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세상에 내가 태어난 것은, 내가 바란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사랑 덕이었다. '자식'이라는 말은 일순간 서로 남이었던 두 남녀가 눈이 맞아 사랑을 해서 맺어진 결실. 드라마 같은 절실한 사랑일 수도, 어쩌면 삶 속에 녹아들어 자연스레 맺어진 평범한 사랑일 수도 있겠다.
누구나 꿈꾸는 영화 같은 사랑이 있지 않을까. 나 또한 그랬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면 와. 하고 탄성을 내지를 만한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슬프고 끝끝내 이뤄낸 순애 같은 사랑 말이다. 그런 사랑을 하고파서 난 사람을 볼 때면 돌다리를 두들기다 못해 너무 두들겨 부숴버렸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흔히 말하는 '자만추'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잘 노는 사람도 아니었을뿐더러 이성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생각나는 몇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키가 많이 작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운동만 하던 아이였다. 운동을 하게 된 이유도 키가 작아 무시를 받았기에 시작했다. 무언가 목표가 있으면 지금의 놀림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친구도 몇 없이, 사람과 척을 지고 운동만 했었다. 그 덕에 결과는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호기심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연애는 더더욱이나 경험이 없던 나는 그저 환상 속에 빠진 연애를 했다. 애정이란 이름으로 집착을, 질투란 이름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렇게 몇 번의 연애는 연애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시작하고 빠르게 져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름의 경험을 반복하면서, 사용하는 언어부터 고쳤다. 그 당시엔 고리타분한 옛 것의 언어들을 많이 썼다. 유식해 보이고, 그걸 쓰는 어른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으니. 그 덕에 애늙은이 같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지.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많은 걸 뒤바꾸기 시작했다. 운동으로 짧게 고수하던 머리를 기르기도 해 봤고, 애늙은이 같던 말투도 고쳤다. 맨날 입던 운동복을 버리고 인기 좀 있다는 옷을 사입기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눈치도 많이 보았다. 그런 노력 아닌 노력 덕분인지 애늙은이 같다는 말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평으로 바뀌어갔다.
사람마다 첫사랑의 정의가 다르다고 한다. 나에게 있어 첫사랑은, 처음으로 내가 무언갈 포기하고 열렬하게 사랑했던 기억이라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그 기억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생까지 운동만 하던 나는 부상을 입은 뒤로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대학은 가야 한다는 그 시절 어른들의 조언으로 나는 4년 동안 8번의 입시를 거쳐서 대학에 합격했다. 운이 좋았지. 지금도 내가 잘해서 합격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학에 붙었구나라는 기쁨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동기들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지식도 부족했던 터라 조용히 지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었다.
대학을 다니며 연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늦었고, 시간 낭비에 돈 낭비란 생각이 들었으며, 그렇게 연애를 하면서 까불고 다니기엔 대학을 너무 늦게 들어갔다는 생각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의는 적당히 가운데 앞자리에서, 시작하기 10분 전에는 착석하고, 끝나면 바로 자리를 뜨는 생활을 1학기 동안 반복했다. 계획은 완벽했다. 학교가 음대였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누가 1학년은 놀아도 된다고 말했던가. 실기 위주의 수업이 많았던 터라 공부를 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에 충분했나 보다. 학기가 끝날 즈음 한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강의가 끝난 직후에.
내가 다니던 대학에선 1학년들은 전공 필수를 제외하면 거의 같은 강의를 들었어야 했다. 전공도 달랐던 그 친구는 강의 내내 앞자리를 고집하고, 같은 시간에 와 같은 시간에 나가는 내가 눈에 밟혔다고 했다. 자기도 학교를 늦게 왔고, 우연히 같은 전공에 자기와 동갑인 친구가 있어 둘이 같이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그렇게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그 친구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주 4번 들어야 하는 한 시간짜리 교양을 한 학기 10번 남짓 빠질 수 있었는데, 모으고 모아두면 기말고사 기간에 강의에 참여하지 않고 과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난 그 시간을 활용해서 남들이 강의를 들을 때 학교 앞 카페에 가서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하곤 했다.
