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평소에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법한 일들은 잔뜩 해버린 하루였다. 메신저에 새로운 친구로 저장된 그녀의 프로필을 누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프로필 사진에 저장된 많은 사진들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집 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이 넘게 가야 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메신저 창에 새로운 친구임을 알려주는 붉은색 동그라미 표시는 내 볼 색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환승통로를 지나며, 머뭇거리기를 반복하다 이내 멈춰 섰다. 집에 잘 들어갔냐는 연락 한 통. 딱 그 한 마디를 보내고 싶었다. 단순히 궁금하니까. 너무 늦은 시간이라 걱정되니까. 내가 하는 행동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합리화를 했다.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망설이던 마음은 이미 뒤로한 지 오래였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일 분이 한 시간 같이 느껴졌다. 괜히 보냈나 싶어 머쓱해하는 와중에 답장이 왔다. 겨우 잠재웠던 가슴은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사람이 단 몇 글자에 이렇게나 마음을 쓸 수 있는 것인가. 환승통로를 지나는 구간은 내 걸음으로 2-3분 남짓이면 되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난 하늘을 휘젓고 다녔다. 얼굴은 주전자처럼 들끓었고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피가 쓱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몇 번의 대화가 지났을까, 입꼬리는 귀에 걸리다 못해 저기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곳이 지하철 안이었는지도,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설렘이었다. 그녀가 보내오는 글자 하나하나가 평소 먹어보지 못했던 진귀한 음식처럼 다가왔다. 천천히 오래도록 곱씹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정신없는 첫 학기가 끝나고 종강이 찾아왔다. 여유를 느낄 새도 없이 계절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와 보냈다. 같은 수업을 듣는 김에 밥이나 먹자. 끝나고 심심한 김에 놀러 가자. 수많은 핑계를 대며 그녀와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도 커져가고 있었다.
계절학기가 끝나는 날 그녀와 저녁을 먹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상대적인 시간 안에서 서로의 마음은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 밥을 다 먹고 나오는 길에 그녀에게 물었다. 호감이 생길 것 같다고 한 뒤로 너의 마음은 어떠냐고. 몇 초의 침묵, 그 짧은 시간 바둑기사들의 수 읽기처럼 하얗고 까만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녀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그게 뭐라고 심장이 철렁거렸다. 한바탕 태풍이 훑고 지나간 자리처럼 느껴졌다. 침묵은 꽤 긴 시간 이어졌다. 그녀가 타고 가야 하는 버스가 몇 번이나 지났을까. 자기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 겁이 많다며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몇 가지 이유들로 고민이 되더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무엇이든 부담 주지 않고 사랑만 주고 싶은 게 나의 사랑하는 방식이라. 힘들면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그녀를 집에 가는 버스에 태워 보냈다.
쓸쓸한 마음을 안고 뒤를 도는 순간,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렇지만 고백은 네가 하라며 그녀는 대답을 떠넘겼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하루 종일도 댈 수 있어. 그게 내 대답이었다.
첫 글을 작성하고 꽤 긴 시간이 지나서야 2편을 쓰게 되었다. 쓰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그 시간 안에 여러 일들을 보내면서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된 탓에 글이 갑자기 마무리되었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