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3대 영양소 (2)

카페인 편

by 순간

신체 기능에 꼭 필요한 3대 영양소라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있다. 그게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그러니까 신체 기능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정신 기능에 꼭 필요한 건 무엇이 있을까. 요즘은 속된 말로 현대인의 3대 영양소는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이라고 한다. 몸에 좋진 않지만 정신을 혼동시켜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현대를 살아가는 구성원 중 한 명으로써 나는 그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고 있을까. 물론이다. 나는 어쩌다 이것들을 마주하게 되었을까. 오늘은 그 세 가지 중 카페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안국역 근처에 있는 오래된 찻집에 종종 가곤 했다. 카페인 얘기에 웬 차?라고 할 수 있겠으나 차에도 꽤나 많은 카페인이 있다는 사실. 차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그 당시 보이차를 마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꽤나 고상하고 멋져 보였다는 것이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찻집 사장님과 이런저런 세상 얘기를 하며 차를 마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반해 따분한 것조차 잊어버리고 주는 차를 넙죽 받아먹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집에 가자는 아버지의 말에 가게를 떠나자마자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엉엉 울었었지.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셨다.


문제(?)는 그날 밤에 일어났다. 머리만 대면 잠들던 내가 밤 잠을 꼬박 지새운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내 뒤척이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본 것인지 다음날 아버지는 잠이 잘 안 오더냐 물으셨다. 그렇게 카페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먹는 커피와 차엔 카페인이 있는 거구나. 난 아직 어려서 그걸 많이 마시면 잠을 못 잘 수 있는 거구나. 그 생각을 한 후로 잠을 참 좋아하던 나는 카페인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초등학생 시절, 더위사냥이라는 아이스크림과 가끔 학부모회에 있는 믹스커피를 타와서 마시는 친구들을 보면 참 신기했다. 어떻게 저걸 마시지, 쟤는 잠을 잘잖아? 싶은 생각도 있었고 한 편으로는 되게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걸 으스대면서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자니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의 어머니가 너도 한 입 먹어보겠냐며 건네준 믹스커피는 내가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쓰고 단 걸 왜 먹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커피 같은 건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되고 내 첫 직장은 스타벅스였다. 무려 그곳에서 3년이나 일 했었다. 한 달 정도 일하니 같이 일하던 직원이 커피는 안 좋아하냐 물었었다. 아마 일 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거다. 그 쓴 걸 왜 먹나 하는 말에 그래도 너는 커피를 파는 사람인데 마셔봐야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맛은 없지만 먹으면 막 신이 났다. 괜히 심장이 뛰고 텐션은 절로 올라가고. 가뜩이나 급하게 움직이던 내가 더욱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씁쓸하게 느껴지던 커피의 맛도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한 찰나, 뭐랄까 쓴 맛 뒤에 숨은 다른 향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3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면서 커피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피곤하니까 한 잔, 스트레스받으면 스트레스받는다고 또 한 잔, 당이 떨어지면 당이 떨어진다고, 바쁜 피크 시간이 되기 전이면 미리 준비한다고 한 잔. 이젠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지.


그때의 커피는 생존의 도구였다. 다른 누군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 직원이 되고 다양한 매장에 발령이 나기 시작했을 때부턴 더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스스로 공부하기도 했다. 이 커피는 어떤 맛이 나는구나, 무슨 원두가 요즘 유행이구나, 어느 카페가 유명하구나 하는 것 말이다.


여러 사정으로 일을 그만둔 뒤에도 커피는 내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연애를 하면 분위기 좋은 카페를, 그 사이사이 늘 메가리카노를 달고 살았으니.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의 성공과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돌고 돌아 다시 전 직장에 입사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전국에 몇 안 되는 스페셜티 매장에 어쩌다 입사하게 되어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고 있다. 생각해 보면 가성비 좋은 직업이 아닐까 싶다. 피곤할 때 늘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있다는 것. 유일한 장점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에 안주하며 열심히 적응해나가고 있는 지금의 나이다.





당신에게 카페인은 어떤가. 누군가는 아침 출근길을 함께 동반하는 직장 동료일지도, 또 누군가에겐 쉬는 날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매개체일지도 모른다. 술은 안 마셔도 커피는 마시는 사람도 있듯이 커피는 꽤나 가까이 접할 수 있는 MP포션 정도가 아니려나.


** 최근에는 합정에서 카페 투어를 했다. 좋은 카페가 많더라

** 근래 먹은 원두 중에서 가장 비쌌던 건 파나마 에스메랄다 엘 벨로, 가장 괜찮았던 건 라운지 클라리멘토의 #167.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면 어디인가. 당신이 자주 마시는 커피는 무엇인지 또한 궁금하다. 마지막 편은 니코틴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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