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만남을 빙자하여

그건 사실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by 순간

나는 흔히들 하는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썩 많이 올리진 않는다.

기껏해야 나의 일상을 스토리로 공유하는 정도.

게시물을 올릴 적엔 뭐랄까, 대단한 걸 올려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딱히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기에,

주로 내가 게시물에 올리는 것은 여행을 다녀왔다거나,

누군가에 의해 내 사진이 찍혔을 때 정도인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어느 단체에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 피드가 맘에 든다나 뭐라나,

아무튼 전시회를 좋아하면 무료로 얼마 상당의 큐레이팅 서비스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원체 그런 인위적인 만남을 경계하는 나였지만 어쩐지 한 번 가보기나 할까 싶었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은 채 일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남긴 지 이틀 만에 매칭이 되었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은 없었지만 그게 뭐라고 약간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워낙 심리상담 등을 빙자하여 이상한 종교에 포교활동을 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기에,

그런 재미난(?) 일이 생기진 않으려나-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멀쩡한 사람이 나와서 처음엔 의외였다.

나도 모르게 흔히 생각하는 '도'를 공부하는 그런 사람이 나오진 않을까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꽤나 흘렀다. 두 시간 정도?

나는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꽤 재밌었는지, 여러 얘기들을 다 꺼냈던 것 같다.

그 사람도 제법 재밌어했고, 원래라면 이 큐레이팅이 일회성으로 끝나야 하는데 내 경우는 조금 복잡해서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심층적으로 설명해주고 싶다고 했다.


우연한 만남을 빙자한 연락은 이 마지막 문장을 위해 만들어졌구나 싶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더 이상 여지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몇 분 간의 설득 끝에 그 사람은 인사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알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이 찰나에 스쳐갔다. 그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여전히 그 사람은 누군지, 나에게 연락을 준 그 단체는 정말 있는 단체일지 궁금증이 많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급조된 것만 같은 행동유형 검사도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어떤 내용도 찾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얻은 것은 있었다. 누군가 만들어 낸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 짧은 행동유형 검사가 꽤나 신통방통하게 잘 맞았다는 것 정도. 오랜만에 나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인 셈 쳤다.


찝찝한 마음이 남아 일기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최근 문구 페어에서 아름다운 아르바이트 생에게 홀려 구매한 노트를 꺼내 들었다. 오늘은 비도 오고 그래서, 여러모로 마음이 헛헛하니 인디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가장 아끼는 펜으로 오늘의 마음을 써 내려갔다. 이 일을 혼자서만 묻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이곳에도 글을 끄적거리고 있다.


이곳에 들어올 때면 항상 눈에 밟히는 글들이 있다. 누군가가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다 지쳐 떨어져 나가는 작가가 많다고 표현한 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쳇바퀴 돌듯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다른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때론 굉장히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그 생각들을 잊어버릴 때가 늘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많은 생각들을 흘려보낸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일들을 끝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잠깐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가방끈이 긴 사람은 아니라 뒤늦게 내가 쓴 글들을 읽으며 왜 이렇게 썼나,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적어놓은 순간의 소소한 생각들은 날 더 성장하게 만들어 줄 밑거름이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드디어 봄이 오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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