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
영국에 도착하고 다음 날부터 내가 갑자기 '아침형 인간'이 된 줄 알았어. 새벽 5-6시면 눈이 떠지는 거야. 그래서 심지어 아침운동 모임에 나가서 운동까지 했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여정은 시차적응이 쉽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확실히 그게 맞는 것 같아. 밤에는 눈이 말똥말똥 잠이 안 오고 아침에는 알람 5개를 끄고 일어나는 내가 저녁 일찍 잠들고 새벽같이 일어나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물론, 그것도 1주일 지나니까 아침 8시에도 일어나기 힘들어졌지만 말이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틀 정도 적응 기간을 가졌어. 같은 미션 빌더(Mission Builder)로서 방을 같이 쓰게 된 한국 동생 K와 베이스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몇몇 사람들과 인사도 주고받았어. 내가 그야말로 다국적, 다문화 공간 안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정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영어로 소통을 하는데 그 영어도 또 너무 다양해서 어쩔 땐 저 사람이 영어로 얘기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야. 학교에서부터 미국식 영어로 공부하는 한국 사람들은 R 발음이 투철한 미국식으로 말하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잖아. 근데 여기서는 발음이 어떤가는 크게 관계가 없어. 왜냐하면 일단 원어민의 국적도 너무 다양하거든. 영국 사람,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 르완다 사람, 미국 사람, 호주 사람, 뉴질랜드 사람 등등. 게다가 영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또 지역별로 사투리가 굉장히 달라서 북쪽이 고향인 보모가 새로 온다고 하면 아이들과 엄마까지 기겁을 하는 유머 영상이 돌아다닐 정도야.
한 예로, 내가 맡은 일 중에서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게스트룸 건물)를 청소하고 세팅하는 업무가 있었어. 거기 매니저가 영국 북쪽에서 온 할머니였는데, 처음 만났을 때가 잊혀지지가 않아. 나는 첫 시작이니 미소를 띠고 주의를 집중하여 업무사항을 잘 들으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1층에서 2층까지 돌아다니며 내가 알아들은 말은 'Here'밖에 없었어.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멍청이는 아니거든. 나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영어를 가르친 경력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할머니 매니저 Y가 마지막에 덧붙이더라고.
"못 알아듣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물어봐도 돼. 나는 전혀 신경 안 써."
당신이 이야기한 것 중에서 'Here' 말고는 다 모르겠어요 라고는 할 수 없어서 그냥,
"고마워요. 그럴게요."
하며 웃음을 지어 보였어.
내 일은 크게 주방과 호스피탈리티였어. 오전에는 호스피탈리티 3시간, 오후에는 주방 2시간 업무를 맡았지. 호스피탈리티에서는 매니저를 도와서 객실과 공용공간 청소, 기타 필요한 심부름 등을 하는 것이고, 주방에서는 셰프를 도와 주방, 홀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음식재료들을 자르는 일이었어. 간단히 요약하면 그냥 하루 종일 '청소'하는 거야.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호기롭게 떠나왔는데 고작 하는 일이 '청소'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슨 일이든지 동기와 목적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 이 베이스에서의 선교(Mission) 활동이 잘 이루어지도록 나는 그 기반을 만들어 주는(Building) 사람인 거지. 그래서 이 곳 봉사자들의 이름이 미션 빌더(Mission Builder)인 거니까.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영국 생활이 시작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