점심시간, 어김없이 커피를 마시며 시험을 준비하던 중 누군가 앞자리에 앉았다. 얼마 전 친해졌던 그녀였다.
(편의상 A라고 해볼까) A는 여기서 뭐 하냐 물었고, 난 시험공부를 한다고 대답했다. A는 강의에 늦어 그냥 빠지기로 했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A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같이 공부를 했다. 시간은 그렇게 저녁이 되었다. 늦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녀. 갈 거냐는 말에 저녁 먹으러 갈래?라고 답했다. 뭐에 홀린 듯 A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A의 사정과 얘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A는 오늘이 재밌었다고 했다. 남은 기간 같이 공부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버스 정류장에 A를 데려다주면서까지 얘기는 계속됐다.
버스를 타는 A의 모습을 바라봤다. 자리에 앉더니 창문을 열고 외쳤다. 내일 몇 시까지 학교 앞 카페로 오라고.
그 모습이 꽤나 웃겼다. 연락처도 공유하지 않고 학교에서 만나면 만나나 보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 반나절을 함께 했다. 돌아가면서도 연락처는 나누지 않았다. 마치 어린 시절 몇 시에 놀이터에서 보자는 아이 같았다. 그렇게 다음날 카페에 갔을 땐 안쪽 자리에 A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2주간은 A와 함께 점심에 만나 점심을 먹고,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했다. 만날 때마다 서로 개인적인 얘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시험 기간 마지막 주간은 각 전공별로 실기 시험을 보는 주였다. 그때만 되면 연습실과 강의실엔 무서운 적막만 흐르고, 시험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소리만 들렸다. 시험이 진행되는 층에서는 잡담도, 연습도 할 수 없었다. 조교들이 길을 통제했고, 시험장에서 나온 사람들의 한숨소리만 들렸다.
숨 막혔던 시간이 흘렀다. 그 학기는 내가 있던 전공이 마지막으로 실기를 보는 학기였다. 약 15분의 시간 동안 무슨 정신으로 시험을 봤는지 모른 채 녹초가 되어 나왔다. 그 앞에는 A가 서 있었다. 고생했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A. 둘 다 고생했으니 맛있는 걸 먹자며 손을 잡고 끌고 나가던 A의 뒷모습.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또다시 홀린 듯 그녀를 따라갔다. A가 좋아한다는 곱창을 먹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당충전을 하자며 카페에 갔다.
메뉴를 정하는데 그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었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토핑을 뭘 추가하지, 당도는 몇으로 하지 고민하는 A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잠깐의 착각이겠거니 했다. 뒤이어 내가 메뉴를 고르자 자기도 좋아하는 메뉴라며 나눠먹자고 했다. 역시 둘 다 맛있다며 고민할 필요 없이 진작 나눠먹을걸, 외치던 모습이 생각난다.
카페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많이 먹었으니 대교를 건너가자고 얘기하던 A였다. 오랜 기간 입시를 준비하면서 늘 이곳을 지났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이 대교를 혼자 걸어가는 게 그렇게도 싫었다고 치를 떨었다. 누군가와 여기를 걸어본 건 처음이라 했다. 그렇게 말하는 A의 옆으로는 자전거가 쌩- 지나갔다. 그러는 A를 보며, 난 세상에 안 좋은 기억들은 좋은 기억으로 덮으면 된다고, 그렇게 살아갈 추억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날 바라보던 A. 대뜸 손을 잡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럼 좋은 기억으로 덮어줘. A가 말했다. 무슨 용기였을까, 아니면 또 무언가에 홀린 것일까, 손을 잡고 걷는 A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가 좋아한다 했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앞서 걷던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맞춰갔다.
A는 대교 끝에 걸친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오늘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오늘을 못 잊을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아마도 너에게 호감이 생긴 것 같다는 말을 뒤로 A는 버스를 타고 이전처럼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흘러가는 강물과 길게 뻗은 다리,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나. 물 위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탄 버스가 떠나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