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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n 22. 2020

알 수 없는 본질적인 슬픔 같은 게 있어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신재욱 활동가 인터뷰


본질적인 슬픔에 끌려 활동가가 되었어요 

            

제주도 강정마을에 아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산호랑, 무밍을 알았어요. 제가 평화대행진 갔을 때 만났는데, 처음 갈 때 개인적으로 갔고, 같이 간 친구가 그 둘을 소개해줬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원래 포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 친구들한테 연락이 왔어요. 책 모임을 같이 하지 않겠냐고. 군사주의나 평화 관련된 책을 본다고요. 모임에 갔는데 지금 열군을 같이 하는 박석진 활동가도 있었어요.      


그때가 열군 처음 시작했을 즈음이었을 거예요. 책모임을 하다가 술자리도 하다가 그때 처음으로 열군이 뉴스레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걸 저더러 도와달라고 제안했던 거 같아요. 제가 돕겠다고 먼저 말했는지도 모르겠어요(하하하) 그냥 돕게 됐고 그걸 계속했어요.      


그러다가 2017년에 소성리에서 같이 가자고 했어요. 사드 장비 배치 막기 위해 며칠 돌아가면서 지키는 게 있었거든요. 같이 가서 밤도 새우고 보초도 서고 깊은 이야기를 하다가 박석진 활동가가 “뭐 하고 싶냐”고 물었어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회운동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 대답했더니, 열군 활동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저도 “하면 좋을 거 같다”고 했죠. 그때는 월급이라거나 그런 거 생각 안 할 때니까.    

  

원래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고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네요?    

 

네 그렇죠. 저는 되게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군대 다녀와서 저랑 비슷한 배경인 친구가 무슨 신학 세미나를 가지 않겠냐고 했는데, 저는 그때 아직 기독교에 관심이 많을 때라서 같이 갔어요. 근데 갔더니, 세미나 하는 사람들이 다 민중신학하는 형들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 많이 배웠죠. 같이 집회도 나가고, 공부도 하고. 그러면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신앙이라는 거와 사회활동이 약간 비슷한 점이 있는 거 같아요. 그때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 그런 문구였어요. 그때는 활동가들이 되게 헌신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물론 그런 측면도 없지 않죠. 어쨌든 그때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런 생각을 했다면 오히려 활동가를 안 할 수도 있지 않아요? ‘활동가로 사는 건 너무 고생스러우니까 보통은 나는 지지하더라도 활동가는 못 하겠어’ 이러기 쉬웠을 거 같아요.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개척교회 하시면서, 병간호도 하시면서. 제가 봤던 사람들 중에서는 노동 강도로 따지면 최고였죠. 그래서 그냥 그런 삶을 사는 걸 거부감 없이 생각했던 거 같아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5주년 행사에서 박래군, 박석진 활동가와 함께. (출처: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홈페이지)

   

목적의식적으로 활동가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연히 된 것도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게 천천히 활동가의 삶으로 들어온 거네요?  

   

그렇죠. 근데 그때는 사회운동 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던 거 같아요. 다만 졸업할 때가 되었고, 활동가라는 사람을 보게 되고, 그리고 약간 부채의식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 부채의식을 지금은 대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막연한 부채의식이 있었어요.     


보통은 나이 든 선배 세대들이 부채의식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광주 민주화운동에 부채의식 갖고, 대학생 많지 않던 시절에 대학을 다니던 사람들이 엘리트로 스스로를 자각하면서 부채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재욱 씨 또래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되게 막연하다는 거예요. 모든 것들을… 잘 기억이 안 나긴 하는데 용산 참사도 뒤늦게 알고, 강정마을도 알게 되고. 그런 거를 보면서 뭔가 되게, 약간, 저한테는 그런 데 대한 알 수 없는 본질적인 슬픔 같은 게 있어요. 뭔가 서글프고 그런 게 있는데... 그런 거랑 조응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어려운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요


언제부터 열군 사무국에서 일하기 시작한 거예요. 주로 무슨 일을 해요?     


2018년 3월부터 정식 출근했어요. 하지 않는 일을 말하는 게 더 설명하기 쉬울 거 같아요. 제가 하지 않는 일은 사람들한테 전화 돌리고 조직하는 일은 하지 않고, 그 나머지 일은 같이 일하는 활동가와 분담해서 해요. 책자나 자료집 편집, 웹자보 만들기 그리고 뉴스레터 제작이나 발송 같은 것은 제가 더 잘할 수 있어서 제가 해요.

지금은 상시적인 업무 말고 해야 할 큰 업무가 한국전쟁 70년 사진전 준비인데, 전시 관련된 건 거의 전담해서 하고 있어요.      


규모가 크지 않은 단체 활동가들이 그러하듯 이것저것 다 하는군요. 활동하다 보면 해도 티 잘 안 나고, 재미도 없고, 그런데 꼭 해야 하는 일도 있지 않아요?     


포스터 만들거나 웹자보 만드는 거는 재미가 없진 않아요. 디자인을 배운 게 없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이런 기능도 있네’ 이러고. 근데 너무 효율이 떨어지죠. 자료집이나 책 편집하고 교정교열 보고 그런 거는 좀 더 적성에 맞는 거 같아요. 근데 재밌는 별로 일은 없어요. 가끔 좋을 때는 준비한 행사가 성황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꽤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시고, 반응도 보여주시고, 그래서 끝났을 때가 가장 좋죠.     

 

업무 자체는 재밌는 업무가 아니어도 이런 일을 하는 게 즐거울 수도 있지 않아요?     

