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회 teamLab: LIFE(2020.9.25-2021.8.22)
예쁜 사진을 찍기 좋다는 전시회로 소문난 팀랩: 라이프 전에 다녀왔다.
디지털 아트는 접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신선하기도 했고, 왠지 전시는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을 조금씩 무너뜨려보고자 기대감을 가지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떠났다.
아차! 도착하기 직전에야 드레스코드를 잘못 맞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시 특성상 어둠 속에서 빛을 쏘아 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밝은 색상의 옷을 입어야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온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진보다 중요한 건 경험이고 기억이니까 이미 놓친 것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어둠 속에서 조용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물들이 보여 잠시 숨이 막혀왔다. 꽃잎이 흩날려 동물이 되고, 동물들은 걷기도 뛰기도 하면서 움직인다. 환상 속의 세계에 떨어져 새로운 동물들을 보는 것처럼 내 주위로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동물들을 한참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다음 전시관에서는 바다 한복판을 걷는 것처럼 사방으로 크게 파도가 끊임없이 치고 있었다. 마치 작은 홍해를 가르고 걷는 것 같았다. 키보다 높은 파도가 몰아치니 두렵기도 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이렇게 거대하고 강력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정말 파도에 흩어지는 모래알 한 줌보다도 작은 존재구나. 이런 작은 존재인 내가 받은 축복같은 생명을 아껴쓰고 마음껏 행복을 누려야겠다, 그냥 흘려보낸 시간과 절망과 무기력으로 지나간 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또 꽃이 자라서 피어나고 시들어 지고 죽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관에서는 삶과 죽음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있고,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욱 소중하고 빛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을 쿵 치고 지나갔다. 죽음과 고통이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죽음, 고통, 슬픔, 악...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것들과 맞닿아 있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펼치다 저버리는 꽃도, 뒤돌아보면 눈 깜짝할 사이인 인생도 허무하다 하는 이도 있겠지만, 존재의 유한함과 수없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는 이치가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라 말하는 이도 있다. 죽음과 고통 앞에서도 끝없이 생명은 태어나고 성장한다. 세상에 모든 생명이 죽은 것 같은 겨울이 지나면 그 고요한 침묵을 깨고 새싹이 돋고 나무에 움이 트는 봄이 온다. 자연은 이토록 생명력을 감추지 못하고 조용히 자라다가 어느 순간 뻥! 하고 우리 눈에도 보이게 된다. 마치 죽어있는 것 같은 누에고치가 어느날 갑자기 나비가 되어 하늘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정말 나비가 한 가득 눈이 부시게 날아다니는 공간에 도착했을 때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고 지금까지 애벌레처럼 힘들게 살았지만 하늘에 도착하지 못하는 존재가 나 같았고, 누에고치라는 힘들고 두려운 시간을 겪지만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생명력이 온 세계에 뿜어져 나오는 봄을 상징하고, 고난을 이기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나비가 한가득인 공간에서 이 전시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도 이제 막 봄이 시작된 정도밖에 안됐지만 너무 많이 좌절하고 숨어 있었다. 나도 나비가 되는 고치를 지을 실이 어디선가 나오겠지, 그러면 고치를 짓고 성장의 시간을 견뎌내면 가을에 결실을 맺듯 나비가 될거야. 힘내고 주눅들지마, 너는 나비가 될 소중한 존재야.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독여주면서 한 번도 나에게 격려와 위로를 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렇지, 나도 이 경이롭고 위대한 자연의 일부로 태어났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죽지 않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지! 나는 그동안 왜 나 자신을 부끄럽고, 초라하고, 뭐든 잘 못하고 어색한 반푼이처럼 생각하고 있었을까.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서 제목인 LIFE, 삶에 대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 삶은 평범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 삶도 충분히 가치있고 아름다운 생명력이 빛나고 있었다. 많이 아픈 덕분에 약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게 되었고, 내가 아플 때도 날 사랑하고 돌봐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고, 건강한 삶이 거저 받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겐 정말 간절한 소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받은 따뜻한 사랑과 응원에 이제는 보답하기 위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정도면 내 안에 살아 꿈틀대는 생명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다만 서툰 방법으로 전해져서 상처가 되거나 전혀 힘이 되지 않는 응원이 되지 않도록 글을 다듬어 나가야겠다.
전시회를 보고나서 가까운 산에 올라갔다.
조금씩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하게 되었다. 몸이 건강해지기 시작하니 마음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힘을 내고 있었다. 나 스스로 돌보지 않은 마음 정원을 내 마음은 꾸준히 돌보고 생명을 향해 꿈틀대며 나아가고 있었다. 참 고맙고 대견하다.
내일도 모레도 이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멈추지 말고 천천히 삶의 한복판으로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