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편
신체 기능에 꼭 필요한 3대 영양소라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있다. 그게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그러니까 신체 기능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정신 기능에 꼭 필요한 건 무엇이 있을까. 요즘은 속된 말로 현대인의 3대 영양소는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이라고 한다. 몸에 좋진 않지만 정신을 혼동시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현대를 살아가는 구성원 중 한 명으로써 나는 그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고 있을까. 물론이다. 나는 어쩌다 이것들을 마주하게 되었을까. 오늘은 그 세 가지 중 알코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종교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음주라는 것은 나의 삶에서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부모의 손에서 자라고 그 틀에 놓여 있는 동안에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우리만의 룰이었다. 어느덧 부모의 손에 잡히지 않을 시기가 되었을 즈음엔 꿈을 이뤄가며 자취를 하고 있었더랬다.
좋아하는 것을 꿈으로, 기어코 그것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는 마냥 행복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 못한 채 망상만 가득했던 시기. 값싼 가격에 퀄리티는 좋게 하려던 탓에 내 몸은 순식간에 망가지고, 아침엔 촬영을 밤에는 편집을 하며 지냈다. 그조차도 행복했다. 내가 바라던 것이었으니. 그 정도는 얼마든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자취하던 18평 남짓한 공간, 서울에 반지하라 쳐도 이렇게 넓은 공간과 저렴한 임대료. 가장 작은 방은 창고로 사용하고 중간 방은 편집실 겸 침실로 사용했다. 가장 큰 방은 자그마하게 촬영 공간을 만들었고, 야외 촬영이나 출장이 아닌 시간에는 그곳에서 혼자 사진을 찍었다. 그 공간을 다 꾸미기도 전에 문제가 터졌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작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매번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일을 하는 공간, 그렇다고 뒤를 돌면 자는 공간. 일을 하면서도 다 밀어놓고 쉬고 싶을 때가 많았고, 잠을 자면서도 돌아가는 작업 프로그램의 소리에 밤 잠을 뒤척였다. 혹여 랜더링이 실패할 때의 '띠롱'하는 알람소리 나 랜더링이 완료되었을 때의 '띵-'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악몽이라도 꾼 듯 헐레벌떡 잠에서 깨 작업물부터 확인하게 됐다.
환상으로 가득 찼던 것은 결국 허상이었다. 생각보다 더 처참했던 현실에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현금으로 돈을 받던 것이 이것도 일이라고 점점 큰돈이 들어오다 보니 사업자를 만들 필요가 생겼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난 뒤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누군가와의 계약을 따내기 위해선 PDF에 담긴 포트폴리오 따위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세상은 술과 담배로 이루어져 있구나,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금기시하던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일 하려면 술을 잘 마시진 못해도 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같이 다니던 학원의 한 선생님이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몇 사람들과의 술자리 약속이 잡혔다. 그게 처음이었다. 그때의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나. 남들은 자연스러운 모습, 그 안에서 붕 떠있는 나라는 존재. 그렇게 앉은자리에서 막걸리 7병을 들이부었다. 은은한 단 맛과 톡 쏘는 청량감. 취기가 도니 기분은 좋고 머릿속에 잡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람들의 잘 마신단 소리에 기분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괜찮냐는 옆 사람의 말에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생각보다 괜찮다고 얘기하고 일어나는 순간, 바닥으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화장실을 가면서 눈으로 보던 평평한 세상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며 도착한 화장실에서부터 엄청난 취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 옷가지만 벗어던진 채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1년 만에 푹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 날 숙취도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속 쓰림과 두통, 어지러움이 나를 덮쳤다. 해장 같은 건 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학원 앞 카페의 꿀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단 걸 먹으면 괜찮아진다는 걸 어디선가 주워 들었으니까. 익숙한 얼굴들이 같은 음료를 시켜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생각보다 괜찮네, 잘 맞나 보다. 그게 그들의 평이었다.
술은 마시고 싶지만 실수는 하기 싫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술 약속은 뒤로하고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술들을 매일 마셨던 것 같다. 맛있는 안주는 덤이었다. 그렇게 주량을 스스로 알게 됐다. 내가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한 술을 적당히 마시고 자면 기분 좋게 잠이 들고 숙취 없이 일찍 깰 수 있다는 것도.
외로이 지내던 서울 살이에 단골 술집이 생겼다. 한 때 사랑하던 사람과 그곳을 매일 같이 방문했다. 그렇게 술이 일상이 됐다. 나의 옛 모습을 알던 사람들은 걱정하는 사람 반, 이제야 네가 술을 먹는구나. 약속을 잡자는 사람 반이었다. 그렇게 평소 모르던 그들의 이면을 마주하기도 했다. 나도 저렇겠지, 생각도 했다.
처음의 술은 미지의 세계였다. 실수하지 말아야지요 시작했다. 그다음의 술은 저렴한 수면제였다. 그다음은 잘 마신다는 소리를 듣기 위한 매개체였다. 그 이후의 술은 대학교의 교양과제 같은 거였다. 이제는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외로움 한 잔 달라며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외로운 밤의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지금의 술은 어떨까. 힘들면 이따금씩 떠오르는 무언가가 되었다. 사람을 판가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동시에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주보단 맥주가, 막걸리보단 와인이, 위스키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 이왕이면 맛있게 먹고 싶고,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엔 시간이 너무 기니까. 적당히 음미하고 조금씩 즐겨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것들이 취향이 되었다. 사진을 찍다가 커피를 만드는 지금의 나로서는 꽤나 즐거운 일탈이 되었다.
당신에게 술은 어떤 의미인가. 의미를 두고 먹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까. 가끔씩 떠오르는 에피소드들도 있을 것이다. 뭐든 적당히 취미로 즐기면 좋다고들 하지 않는가. 몸에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식적으로 충족시켜 준다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지 않을까. 그렇다고 음주를 권장하는 글은 아니다. 알아주시길.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자주 가는 합정동 포차의 '갓파더'다.
** 술 마시며 즐겨 듣는 노래는 Sza의 'Kill Bill' , 최유리의 '숲'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술이 있으려나.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나는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종종 공유해 주시길 바라면서, 다음은 카페인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