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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Apr 19. 2022

[#28 우간다에서 12시간 차에 갇히다]

feat. 우간다 대통령의 행차

(2019. 03.)


편의점에서 파는 체코 필스너 캔맥주 본 적 있어? 짙은 초록색 바탕에 해리포터에 나오는 빨간색 실링 왁스 같은 것이 장미꽃처럼 붙어있는 맥주 말이야. 개인적으로 라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필스너 맥주가 맛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 쓴 맛이 강해서 좀 색다른 맥주를 마시고 싶을 때만 고르는 편이야.

그런데 체코에서 먹은 생맥주 필스너 정말 맛있었어. 아, 이게 진짜 필스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체코의 진정한 필스너


어쨌든 진한 맥주 홉의 맛을 뒤로하고 나는 우간다로 출발했어. 프라하에서 우간다는 비행시간만 12시간이야. 직항은 없고 1번 이상 경유해야 하는데 나는 두바이에서 경유했어. 프라하에서 두바이로 6시간, 다시 6시간 대기하고 두바이-우간다행을 갈아탔지. 공항에서 입국 수속 등의 시간까지 포함하면 총 20시간이 넘는 여정인데 사실 비행기를 많이 타보니까 이 정도는 힘들어도 참을만하다 싶었어. 문제는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도착한 이후부터였어.


황열 주사 예방접종서를 들고 입국장에 들어서자 긴장됐어.

탄자니아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그때는 단체였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해결할 동료들이 있잖아. 그런데 여기서는 오직 나 혼자라는 사실이, 그리고 체코에서 다시 받은 접종서가 완벽해 보이긴 해도 만에 하나 입국이 거절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살짝 굳어있었어.


다행스럽게도 체코에서 그 고생을 한 덕에 입국심사는 쉽게 지나갔어. 공항을 나서자 미리 선교사님이 컨택해주신 죠셉이라고 하는 택시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어. 그는 이마에 송골송골하게 맺힌 땀을 닦으며 'Miss Shin'이라는 종이를 들고 있더라고. 엔테베에서 내가 가려는 쿠미 지역까지 대략 7시간이 걸린대. 20시간의 여정 뒤에 7시간 추가라니. 그래도 택시로 편하게 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놓았지만 오만한 생각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어.


우간다에서의 교통체증


아무리 도심을 지나간다지만 도무지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 했어. 흡사 우리나라 귀경길 고속도로 같았어. 끝없이 이어지는 여러 종류의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만 있더라고. 죠셉은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어.


"대통령이 행차가 있대요. 그래서 도로를 여기저기 통제했나 봐요. 엄청 오래 걸리겠는데..."

"대통령이요? 어디요?"


우간다 대통령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어. 그렇게 가깝게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 몇 시간의 정체 끝에 드디어 교통사정이 좋아졌어. 하지만 또 다른 마의 구간이 나타났어. 바로 비포장도로야.


포장도로로 5-6시간만 달려도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저려오는데 비포장도로라니. 덜컹덜컹하는 수준이 장난이 아니야. 가도 가도 울퉁불퉁한, 끝이 없는 흙길을 보고 있자니 멀미가 없는 게 장점인 나도 멀미를 할 것만 같더라고. 그냥 안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택시 뒷좌석 누워서 잠을 청했어. 어찌나 피곤했는지 불편하고 덜컹거리는 차에서 잠이 오더라고. 얼마 뒤 눈을 떠보니 주변이 아무것도 안보였어. 다시 모로코에서의 긴장감이 살아나더라고. 아무리 선교사님 소개로 온 택시기사라도 깜깜한 우간다 흙길 위에 나와 이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새록새록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며 생각을 비웠어. 이미 10시간 넘게 차를 타고 있는 중이었어.


결국 자정이 다 되어서야 선교사님 댁에 도착할 수 있었어. 나 때문에 잠도 못 주무시고 기다리고 계셨어. 차를 탄 시간을 확인해보니 12시간이 다 되더라고. 체코에서 우간다 쿠미까지 총 32시간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었어.


어쨌든 그렇게 힘겹게 우간다에 도착했어.


산뜻한 출발 (그렇지 못한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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