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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Aug 21. 2018

라이프스타일을 번역하라

우리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이프스타일, 넌 누구니

한국사회에서 라이프스타일 Lifestyle이란 단어만큼 오용되고 남용되는 단어가 있을까요? 참 이상한 게 그렇게도 많은 이들이 쓰는데도, 정확한 개념의 정의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아마도 이건 이 단어가 처음으로 사회학자의 뜰채에 걸려, 연구주제로 인정받게 된 19세기 중반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19세기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은 자신의 저서<돈의 철학>에서 소비형태를 통해, 당대 부르주아 유형을 구분했습니다. 당시 자본주의 초기, 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은 돈을 인간을 노동과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힘이라고 믿었습니다. 부정적인 함의가 강했죠. 이 기류를 부숴버린게 바로 게오르크 짐멜입니다.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에게 화폐는 물질문화와 인간의 정신문화를 연결하는 가교이자 인간의 자유와 라이프스타일을 가능하게 하는 연결점이었으니까요. 짐멜은 돈의 이러한 효과를 '관절'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관절 없이 신체의 각 상합된 부분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듯, 물질문화가 정신을 창조하는 토대라고 주장합니다. 오래된 논의지만 지금 곱씹어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요. 게오르그 짐멜의 저서였던 <돈의 철학>은 90년대 초반 한길사에서 나온 번역으로 어렵게 통독을 했습니다. 최근 독일에서  사회학의 뿌리부터 캐물으며 근본개념사유해온 사회학자김덕영 선생님의 번역으로 새롭게 읽었습니다. 예전엔 읽히지 않았던 문장들이 명징하게 머리 속에 박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번역은 텍스트의 이해를 쉽게 만들어주죠. 다시 한번 역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삶을 번역하는 시간

갑자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을 쓰다가 왜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봐요. 결국 라이프스타일도 한 개인이 소비를 통해, 세상에 나를 '번역하는' 과정이라고요. 우리는 번역이란 행위를 문화적으로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옮기는 과정 정도로 쉽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번역은 그 이상의 버거운 행위입니다. 동일한 말 한마디를, 말한 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했나, 누구에게 했나, 어떤 심중을 품고 말을 했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의미관계의 변화가 생겨버려요. 번역자는 번역과정에서 이런 작은 의미의 미세한 변화를  연구를 통해 복원하고, 그 의미를 되살려 자신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오늘날의  상품 기획자들은 이 번역자의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소비자행동을 포착 및 분석하고 미를 분석하는 일은 번역자의 매의 눈과 상대의 언어로 발화된 의미를 추정해내며 읽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의미meaning 란  눈 앞에 펼쳐짐으로써 인지하는 것, 그 이상의 세계를 파고들어갈 때 비로소 내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상이란 숲, 인간이란 나무

번역은 단순하에 언어를 옮기는 행위가 아니라, 옮김의 지난한 과정을 성찰하면서, 내 모국어를 바르게 세우는 일입니다. 이 논리를 라이프스타일이란 단어로 그대로 옮겨볼까요? 우리의 소비는, 결국 우리 자신을 바르게 세운다는 명제와 만나야 합니다. 세상이란 숲을 향해 나란 상징 Symbol을 체계적으로 심는 행위이고, 그 상징을 통해 '내'가 드러나야 합니다. 각각의 개별 상징들은 소비를 통해, 물질과 서비스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 상징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회란 무대를 통해 통합 및 융합되면서 더 큰 상징을 만들죠.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일관성을 띠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거대한 숲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줘야 하지요. 라이프스타일은 결국 어떻게 세상을 살 것인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세 영역의 질문을 던지고 지속적으로 답을 찾는 과정이니까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팅 하기

최근 AK 백화점 바이어 아카데미에서 이 내용을 갖고 강의를 했습니다. 우리 시대가 큐레이팅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리테일에서 소비자들을 위해 어떤 가치를 어떻게 큐레이팅 할 것인지와 같은 주제입니다. 물론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양상을 물질화materialize 해서 표현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단순하게 물건을 사입하고, 공간을 멋지게 구성하거나 팝업 매장을 구성하고 소비자를 몰이hoard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지금 소비의 양상은 서구의 중세 말과 판박이입니다. 긴핍경제와 삶의 불안감이 커지던 그때, 사람들은 요즘 여러분이 언론에서 자주 듣는 '소확행'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당시의 시각문화인 그림이나 스몰 럭셔리라 불리는 조각품을 통해 검증할 수 있어요. 오늘날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독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우울과 무기력, 줄어드는 경제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읽는 것일 겁니다.


디코딩, 라이프스타일

저에게 라이프스타일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저 이케아 매장을 논평하고, 츠타야에 머물며 상품을 구매하고, 무인양품과 홀푸드 마켓을 비교하는 일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최신 자료들과 예측을 담아내는 WGSN을 매일 읽으면서도, 성공사례나 소개된 내용들은 이미 선취된 누군가의 '아이디어' 라는 것을 꼭 기억하고 사례들을 읽습니다. 최근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중요한 건 사업을 시작하기야 쉽죠. 이것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사업의 핵심을 이뤘던 나란 한 개인의 정체성과 상징을 '허물어 뜨리지 않고' 시장의 요구에 조화시키되, 흡인력을 놓치지 않는 것일 겁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나씩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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