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
찌는 듯한 태양의 열기 아래서 학교를 탐방했어. 대학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듣고, 실제로 학생들이 수업 듣는 걸 보기도 했어. 완전 아날로그식 수업이야. 유일하게 IT분야의 사회과학부에서 내가 아는 대학교 분위기가 나더라고. 하지만 학생수에 비해 컴퓨터가 부족하고 결정적으로 인터넷이 되지 않는대. 우리가 볼 때는 열악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학생들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어.
쿠미 대학교는 우리나라의 NGO단체가 설립했어. 이 단체에서 가장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지원해주자는 생각으로 우간다의 쿠미에 오게 되었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1999년에 대학교를 세우게 된 거지. 지금은 또 다른 봉사단체의 후원을 받으며 운영되고 있어. 사범대학, 교육학부생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개발도상국일수록 교육은 중요하니까. 어디나 그렇듯 지원단체와 교수님들, 관계자들 가운데 크고 작은 갈등과 의견 차이는 있는 것 같아.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재료나 방법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니까.
우간다에서 대학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꽤나 드문 일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높은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대. 학생은 당시 기준으로 900여 명 정도 된다고 들었어. 그리고 주변 동네에서도 이 대학교를 기반으로 경제활동을 하기도 하고 말이야. 예를 들어, 집을 지어 학생들에게 렌트를 하고 돈을 벌거나 하는 거지. 그리고 교직원이 굉장히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어서 해서 지역주민들에게는 인기 직종이래.
도서관 앞에서 남수단에서 유학 온 스티븐이라는 한 학생을 만났어. 대학 코스를 마치고 리서치를 하고 있다고 했어. 졸업논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우간다에 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렌터카 사업을 홈페이지나 앱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발 중 이래. 운전기사가 필요하다면 그것도 선택할 수 있도록. 우간다에는 아직 그런 것들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고. 놀라운 건 형제자매가 14명이래. 본인 포함 15명.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일부다처제로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형제 수야.
내 방으로 돌아와 더위를 식히며 누워있자 복합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무엇보다 내가 학교를 떠난 이유가 먼저 떠올랐어. 물론 개인적인 상황도 컸지만, 답답한 한국사회, 꽉 막힌 교육체계,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칠 수 없는 경직된 교육과정과 교육 현실, 학부모들의 무리한 요구와 탁상공론적인 교육제도들에 휘둘리는 아무 힘없는 선생님들, 그 작은 교직 사회에서 조금의 이익을 더 얻으려고 하는 정치질과 수많은 가십들. 이런 것들에 넌더리가 났었으니까.
이곳은 부족한 것들 투성이지만 목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나에게 어쩌면 딱 맞는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
상황은 열악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따뜻한 샤워는 할 수도 없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대야에 받아서 샤워해야 하는 걸. 수도가 없어서 빗물을 받아서 사용하고 말라리아를 항상 조심해야 하며 제대로 갖춰진 시설은 하나도 없지. 사방을 둘러봐도 빨간 흙과 돌산들 뿐이야. 하지만 삶의 목적을 찾아, 내가 원하던 자유를 찾아 시작한 나의 인생에 이것이 주님의 인도하신 길이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을 것도 같았어.
그렇다면 나는 과연 우간다에서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