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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ll Light Oct 30. 2022

쥐의 역습

도시개발과 쥐의 상관관계



쥐가 나타났다!


지난밤에 쥐가 마당에 다녀갔다.

화분에 심은 보리의 새싹이 나오기도 전에 심는 족족 씨앗을 먹어버리는 쥐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여러 번 보리를 다시 심어야만 했다. 며칠 동안 잠잠한듯싶어 새로 심었더니 어느새 쥐가 또 나타나서 새로 심어놓은 보리를 먹고 가버렸다. 화분을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낮에는 화분을 밖에 두었다가 밤에 집안에 들여놓곤 했는데 어젯밤 깜빡 잊고 화분을 그대로 밖에 둔 것이다. 며칠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


한 달 전부터 마당의 화단에 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육식물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어서 빈 화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화분에 하얗게 뿌려 놓은 보리는 온데간데없고 까만 흙만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단 쥐들만 왔다 가면 채송화의 뿌리는 하늘로 향해 있고 꽃은 흙 속으로 처박혀 있었으며 먹지도 않을 거면서 돌나물은 죄다 밟아 놓고 씹어 놓고 갔다.


생각해 보니 쥐가 마당에 출몰하기 전에 골목길에서 쥐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번화한 새벽의 유흥가 뒷골목도 아닌데 요즘 같은 세상에 서울의 주택가 골목에서 한낮에 쥐가 활보를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쥐들이 우리 집까지 나타난 것이다.


쥐잡기용 끈끈이를 화분 사이사이에 빈틈없이 설치했지만 쥐가 영리했는지, 도시 문명에 적응을 잘했는지, 보리만 사라지고 끈끈이에는 벌레만 붙어 있었다. 사실 끈끈이에 붙어 바둥거리고 있는 쥐를 보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어서 쥐들이 끈끈이를 밟고 달아나 더 이상은 화단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는데 그것은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쥐들은 점점 대담해졌고 밤에만 활동하던 쥐들이 아침이나 낮에 활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강아지가 크게 짖어서 나가보니 어린 생쥐 한 마리가 화분 위에 앉아 보리를 먹고 있었는데 나와의 거리가 1m가 채 안되게 가까웠다. 개가 짖어도, 사람이 나타났는데도 어린 쥐는 도망가지 않았다.

또 어떤 날에는 작은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화분에 앉아 있는 줄 알고 다가갔다가 새끼 고양이만 한, 쥐의 크기에 놀라 뒤로 자빠진 적도 있다.





십여 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평화로웠던 화단에 갑자기 쥐떼가 출몰하게 된 이유는 뭘까 궁금해졌다.

보리 씨앗에서 초록의 여린 싹이 자라나고 있다.



문득 봄에 봤던 기사가 생각났다.

집 근처 새로 개장한 식물원에 쥐 떼들이 출몰해서 쥐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밤만 되면 따뜻한 식물원에 나타나서 다양한 식물을 먹어서 피해를 주고 식물원뿐만 아니라 근처 새로 들어 선 대기업 건물에도 쥐들이 나타나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식물원이 있던 자리는 원래 농지였다.


벼가 출렁대던 드넓은 땅에 대규모의 도시개발 계획이 실행되었다. 그리고 이십 년 가까운 긴 세월을 거쳐서

아파트, 식물원, 대기업 연구단지, 의료단지, 오피스텔, 상가 건물들이 빈틈없이 들어찼다.

오랫동안 농지의 원주민이었던 쥐들이 갈 곳을 잃고 그대로 같은 위치에 흡수되었던 것이다.


다시 찾아본 기사에는 방제작업에 의해 식물원과 대기업 단지에 출몰하던 쥐가 줄고 안정화되고 있다고 했다. 도시개발로 인해 농지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지어진 건물에서 살던 쥐들이 방역작업 때문에 또 갈 곳을 잃자 근처 아파트 단지로, 원룸 골목으로, 가정집 화단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


땅따먹기 게임 같았다.
우리 집 화단은 인간과 쥐의 치열한 생존 싸움의 흔적이었다.


얼마간의 소동을 겪은 후에 자연스럽게 쥐들이 사라지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데 화분에 하얗게 새로 뿌려 놓은 보리 씨앗들이 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까만 흙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번엔 참새들 짓이었다.

마당이 있던 집들이 오랜 시간 동안 원룸 빌라로 하나 둘, 모습을 바꾼 후에 마당에 나무가 있던 집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뽕나무에 참새들이 자주 찾아와 놀다 갔다.

그 참새들이 보리 씨앗을 깨끗하게 골라먹고 갔다.

대규모 도시개발은 인간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세상 안에 사는 작은 동물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걸 느꼈다.


이번엔 먹다 남은 식빵으로 참새들과 원만한 타협을 봤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먹고산다는 건 쉽지 않은 것임을 생생하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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