 

즐거움이라는 게 되게 넓은 개념인 거 같은데요. 사실 제게 ‘이게 너무 즐겁다 이건 나를 즐겁게 해.’ 이런 행위는 거의 없는 거 같아요. 활동에서는 즐거움 자체가 저에게 큰 동력은 아닌 거 같아요. 뚜렷한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녜요. 박석진이라는 개인을 보고 처음에 들어온 건데. 거기서 같이 방향을 잡아 나가고 이런저런 의미 부여를 하고, 그런 거를 조금씩 구현해나가는 즐거움도 있는 거 같아요. ‘이게 되는구나, 이게 되네’ 그런 것도 있는 거 같고.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활동가로 사는 게 재욱 씨한테 무엇을 주는지 궁금해요.     


저는 사실 활동가를 ‘제가 엄청 꼭 하고 싶습니다.’ 이런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그냥 하고 있는 차원에서 의미를 찾으면... 한국 전쟁 관련 사업을 하면서 학자들의 언어나 어려운 언어들을 가져와서 사람들과 만나게 하고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 더 흥미롭고 독해하기 쉬운 것들로 만드는 방식이 좋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주제 자체도 되게 아직까지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고 느껴서 그런 것들을 계속해나가는 거는 사회적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거는 조금 저한테 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한국전쟁 관련해서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연구활동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친숙하게 관련된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곧 하게 될 한국전쟁 70년 사진전에서 강사로 초청한 분 중 한 분이 김아람 선생님이라고 한국전쟁 피난민 관련한 연구를 하셨는데, ‘난민’이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게 연결된 거 같아요. 제 생각에는 허윤 선생님 같은 분이 그런 작업을 많이 하시는 거 같은데, 소설 같은 대중문화에 녹아있는 전쟁의 요소를 잘 찾아내서 좋은 언어로 전달하시는 거 같아요. 그런 데 관심 있어요. 그런 걸 활동의 영역으로 접목시킬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정부의 소성리 사드 배치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사진. 2020년 5월 29일.



활동가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꾸고 싶어요


직업활동가로 살면서 후회되는 순간은 없었어요?     


평화활동가가 된 거에 대한 후회라기보다는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좀 더 생각할 시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럼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직 미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있는 때 아녜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새로 취업을 할 수 있는 나이로는 거의 마지노선이라고 느껴요.     


한국전쟁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대학원을 간다거나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사실 다 돈이더라고요. 그래서 부담이 돼요. 가장 큰 고민은 ‘지속 가능한 활동가가 어떻게 될 수 있을까?’예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사람이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단체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되게 핫하고 잘 나가는 운동이거나 아니면 기반이 있지 않은 이상.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뭔가 해야 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면 누군가를 갈아 넣는 시간이 최소한 몇 년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것도 역량 있는 사람을 갈아 넣는 시간이 불가피하게 있어야 하는데...   

  

재욱 씨만 그런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많은 활동가들이 그런 고민 할 거 같아요. 제 또래만 해도 뭐 부자로는 못 사는 걸 알고 관심도 없지만, 이 일을 하면서 먹고는 살겠다는 생각은 해요. 계속 활동해오면서 쌓인 인맥, 정보, 방법들이 있고, 경험적으로도 어쨌든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으니까. 하지만 젊은 활동가들에게는 큰 고민일 수밖에 없고, 결국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길을 같이 찾는 수밖에 없는 거 같은데, 말은 쉽지만 현실은 어렵죠. 좀 덜 어려운 이야기를 해보죠. 활동가로서 재욱 씨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뭔가요?     


저는 마케팅 역량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활동가에게 필요한 역량은 시류에 잘 맞추고, 홍보랑 마케팅을 잘하고. 그런 거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렇고 같이 하는 활동가도 그런 것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거든요. 활동가가 되기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 게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마케팅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캠페인을 할 때 시각적인 디자인 감각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전략적인 사고, 뭐가 더 중요하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되고, 이런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정말 어려운 거 같아요. 우선순위, 잠재적 지지자 같은 걸 잘 판단하고, 우선순위에 필요한 언어가 뭐고 이런 것들을 잘 캐치해서 잘 말하고, 내 활동과 연관해서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주제를 잘 선정하고, 이거를 고리타분하지 않게 전달하고 싶어요.      


재욱 씨는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5년 후, 10년 후 어떤 모습이면 좋겠어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저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고, 이런 거를 좀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꼭 활동가라기보다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할 수 없는 것도 때로는 해야 하겠지만 제가 할 수 없는 거는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그런 상황에 있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 좋겠어요.      


저는 적당히 관심 있는 거에 대해서 열의를 가지고 ‘이건 좀 해보면 좋겠다.’ 그 정도의 스탠스, 그런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갈아 넣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역량 안에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2019년 아덱스 때 직접행동을 하러 가기 직전 평화활동가 동료들과 찍은 단체 사진 (출처: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재욱 씨에게 던진 질문은 번번이 내 예상 혹은 기대와는 다른 대답으로 돌아왔다. 세상이 활동가에 대해 오해하고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어쩌면 나도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활동가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질문을 던졌는지도 모르겠다. 


재욱 씨는 인터뷰 내내 흔들렸고, 그 흔들림이 재욱 씨 개인의 특성이자 활동가 재욱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단단한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그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다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특히 사회운동은 자신의 신념을 사회에 녹여낼 때 필연적으로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재욱 씨는 자신의 흔들림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신뢰가 갔다. 확 타올랐다 식어버리는 열정보다, 늘 생각하고 고뇌하는 마음이 더 오래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흔들림은 개인의 흔들림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젊은 활동가 대부분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시민사회운동이 건강하게 지속되려면 이 같은 흔들림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그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졌다. 





활동가이야기주간 2020 프로젝트의 '활동가인터뷰 공모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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