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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Aug 09. 2018

패션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루이비통의  Unpacking the Process of Creative Director 전 중에서


아이엠 큐레이터 

사람들을 만나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입니다'라고 소개를 드리면, 많은 분들의 반응이 얼추 비슷합니다. '멋진 분들을 자주 뵙겠네요' 혹은 '근사하겠어요' 류의 반응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많은 분들의 머리 속에 연상되는 '패션 Fashion'이라는 세계와는 조금 다른 'Fashion'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저는 스타일리스트나 패션모델, 혹은 디자이너로 총칭되는 이 세계의 주류가 아닙니다. 물론 신세계 그룹에서 패션 리테일 분과의 바이어로 일을 했지만, 많은 업계의 선배들처럼, 자신의 브랜드를 내거나, 라이센싱 사업을 벌이거나, 혹은 패션 브랜드 수입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패션 공부의 시작

저는 패션이 좋았습니다. 항상 다른 이들보다 많은 자료를 손에 놓고 독해하고, 직물에 대해 배우고, 산업의 얼개와 시스템에 대해 공부하는 것, 상품 바잉이 가진 밀도 있는 매력에 푹 빠졌지요. 패션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패션 학습을 위한 트랙을 세우고, 아마존에서 각종 원서를 구해 읽고, 현장에서 옷이 만들어지는 것을 눈에 담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패션은 이 정도의 공부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 이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람들이 말하고, 환상을 품는 패션의 협소한 의미를 넘어, 한 벌의 옷이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큐레이션의 묘미 

대학에 들어가서 저는 갤러리들을 다녔습니다. 미술을 좋아하다 보니 미술관과 박물관, 작은 갤러리들을 다니는 게 제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취미였지요. 회화작품들, 사진, 판화, 조각, 혼합매체 등 예술을 표현하는 다양한 장르들이 있었지만, 결국 미술관에서 보는 전시들은 하나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 통일성 있게 배치되어 있더라는 점입니다. 놀라운 건 작품을 만드는 소재와 재료가 다 달라도, 미술관이란 공간에 배치되는 순간부터, 이질적인 작품들이 한 몸처럼 묶여서 동일한 주제를, 목소리를 내더란 것이죠. 저는 이게 참 신기했습니다. 무슨 원리가 여기에 있는 걸까? 


전시장에서 말 걸기 

전시라는 형태를 통해, 큐레이터들은 사회를 향해 말을 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누군가에게 행동을 촉구하기도 하며, 또한 지금 나 자신을 성찰하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 문득 내가 좋아하는 미술 분야처럼, 패션이란 영역을 '말하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패션에 대해 공부할수록 패션은 사회 내부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얽힌 체계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저 옷을 스타일링을 잘해서 입는 것을 넘어, 옷을 입는 인간의 삶을 바꾸는 문제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세상을 위한 패션의 꿈

패션전시를 기획할 때, 패션이 한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때, 패션은 어떻게 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어떤 형태의 옷과 스타일링과, 옷의 제작방법이 환경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죠. 저는 패션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제가 5년 내내 뛰어다녀도 후원자를 못 찾아 눈물 나는 주제가 있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테마예요.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신체적 핸디캡을 가진 분들에게 일상에서 느낄 행동의 불편함을 제거해주고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옷을 만드는 디자인을 말합니다. 한국처럼, 장애인 인권이 낮은 나라에서, 누가 이런 테마로 전시를 하겠습니다 하면 후원을 할까요?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패션이 사회의 행복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계속 이 테마로 제안서를 내고 있습니다. 작은 신념을 갖고 사는 것, 그 신념을 저와 다른 이들이 함께(Con) 꿈을 꾸며 짜나 갈 때(Text), 큐레이터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생의 좌표'를, 그 맥락을 알려주는 이가 되는 것이죠. 누군가를 위해 행동할 맥락, 깊은 이야기의 얼개를 짠다는 것은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지요. 이제 이 테마에 대해 다음부터 하나씩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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