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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Dec 05. 2021

[#21 모로코인에게 고백을 받다]

(2018.12.)


4박 5일간의 서핑스쿨을 마치고 나는 '아가디르'에서 '에사우이라'로 이동했어. 에사우이라는 바닷가 관광지인데 다음 여행지를 정하지 않았던 나는 모로코 부부의 추천을 받았지. 물론 나는 그 도시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지. 버스는 끝없이 펼쳐지는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서 하염없이 올라갔어.

아가디르-> 에사우이라의 해안도로


아무 계획 없이 에사우이라로 온 나는 정말 아무 계획이 없었어. 그냥 천천히 메디나(구시가지: 구불구불한 시장)를 돌아다니다가 바닷가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발견했어. 나도 좋은 날씨에 자전거를 탈 생각으로 물어물어 자전거 샵을 찾아갔는데 이미 오후 2시를 지나는 시각이었어서 남아있는 자전거가 없다는 거야. 할 일이 없는 나는 다시 터벅터벅 바닷가를 향해 걸었어. 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지. '나도 어제까지만 해도 저 무리 중 한 명이었는데.'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서핑하는 사람들을 찍던 사진사가 갑자기 나를 찍고 있는 게 느껴졌어. 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어봤어.


"지금 날 찍고 있는 거야?"

"응, 이 쪽으로 한 번 서봐."

"어? 어.. 응?!"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찍히며 우리는 얘기를 시작했어. 모로코가 처음이고 아가디르에서 서핑을 하다가 왔다고 하는 나에게 그는 자기는 서핑 샵의 사진사 '모하메드'라고 말했어.  일이 없던 나는 그와 계속 얘기를 하다가 서핑 샵이 가깝다길래 따라갔어.  서핑 샵의 사장은 나에게 내일 서핑을   있다며 적극적인 영업을 하더라고. 그래서 다음날 서핑을 하기로 하고 아까 모하메드를 따라 서핑  옆의 식당으로 가서 진정한 현지인 식사를 시작했어. 내가 여태까지 먹었던 모로코 식당의 가격의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들은 모두 손으로 음식을 먹었어.  현지인 식당인 거지. 그곳에서 나는 모하메드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어.

모하메드를 따라 간 현지인 식당


다들 알다시피 모로코는 이슬람 국가야. 그래서 술을 구할 수가 없고 식당이나 슈퍼에서 술을 팔지도 않아. 그래서 저녁을 먹고 나서 모하메드와 바닷가에 앉아서 아보카도 주스를 마셨어. 참 건전하지? 난 당연히 맥주 한 잔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무슬림이라 술을 마시진 않는대. 하지만 내가 마시는 건 상관없다고 했어. 그렇지만 나도 굳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앞에서 술을 먹고 싶진 않았어. 그와 메디나를 돌아다니며 시장 구경을 했어. 모하메드는 갑자기 악기 샵에 들어가서 주인아저씨와 즉석 컬래버레이션 연주를 하면서 나에게 에사우이라의 추억을 만들어줬어.


다음 날, 나는 약속대로 서핑 샵에 갔어. 그런데 나와 같이 서핑을 하기로 했던 가족들이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아서 서핑이 취소되었지.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어. 그래서 일단 모하메드와 어제 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지. 그 친구들은 여전히 그 식당에 있었고 나를 다시 만난 친구처럼 반가워했어. 알고 보니 어제 만난 '아윱'이라는 친구가 그 식당의 주인이었어. 점심을 먹고 또 방황하는 나에게 모하메드가 말했어.


"아윱이 너의 가이드가 되어주고 싶대. 너 자전거 타고 싶다고 했지?"

"응. 너도 같이 가는 거야?"

"아니, 나는 일해야 돼. 잘 다녀와."


아윱은 나를 위해 전기자전거를 빌렸어. 사실 나는 이때 전기자전거를 처음 타봤어. 아윱의 인도로 우리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구불구불한 흙길을 지나 관광지를 둘러보았어. 엄청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현지인의 가이드가 아니면 경험해 볼 수 없는 그런 곳이었어. 그리고 어제 타지 못한 자전거도 실컷 타면서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충분히 누렸던 것 같아. 아윱은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사진도 열심히 찍어주었어. 힘들었던 산길은 갑작스레 너른 바닷가로 이어졌어. 시원한 자유로움과 너른 바닷가의 풍경을 보며 감탄하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아윱이 말했어.


"나 네가 좋아."


나는 당황했으나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말했어.


"미안해. 하지만 나는 남자 친구가 있어."


얼마 전에 헤어졌지만 왠지 지금은 꼭 남자 친구가 있다고 말해야만 할 것 같았어.


"남자 친구는 어디에 있는데?"

"한국에."

"왜 따로 있어. 언제 만나?"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만날 거야."

"너는 예뻐. 너랑 계속 같이 있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나는 곧 떠날 거야."


재미있는 건 우리는 자전거를 타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는 거야. 그래서 좀 더 캐주얼하게 대화하며 지나갔어. 술 마시며 얘기한 게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너무 진지해질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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