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미미하게나마 유지하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자 연락처를 들어가 본다.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연락처에서 만만한 사람을 고르곤 한다.
그러다가도 이내 생각을 멈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괜히 민폐 끼치지 않으려 한다.
마음이 답답할 적이면 혼자서 어딘가로 떠나곤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정해진 게 아니라서, 여럿보단 혼자가 가볍게 떠나기 좋으니까.
낯선 곳을 혼자서 돌아다닐 때에 마주하는 불편함 마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나 할까.
가만 생각해 보면 외로움으로 고독을 달래던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밑바닥에 빠지는 기분이 들면 한 없이 내려가보곤 했다. 그 끝이 어딘지 알면,
내 우울의 역치가 어느정도인지 알면, 빠져나오는 방법도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반년이 흘렀다. 전역하자마자 일자리를 구했고, 나름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처음으로 긴 휴가를 다녀왔다.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기도 했지만, 일을 하지 않아 불안해하며.
적당한 휴식과 적당한 피로를 즐기다 휴가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졌다.
아쉬움이 커지니 문득 답답해졌다고나 할까.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이것저것 재다 보니 가까운 곳을 찾게 되었다.
산과 바다. 여행이란 카테고리에서 뗄 수 없는 질문이다.
바다가 주는 시원함과 포근함이 있고, 산이 주는 고요함과 따스함이 있다.
난 숲을 참 좋아했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에 스며드는 햇살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들이 좋다.
곧게 뻗지 않고 구불구불한 길들 과 그 사이에 마주하는 자연들이 좋다.
무엇보다도 계절이 변화함에 따라 달라지는 다채로움이 있으니, 언제 봐도 새로운 기분이다.
어린 시절엔 정도 많고 사랑도 많았다. 남들보다 더 희생하는 게 옳다고 믿었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난 대가 없이 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언제든 나한테 오면 위로를 줄 수 있는 숲과 같은 사람. 내가 그런 열매를 맺는 나무이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같은 사람들이 모여 숲을 이룰 거라 생각했었다.
익숙해지면 소중함을 잃어버린다고, 고마움을 표현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철 따라 열매 맺는 나무를 보듯이 나를 대했다. 그저 때가 되어 찾아가면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인 양 필요에 따라 찾기 바빴다.
그때는 어리숙해서 상처도 많이 받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 사실 내가 있던 곳은 숲이 아닌 바다였던가, 착각할 때도 있었으니.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팠던 나는 그 시기에 많은 인연들을 정리하곤 했다.
그 뒤로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것이었다. 철마다 찾아오는 철새처럼 왔다가 사라질 것이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니깐. 백 마디 말보단 훌쩍 떠나는 그 시간이 더 위로가 되었다. 내 마음을 대변해 줄 카메라 하나 들고 가서 예술이란 이름으로 치장하곤 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가 되어보니, 사람이 갑자기 철이 들었나. 아니면 그냥 궁상맞게 이러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지만, 정말 비루한 인간관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숲이고 싶었나 보다. 임금님이 남들 듣지 못하는 얘기 하러 도망 오는 대나무 숲. 나에겐 와서 얘기해도 된다고 하는 든든하고 안정된 사람. 아무리 큰 감정이 덮쳐와도 더 크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숲을 동경하고 찾아다녔는데.
시간이 지나 뱉은 말과 뱉지 않은 말들을 기억하며 후회하곤 한다.
드러낸 감정과 드러내지 않은 감정들을 생각한다.
그때 그랬더라면, 싶은 후회들을 애써 지우려 노력한다.
그 시절의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잘 살아온 건지, 겨우 살아낸 건지, 스스로 의문을 던지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난 저기 숲이 돼볼게
너는 자그맣기만 한 언덕 위를
오르며 날 바라볼래
나의 작은 마음 한구석이어도 돼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