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를 향한 여정
(2019.03.)
아프리카를 갈 때 꼭 필요한 예방접종 중 하나는 '황열(Yellow fever)' 주사야.
영국을 떠나는 날, 우간다에 계신 선교사님으로부터 카톡을 받았어. 황열 주사 접종을 꼭 해야 한다고. 모르던 사실이 아니었고 2012년 탄자니아에 갈 때 접종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카톡을 받고 깨달았지. 그 증명서가 구 여권에 붙어있는데 그건 한국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나는 친구 K와 함께 체코 프라하로 가던 중이었어. 우간다로 떠나기 전에 영국 친구가 일하고 있는 체코에 머물다가 가기로 했거든. 체코로 여행을 가는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졌어. 가는 내내 짬이 날 때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지. 주프라하 한국대사관, 주우간다 한국대사관, 프라하 메디컬센터 등에 전화하며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 하지만 주사를 맞기 위한 약속을 잡는 것이 불가능했어. 한국만큼 병원을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정말 없더라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어. 여기서 며칠 뒤면 우간다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입국이 거절될 수 있는 거지. 그냥 병원을 찾아가 봐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
체코에서 잘 볼 수 없는 동양인이 병원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자 간호사가 무슨 일인지 물었어.
"제가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데 상황이 좀 복잡해요. 혹시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너무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그게 통했어. 간호사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진료실로 나를 안내했고 잔뜩 긴장한 나를 보며 여의사 선생님은 친절히 미소를 띠며 내 얘기를 다 들어주셨어.
"그러니까 황열 주사를 맞아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미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WHO의 방침에 따라서 다시 백신을 맞게 해 줄 수는 없어요."
아, 그냥 접종해야 한다고만 할 걸 괜히 다 말했나. 너무 절망적이었어. 혹시나 해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어.
"선생님, 혹시 증명서를 사진으로 보여주면 새로 써주실 수 있나요?"
"네, 가능해요."
띠용. 너무 쉽게 Yes라고 하셔서 다시 한 번 물어봤어.
"정말요? 원본이 없어도 사진으로 보여드려도 괜찮다는 거죠?"
"네, 맞아요."
사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또 어떤 형식으로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아서 한국에서 사진을 받아서 다음 날 다시 방문하기로 했어. 바로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연락드렸어. 증명서 사진뿐 아니라 혹시 내 여권이 맞는지 증명해야 할까 봐 동영상까지 받았어. 친구 K와 L을 만나 병원을 다녀온 상황을 설명하는데 괜히 눈물이 났어.
다음 날, 약속한 시간에 병원을 다시 방문했고 여전히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더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어. 재밌는 건 이 병원이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동양인이 간절해 보여서 그런 건지 간호사분들도 의사 선생님도 나만 보면 웃어줘. 나도 뻘쭘하지만 웃음으로 화답하며 기다렸어.
잠시 뒤, 내 손에는 너무나 완벽한 백신증명서가 들려졌어. 나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비용을 물어봤는데 심지어 얼마 받지도 않아. 의사 선생님은 문 밖까지 나와서 나에게 잘 가라고 "Safe trip."이라고 인사를 해주셨어. 모든 상황이 너무 감사한 나는 "You saved my life."라고 인사를 했어.
이제 우간다 국경을 넘는 프리패스를 받은 것 같아.
그 뒤로 나는 구여권, 신여권 모두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