 참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속물적인 것도 아니고 상식적이고 보편적이고 나름 합리적인 생각이었는데, 지나치게 이상주의자였던 당시의 나는 그걸 듣고 있지를 못했다. 아빠가 유튜브롤 보고 난 뒤 내 기준에서 틀린 말을 하면 면박을 주듯 말하곤 이내 후회하는 일은 지금도 반복된다(그렇더라도 김어준류 유튜브를 그만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나는 엄마 아빠와 싸우려고 공부하고 생각을 벼린 게 아닌데 어쩐지 엄마 아빠한테 가장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 거 같아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김중미 선생님도 그런다니 묘한 위로를 받은 기분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뛰어든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그런 부모의 곁에서 부모의 자식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활동가로 살아가고자 하는 김중미 작가의 고민과 생각의 과정을 보면서 내가 겪은 것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앞으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도 김중미 선생님처럼 가족주의를 싫어했고 의도적으로 가족주의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러면서도 나의 활동의 어떤 면들은 가족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다. 물론 그것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희생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내가 병역거부 하고 감옥에 가 있을 때 엄마 아빠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학생운동 하던 시절 경찰이 집에 나를 찾아왔을 때 혼자 있던 동생은 얼마나 무서웠을지, 나는 그런 것들을 몰랐거나 모른 척하고 지내왔으니까. 특히 엄마 아빠한테 받는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면서 내가 응당 해야 할 역할이나 내 몫에 대해서는 가족주의 거부한다는 핑계를 대온 것도 사실이다.
"엄마 아버지를 무조건 신뢰하고 사랑하던 시기를 지나 모든 것을 부정하던 시기와 의심하던 시기가 내가 어른이 되는 데 꼭 필요했다고. 그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엄마 아버지를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다고."(360쪽)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일을 직업으로, 삶의 방향으로 삼으려는 아이들이 한 번씩은 겪어야 할 자기부정 같은 게 아닐까. 어렸을 적, 아이들의 세계는 부모가 전부인데 더 넓은 세계로 나와서 그 세계마저 깨부수기 위해서는 먼저 엄마아빠라는 세계를 깨부숴야 하니까 몽니를 부리고, 못되게 말하고 그런 게 아닐까.
너무나 당연하게 가족의 사랑을 설파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어찌 가족 관계가 아름답기만 할까. 파괴적인 관계도 있고, 사랑하지만 서로를 옭아매는 것도 가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랑하는 경험과 사랑받는 경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무척 운이 좋은 일이다. 김중미 선생님도 나도 그런 면에서는 복 받은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2.
하미나 작가의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를 읽고 연달아 김중미 선생님의 <엄마만 남은 김미자>를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글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젊은 여성 과학연구자이자 작가인 하미나와 중년의 여성 빈민운동가이자 소설가인 김중미는 삶의 궤적만큼이나 글을 풀어가는 방식도 달랐지만, 이 두 편의 에세이는 여성 저자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대면한 글쓰기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두 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새삼 에세이 장르가 가지는 힘에 대해 느꼈고, 동시에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는 자각과 왜 쓰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하미나 작가는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에서 몸-글을 머리-글과 비교하며 옳은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는 논리정연한 머리-글에 비해 몸-글은 규정되지 않고 규정될 수 없는 물 같은 글쓰기라고 말했다. 좋은 에세이는 이렇게 몸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에서 김중미 선생님 또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자신의 삶을,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대하지 않는다. 사랑하면서도 도망치고, 짜증 내면서도 끌어안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관계와 감정의 복잡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글이 아니라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해하기 위해 쓰는 글.
하미나 작가는 몸-글이라고 했는데 여성적 글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때 여성이 생물학적인 여성을 뜻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돌보는 글, 살피는 글,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글. 반면 내가 주로 쓰는 글은 성명서, 기획서, 제안서, 보고서, 그리고 평화운동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쓰는 단행본까지 모두 알리고, 주장하고, 설파하는 글이다. 논리가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서 그 사람들을 잘 설득하는 글. 나는 내가 이런 글을 제법 특색 있게 잘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쓰는 이런 글들은 전형적인 머리-글이며 남성적 글쓰기다.
반대로 나는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는 매우 서툴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저항하는 평화>(오월의 봄, 2015)에서 이길준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남성은 트라우마가 왔을 때 표출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지요. 고통을 표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저항하는 평화, 170쪽) 세상을 분석하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게 자신에 대해서는 그것이 트라우마든 혹은 다른 감정이나 경험을 마주 보려 하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진단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병역거부자들이 병역거부 소견서를 쓸 때 어려워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병역거부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보자면 실패한 남성성이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남성성을 거부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20년 넘게 남성으로 자라온 세월이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남성성을 거부하거나 남성성에서 탈락한 이들조차도 남성적 글쓰기에 익숙하니 자신의 양심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게 아닐까?
<나를 갈라 나를 꺼내다> 리뷰를 쓰면서는 병역거부자들이 소견서를 쓰기 어려워하고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지점이 바로 몸-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제 한편으로는 나를 포함한 병역거부자들이 여성적 글쓰기-스스로를 마주하고 이해하기 위한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 전쟁이 나쁘고 어떻게 군대가 전쟁에 복무하는지, 이런 이야기를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하는 것도 물론 어렵지만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낯설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논리적으로 논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니 이런 글쓰기는 낯설고 어렵기 마련인 거다.
아니 무슨 책 두 권 읽으면서 병역거부 소견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확확 바뀌나 나 스스로도 좀 어이가 없지만, 이 혼란을 기록해 두고 계속 고민해 봐야겠다. 자신을, 자신과 가까운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치열하게 마주한 두 편의 에세이가 복잡한 고민거리를 남겼다.
나도 언젠가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에세이 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단순히 내 삶을 마주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 때문만은 아니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가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김미자의 삶뿐만 아니라 김미자의 주변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는 것처럼 에세이는 저자의 삶뿐만 아니라 저자가 맺는 관계를 솔직하게 바라보고 드러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솔직한 글을 쓸 자신이 없다. 역시 에세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장르이고, 나는 도전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