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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Oct 07. 2020

공정과 형평, 그리고 병역제도

짧은 메모 혹은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록


감옥에서는 일을 해야 한다. 감옥을 흔히 징역이라고 하는데, 한자 뜻을 보면 '징계할 징'에 '부릴 역'이다. 징계해서 일을 부린다는 뜻이다. 감옥 안에서 재소자들이 일을 하는 것을 '출역'이라고 하는데 이때 역도 부릴 역자다. 보통은 구분하지 않고 쓰는데 노역과 징역은 다르다. 노역은 벌금형을 몸으로 때우는 것이고, 징역은 실형을 살면서 일을 하는 것이다. 노역수도 원래는 일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교도소에서는 노역수에게 일을 주지는 않는다.


감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은 '외통'이라고 외부 공장일이다. 이 일이 인기가 있는 까닭은 일단 날마다 감옥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어서이고, 외부 공장으로 나가면 외부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월급이 쎄다. 지금은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수감생활을 한 2007년 교도소 내부 공장 일은 가장 높은 월급이 취사장으로 2만 원이 안 되었는데, 외통은 20만 원이었다. 1년을 하면 240만 원을 모을 수 있는 거다. 외통은 아무나 가지 못했다. 교도소가 보기에 탈옥 안 하고 성실하게 일 할 거 같은 사람만 보냈다. 


운 좋게 내 친구 병역거부자가 외통을 나갔는데, 출소 후에 외통 일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가 일한 공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일했는데, 고용허가를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 감옥에서 온 재소자,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 중인 청년처럼 열악한 처지인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문제를 일으키면 나라 밖으로 쫓겨나거나, 가석방이 없어지거나, 군대로 끌려가야 할 이들. 다시 말해 부당한 일을 겪어도 입 꾹 다물 수밖에 없는 이들. 한마디로 그 공장은 군대와 국적-사회의 정상성이 요구하는 정체성의 하층인 비국민 남성들을 싼 값에 부려 먹는 곳이었다. 


군사 안보를 비판하며 병역을 거부한 병역거부자와 기꺼이 국방의 의무를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는 산업기능요원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과연 국가의 안보는 무엇일까? 산업기능요원의 업무는 과연 안보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어떻게 군사 안보를 비판하는 이와 군사 안보에 동참하는 이가 같은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최근 여당 일각에서 BTS 병역특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병역은 입시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이고 아킬레스건이다. 자식의 병역 문제와 입시 문제는 유력 정치인들에겐 늘 화두가 된다. 공정과 형평성이라는 가치의 척도가 병역에서 이루어진다. 공정한 병역은 한국사회에서 사회 정의의 중요한 척도였지만 한편으로는 허구적인 신화다. 병역 제도는 유사 이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공정한 적이 없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두 모습인 징병제와 모병제 모두, 공정과 형평성을 기초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징병제는 그것이 시민권의 확장과 맞물여 있긴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라는 기획의 핵심 이벤트였다. 국민과 비국민의 구분은 근대 국민국가의 중요한 정체성이자 성장 동력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군대에 가는 나라는 존재한 적이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애초에 군대의 목적이 공정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병역 문제는 공정과 형평성의 담론으로만 접근해서는 발전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정재계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때로는 합법적으로 자신(혹은 자식)의 병역을 면제받거나 불법적으로 병역 비리를 일으키는 것은 사회정의를 해치는 일이고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 정의나 특권층의 권력형 비리 근절로 접근해야지 병역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접근하면 깨진 독에 물 붓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병역 문제를 접근할 때 우리가 공정성과 형평성보다 더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그것은 안보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다. 안보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노력은 무엇인지, 그 노력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과연 한국군의 국내외 역할은 무엇이고 그 역할에 걸맞은 규모와 형태는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게 없이 특권층 자제의 병역비리 혹은 보통 국민들의 병역 기피 이런 것만 이야기하니까, 문제 해결은 안 되고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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