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셰프와의 대화
(2018.6.)
셰프 A는 영국 사람이었어. 키가 크고 대머리에다가 눈이 부리부리한, 도대체 어느 인종이 어떻게 섞였는지 알 수 없는 외모의 아저씨였지. 처음 봤을 때부터 나를 한국 사람이라고 좋아하더라고. 한국 사람이 일을 잘한다나? 대놓고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였어. 나중에 베이스 생활에 익숙해지고 나니 금방 알 수 있었어. 셰프가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많은 인원이 같이 밥을 먹으니까 청소와 정리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얘네들이 청소하는 걸 보면 아주 가관이야. 그냥 흥만 있어. 음악 틀고 춤추며 청소를 즐겁게 하는 거? 아주 좋지. 그런데 끝은 나야하고 마무리는 되어야 하잖아. 정말 극소수의 개념있는(사실 이 개념이란 것도 한국인 기준이겠지만) 외국애들과 한국인만 열심히 해. 그 모습을 매일 보다 보면 나중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돼.
스케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주방 일을 즐기게 되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주방 '일'을 즐겼다기보다는 셰프 A와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는 '시간'을 즐기게 된 거지. 영국에 와서 알게 된 건데, 정말로 영국 사람들은 티타임을 좋아해. '홍차의 나라' 영국이라고 하잖아? 디저트 문화도 아주 발달되어 있고 말이야. 1일 5시간의 봉사 시간 중에서 특별히 바쁜 일이 있지 않은 보통날이라고 할 때, 하루에 3번 정도의 티타임을 가졌어. 짧게는 10분이고 길게는 언제 끝날지 몰라.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은 전체 베이스의 티타임 시간도 따로 있더라고.
아무튼 셰프와도 티타임을 가졌지. 때로는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때로는 소파에 앉아서 티를 마시며 인생 이야기를 하는데 내 영어의 짧음이 한스러울 정도로 깊이가 있었어.
그 날은 저녁 준비가 어렵지 않아서 시간이 좀 여유로웠고, 우리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지. 어떻게 해서 지금 이 곳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묻는 내 물음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미국 인디언, 어머니는 영국인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어.
"아버지는 1960년쯤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왔고, 어머니를 만났어. 나와 내 여동생이 태어났고 얼마 가지 않아 부모님은 이혼하셨지. 아버지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고, 나는 14살에 학교를 그만두었어. 과일과 채소 파는 일을 시작했고, 내가 17살 때 어머니가 우리를 떠났어. 학교 졸업장이나 자격증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
"아, 정말 힘들었겠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살아있으니까 살아갔어. 24살 때 우연히 성경을 읽게 되었는데, 이건 정말 나도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어. 내가 산 것도 아니고 어디서 빌린 것도 아니야. 정신을 차렸을 때 손에 성경이 들려 있었고 나도 모르게 매일 성경을 읽게 되었어. 내가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 이미 4번 성경을 읽었어."
그가 담담하고 짧게 과거 이야기를 했지만, 그 무게는 느낄 수 있겠더라고.
"27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아버지와 살았는데 그때 크리스천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고 DTS(Disciples Traingning School)를 추천받았어. 그렇게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고, 얼마 후 로고스 홉(Logos Hope)에서 일하게 되었지. 그때 나는 셰프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배에서 셰프가 필요했거든."
"로고스 홉이 뭐야?"
"몇십 개국의 선교 봉사자들이 승선해서 전 세계를 돌며 책을 통해 구호와 구제, 봉사활동을 하는 배야. 나는 그 배에서 지금의 아내 C를 만났지."
"오, 더 자세히 듣고 싶네."
원래 남의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잖아.
"우린 정말 친구였어. 나보다 12살이나 어린 그녀였기 때문에 나는 이성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렇게 2년 정도를 배에서 친하게 지냈는데, 활동이 끝나고 나서 더 이상 C를 볼 수 없게 되니까 그녀의 빈자리가 나에게 너무 크게 느껴졌어.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연락을 했고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어."
"그래서 지금 너무 귀여운 두 아들도 있고 말이야. 그치?"
"맞아. 나는 C를 정말로 사랑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은 진심이 가득 담겨 있더라고.
"너무 보기 좋아. 그런데 인생이 참 쉽지 않았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왜?"
"인생은 원래 힘들고 어려운 거야. 당연한 거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하기도 하고."
"맞는 말이네."
나는 언제나 인생은 쉽지 않고, 고난과 선택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었거든.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인생은 힘들어.'라는 말로 귀결되곤 했는데, 인생이 원래 그렇기에 말할 필요가 없다니. 나름 설득력이 있었어.
종종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고집이 너무 세고 차갑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 딱딱하고 어두운 색깔의 망고스틴 껍질 속에 우유처럼 하얗고 물렁한 속살이 있는 것처럼, 그는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이었어.
"셰프, 뭐 하고 있는 거야?"
"맞춰봐."
"파이 위에 뭘 올리는 건데?"
"짜잔!"
그는 치킨 파이 위에 내 이름의 이니셜을 만들어 주고 있었어. 덩치 큰 50대 아저씨가 말이야. 그의 7살짜리 첫째 아들과 똑같은 개구쟁이 웃음을 머금고. 덕분에 힘든 주방 일도 즐기면서 할 수 있었지. 때에 따라 100인분의 음식도 만드는 주방에는 무겁고 큰 솥과 트레이들이 언제나 설거지 거리로 쌓여있었거든. 역시나 일보다는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