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이 자꾸만 살이 찌는 이유
회사를 다니면서 자주 울게 되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나는 더한 것도 견뎠는데하고 생각하다가도 자꾸만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마음에 꾹꾹 담아놓은 눈물은 오줌처럼 오래 참았다 흘릴려고 하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회사 점심시간에 옆 건물 화장실에서, 주말에 침대에서 유튜브에 올라온 태국의 슬픈 광고 영상을 보며 눈물을 짜낸다. 가끔 시원하게 눈물이 터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계속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내 방 침대에서 문을 잠그고 엉엉 울며 흘린 눈물은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도 눈치 없이 나오려고 한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화장실 문을 잠그고 엉엉 울지만 시뻘개진 눈은 감출 수가 없지. 평소 나에게 습관성 위염을 가져다줄 정도로 나를 쪼던 직장 상사는 역시나 원래는 완전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턴지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괜찮냐고 물어보고, 그의 작지만 어쨌든 실존하는 따뜻함에 나는 괜히 또 서러워 회사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물론 그들에게 내가 우는 이유는 당연히 정신적 괴로움이 아닌 신체적 아픔이다. 당신들의 꼰대스러움, 나를 억압하는 분위기, 집에 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2시까지 야근시키는 니 새끼들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해. 업무 결과물을 빨리빨리 만들어내야하고, 그러지 못했을 때는 나는 무능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차갑고 무감각한 말을 내뱉어도 괜찮은 이 근무환경이 나를 아프게 해. 나는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너무 아파. 너네랑 이 비좁은 방에 갇혀 아침 9시 출근, 새벽 2~3시까지 같이 일하고 심지어 매 끼니를 같이 해야하는 이 상황이 나를 숨막히게 해. 난 너네가 죽도록 싫어서 눈물이 나와- 라고 얘기를 하기에는 나는 아직 회사를 다녀야 한다. 그래도 편리하게도 내가 이토록 마음이 아플 때는 몸도 삐걱거리는 곳들이 몇군데 생기기에 나는 그것들을 대충 핑계삼아 몸이 너무 힘들다고 얘기한다.
나는 궁금하다. 이러한 나의 불행은 당연한 것일까? 직장인들은 대부분 불행하다던데, 이러한 불행이 당연하다면 회사를 옮기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텐데 그러면 나는 뭘 하면서 살아야할까. 불행이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은 그 불행의 원인이 나의 특수한 환경 때문이 아닌 굉장히 보편적인 것이어서, 나의 환경을 바꾼다고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 교육 시스템이 너무 잣같고 다른 애들과의 인간관계가 너무 괴로워서 학교를 옮기는 것을 수천번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내가 학교를 옮기더라도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럴 때는 그냥 그 순간을 견디는 것 밖에는 답이없다. 어쩌면 나는 그냥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적응기를 지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를 힘들 게 하는 건 환경이 아니라 이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난다면 나도 저 꼰대들 중 한명이 될 것이고, 그때는 이 모든 게 나의 씻고, 입고, 먹는 일상의 루틴처럼 너무 당연해져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데. 씨.
회사에 다니면서 욕도 늘었다. 평소에는 “즞같다”, 시발은 “스브”처럼 다소 순화된 말을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할 마음이 사라졌다. 욕을 시원하게 내뱉고 나면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상스러운 그 말들이 공허하게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다.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감정을 딱히 해소시켜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욕을 한다. 열심히 욕을 하고, 먹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사 잔뜩 먹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인간에게는 다차원의 욕망이 있다던데, 나는 좀 더 고차원의 욕망들, 예를 들면 존중받고 자아실현을 하고 깊은 인간적 교감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전혀 채워지지 않고 있고, 나에게는 이 욕망들을 채울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저차원의 욕망들, 즉 맛있는 걸 많이 쳐먹고 육두문자를 자유롭게 내뱉는, 나의 자율의지로 채울 수 있는 욕망들을 부지런히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