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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May 13. 2020

나는 데모하며 돈을 번다

활동가의 밥벌이


이용수 할머니께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21대 국회의원 당선자를 비판하는 기자회견 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원래는 윤미향 당선인이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언급한 피해자와, 당사자, 활동가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서 윤미향 당선자와는 다른 생각을 글로 쓰고 있었는데 주말이 지나고 정대협과 정의기억연대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 기사에서 제기하는 의혹은 의혹 축에도 끼지 못할, 악의적이거나 성실하지 못한 왜곡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갑자기 글 주제를 바꿨다. 내 의도와 별개로 마녀사냥에 편승하게 될 게 뻔하니까.


이 글은 정대협이나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글은 아니고, 활동가들의 노동과 생계에 대한 글이다. 계기가 된 것은 이번 사건이지만, 예전부터 활동가의 돈벌이, 활동가의 노동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너네 데모 한 번 나가면 일당 얼마 받냐?”     


수원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일이다. 우리 방에 뇌물 받고 들어온 공무원 아저씨가 한 명 있었다. 당시 나는 수감되기 직전 평택 대추리 투쟁 때 연행된 사건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었다. 비리 공무원 아저씨는 나에게 여러 차례 데모 한 번 나가면 얼마 받는지를 물었다. 동원된 게 아니라고 몇 번 말을 해도 자기는 다 안다며 일당이 얼마냐고 물어댔다. 화딱지가 나서, 남들도 당신처럼 그렇게 돈 받으면 아무 일이나 하는 줄 아냐고 소리를 냅다 지르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돌려 돌려 말하기도 했다.


그 아저씨는 분명 비난조로 나에게 말했다. 활동가들이 사회운동으로 돈을 버는 것이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만약 비난 받을 일이라고 하더라도 뇌물 받고 구속된 공무원이 하기에 적절한 비난인지는 모르겠다)   

   

활동가들이 사회운동으로 돈을 벌면 안 된다는 생각은 무작정 진보활동을 싫어하는 보수세력뿐만 아니라 활동가 그룹 스스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리 생각했었고 예전에는 많이들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없는세상을 처음 만들었을 당시 우리는 일부러 단체에서 활동비를 받지 않았다. 단체 활동가와 후원회원들 간의 위계를 허물겠다는 야심 찬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활동가들이 시민들의 후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면 시민들이 싫어하는 일에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서준식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인권운동사랑방이나 지금은 사라진 평화인권연대 같은 단체들도 활동가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고 대신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했다. 활동가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생계를 해결했다. 나 같은 경우는 대학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배들이 다달이 후원금을 모아서 주었고, 논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단체 활동을 했다.



활동가와 가난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당시엔 그렇게 활동할 수 있었지만 그런 방식은 아무래도 더 많은 것-좋은 학벌과 그에 따른 학연을 가진 이들에게 유리한 방식이었다. 그렇지 못한 활동가들은 대개의 경우 심한 가난에 허덕였다.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은 활동가들도 활동가들 사이에서나 여유 있는 거지 또래의 사회인들에 비하면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인권재단 사람과 인권운동 더하기가 함께 발행한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인권활동가들의 평균 급여는 180여만 원이었다(2019년 기준). 이는 상근활동가들의 평균이고, 단체의 사정상 반상근으로 일하는 이들은 평균 80여만 원을 벌었다. 나만 하더라도 운 좋게 임대아파트에 들어왔고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나도 크게 아픈 데 없고 자식 없이 혼자 사니까 최저임금으로도 잘 먹고 잘 사는 거지, 만약 위의 조건들 가운데 하나만 어긋났어도 이 급여로 활동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한국사회는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안정적이지 않은 곳이 되었고 활동가들의 생계 또한 여느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활동가는 사회운동의 전문성으로 돈을 버는 직업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활동가들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고 활동가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진보다.  

    

가수는 노래를 해서 돈을 벌고, 야구 선수는 치고 던지고 달려서 밥벌이를 한다. 배우는 연기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작가는 글을 써서 입에 풀칠을 한다. 마찬가지로 활동가는 사회운동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당연하다.

  

가수가 공연을 하고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작가가 책을 내고 독자를 만나는 것이 자신의 노동인 것처럼, 활동가는 사회운동이 자신의 일이고 노동이다. 정치적인 주장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고,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토론회를 기획하고, 국가나 기업의 거대한 폭력을 저지하기 위해 직접행동을 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피해자를 지원하고, 잘못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입법활동을 한다.     

 

간혹 ‘전문시위꾼’이라는 표현으로 활동가들을 폄하하기도 하는데 내 생각에는 폄하하려는 의도가 나쁜 것이지, 전문시위꾼이라는 표현은 틀린 게 아니다. 다만 시위는 활동가들이 하는 수많을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활동가는 실제로 다양한 액션-기자회견, 토론회, 직접행동, 대규모 시위, 교육활동, 입법 활동 들을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기획하고 조직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아마추어 선수들과 다르게 프로리그 선수들에겐 운동이 돈벌이인 것처럼, 자발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다르게 직업 활동가들에겐 사회운동이 돈벌이다. 다른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활동가들도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돈을 번다. 그 돈으로 밥도 사 먹고 술도 사 먹고 전문성을 더욱 갈고닦기 위한 노력에 쓰기도 한다.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돈을 버는 일은 떳떳하고 당당한 일이다.      


직업 활동가들에게 활동은 취미활동이나 봉사활동이 아니고 노동이며 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돈을 벌어야 한다. 나는 전쟁없는세상 일을 하며 돈을 받는 것이 떳떳하고 당당하다. 병역거부자의날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도, 강정마을에 연대하는 일도 내겐 소중한 사회운동이자 생계를 유지하는 일이고 노동이다. 내가 전없세에서 월급 받으며 강정마을에 연대한다고 해서 강정마을 투쟁에 누가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니 나는 그 월급 덕분에 더 안정적으로 연대활동을 할 수 있다. 활동가들은 월급 덕분에 더 열심히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충분히 재밌고 즐겁게 내 일을 한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욕구는 없지만 지금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면 좋겠다. 최저임금보다 더 많이 벌고 싶다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기왕이면 사회운동을 하면서 사회운동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금보다 더 많이 벌고 싶다. 내 일을 인정받고 싶다.

    

언론이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사회운동 전체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아무 말을 쏟아내니까 주변의 많은 분들이 활동가들을 걱정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참 고맙다. 그런데 고마운 글들은 또한 활동가들의 가난과 헌신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못마땅하기도 하다. '나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재밌게 잘하고 있는데, 내가 불쌍해야 해? 가난하면 불쌍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활동가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가난이 다 불쌍한 건 아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헌신하고 고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직업인들도 다들 열심히 살지 않나? 활동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서, 내가 재밌고 즐거워서 이 일을 한다. 활동가들에 대한 존중은 가난한 것을 불쌍하게 보는 거나 헌신하고 고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들의 전문성와 활동가들의 노동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활동가들이 가난하다고 불쌍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헌신하고 고생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되지 않으면 좋겠다. 특별히 다르게 볼 필요는 없다. 다만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활동가들이 하는 일의 전문성을 사회가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다른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활동가들의 노동도 노동으로 인정받고 그에 따른 합당한 경제적 대우를 받는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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