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로웠던 진짜 이유
정기 연재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따라 글이 안 써져 3-4가지 토픽을 놓고 쓰다말다 하다가 드디어 글이 막힘 없이 써지는 토픽을 만났다. 무사히 연재를 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끼야호
한 때는 내가 야망녀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이 크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랑 친했던 친구들 중 나만큼 커리어에 대해 욕심 많고 성취 지향적인 친구들은 없었고, 그래서 그들과 연애 얘기, 뷰티 얘기, 드라마 얘기는 할 수 있지만 커리어 얘기만 하면 공통 분모가 많지 않아 정적이 감돌았다.
당시의 나는 나의 생각들을 “나와 친한 아주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공유하고자 했다. 비유를 하자면 나는 작은 달팽이 껍질 안에 나를 숨기고 있는 달팽이었다.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껍질 밖으로 나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날 땐 겁먹은 달팽이마냥 재빨리 껍질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을 만날 때는 즐거웠지만, 평소 일상에서는 한없이 외로웠다. 나에게 친한 친구들이란 보통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 (중고등학교, 교회 등) 이었는데 자주 만나봐야 격달에 한번 보는 사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보지 않을 때는 일상이 너무 심심했다. 이 친한 친구들과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야망”과 “커리어”는 그럴 수 없는 토픽이라 답답하다고 느꼈다.
당시 나의 직장은 MBB 컨설팅펌이었는데, 회사 사람들과는 너무 사적인 일상을 공유 하는 것을 지양했다. 친한 친구가 회사에 1-2명 정도 있었지만, 서로 바빴기 때문에 그들과도 그다지 자주 만나진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야망녀 (또는 그냥 야망이 있는) 친구를 간절히 원해왔는데, 회사에 어리고 똑똑한 사람들이 득실득실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사람 만날 창구”를 찾기 위해 트레바리, 블록체인 커뮤니티 밋업, 네트워킹 파티 등을 주말마다 다녔음에도 “야망 있는 똑똑한 친구”를 만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은 충분히 해소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디자이너, 변리사, 세무사, 금융공기업 직장인, 스타트업 CSO, 사업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다들 하는 일이 너무 나와 다른 사람들이어서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매 주말마다 사람 만나는 것으로부터 지쳐있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는 컨설팅이라는 특수한 업종에 종사하면서, 나와 학교, 배경 (해외에 산 경험 등), 나이, 역량 등이 동질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왜 나는 그들과 친해지지 않고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이 자각이 든 다음, 나는 스스로에게 과제를 내어주었다. “회사 사람들에게 닫힌 마음 열기.” 그들이 나랑 다르다거나 또는 그들이 같은 회사 사람이기 때문에 친해지면 안된다 (?) 는 편견을 버리고, 나의 진솔한 생각과 일상을 털어놓으며 그들과 우정을 쌓는 것.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은 작은 행동들로 나는 회사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프로젝트로 힘들어하는 하는 직장 후배에게 나의 과거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화, 결혼 한다는 직장 동료에게 요즘 너무 좋아보이고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한마디, 마음이 가까워진 친구와 퇴근 후 나누는 회사 욕 한바가지, 퇴사한 회사 선배와 브런치를 먹으며 나누는 연애 얘기, 연휴 전날 마음 맞는 팀원들과 함께하는 소주 한잔과 프로젝트에 대한 하소연 한 바가지.
꽁꽁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회사 사람들과 나누자, 나의 일상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을 통한 연습 (?) 덕분인지 일상 곳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누는 행위가 자연스러워졌다.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는 와중에, 자세 중간중간에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같은 필테 클래스에서 만난 회원 언니와 친구가 되어 언니가 이직 축하 기념으로 클래스가 끝난 주말 아침에 모닝 커피를 사주고, 마사지사 선생님과 (본업이 화가인) 곧 열릴 아트페어 프리즈에 대해 다리 마사지를 받으며 실컷 수다를 떨고, 눈썹 왁싱을 해주는 왁서 언니와 나쁜 남자와 착한 남자에 대해 얘기를 한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야망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야망과 커리어에 대한 얘기를 해야한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었다.
새로 이직한 회사의 사람들, 가족들, 남자친구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야망/커리어에 대한 지적인 대화도 한다. (또는 일방적으로 공유한다) 예를 들어 최근 MBK 파트너스의 대표인 김병주 아저씨가 쓴 Offerings 를 읽고 있는데, 뱅커들이 일하고 (노는) 방식이나 그의 현재 부인을 모티브로 한 것 같은 캐릭터와의 연애 얘기가 나온다거나, 최근 사모펀드가 스포츠 팀의 지분을 사는 것이 미국에서 허용되었다는 미국 팟캐스트 링크를 무작정 공유한다거나, 아니면 미국 MBA에 너무 가고 싶고 미국에서 일하고 싶어 죽겠다는 류의 얘기들을 한다.
야망녀인 나를 고립시키는 것은 나의 야망이 아니라 나와 “진짜 비슷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마음을 열려던 내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여전히 야망녀이지만 전혀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