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기 Dec 20. 2018

패션은 정치다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Becoming을 읽고 

에이미 쉐럴드 <미셸 오바마의 초상화> 2018년, 캔버스에 유채


미셸 오바마를 생각하며 

최근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 Becoming>을 읽었습니다. 사실 정치인들이 서술한 자서전을 즐겨 읽지 않는 저였지만, 이상하게 이 책은 끌리더군요. 이 책을 읽을 운명이었는지, 처음엔 개략적인 느낌이나 알아보려고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었죠. 그런데 제 손에 펼쳐진 페이지가 놀랍게도 오바마가 영부인으로서 옷차림에 대한 생각들, 패션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제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18년 2월 국립 스미소니언 초상화 갤러리에 걸린 그녀의 초상화였습니다. 그녀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고, 사회가 보다 진일보된 통합을 위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밀리의 2017 봄/여름 컬렉션 


그녀의 초상화엔 특별한 것이 있다

게다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 에이미 쉐럴드 Amy Sherald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선택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화가였습니다. 초상화 속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패션 브랜드 밀리의 것입니다. 밀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미셸 스미스가 초상화를 위해 디자인한 작품이기도 했죠. 미셸 오바마는 항상 미국 현지의 디자이너들을 후원했고 미국의 패션산업을 위해 훌륭한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패션잡지  VOGUE의 화보도 여러 번을 찍었습니다. 특히 경제가 힘들던 시절이라, 많은 공개적인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사실 그녀의 이런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색인종 여성이 백인 중심적인 패션 미학으로 똘똘 뭉친 보그의 커버를 장식한다는 것. 그것은 미셸과 같은 미국 내 유색인종 여성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당시 제이슨 우와 재능 넘치는 라틴계 디자이너 나르시소 로드리게즈의 옷을 입고 촬영을 했습니다. 본인이 그 옷들을 고집했다고 해요. 패션계 내부의 상단을 차지하는 백인들의 오트 쿠튀르를 거부하고 패션계의 다양한 재능과 창조성을 보여주려는 노력이었던 것이죠. 



패션의 정치학 

오바마 대통령의 법조계 선배로서, 그녀는 오바마와 결혼한 후, 오바마의 정치 입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요. 사람들은 그녀의 옷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대담한 디자인과 패턴이 강렬한 것들을 자주 입어서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영부인, 혹은 정치인의 아내에게 대중 언론이 원하는 것은 영부인 자신이 가진 삶에 대한 철학과 비전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옷차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지요. 가부장적인 정치권 내부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항상 '패션'이란 한 테마로 축소된 채로 등장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미셸은 이런 측면들을 오히려 역이용하기로 했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영부인이 입은 옷이 누구의 것인지 알려고 들어왔다가, 그녀 옆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사연이나, 새로운 사실들을 읽어주길 바랬던 겁니다. 사실 변호사로 활동했던 그녀는 오히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옷차림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지요. 영부인으로서 옷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귀감이 될 만한 점이 많습니다. 항상 저렴한 옷을 즐겨 입기도 했고, 무엇보다 로컬 디자이너들을 격려하며 그들을 위한 모델이 되어 주었다는 점, 공식 만찬을 위해 값비싼 드레스가 필요할 땐, 꼭 디자이너의 협찬을 받은 후 나중에 국립문서기록 관리청에 기부했습니다. 백악관의 윤리강령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요. 



꾸밈 노동과 핑크 택스, 이중의 굴레 

특히 그녀의 패션 스타일링은 영부인으로서, 아슬아슬한 균형점을 찾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마이클 코어즈의 스커트에 갭에서 산 디셔츠를 매치하는 것. 꼭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의 속성과 관계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분위기에 잘 녹아들어 갈 수 있는 옷차림을 찾아내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번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녀의 인품에 다시 한번 놀란 것은 그녀가 언급한 한 표현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 단어를 거론하지 않지만 최근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핑크 택스 Pink Tax의 문제를 에둘러 비판합니다. 


핑크 택스란 여성을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남성용보다 더 비싼 가격을 매겨 동일 제품일지라도 여성용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기업들이 여성용 제품에 주로 분홍색을 사용해 붙여진 명칭이기도 합니다. 핑크 택스 논란은 2015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뉴욕시 소비자보호원이 2015년 90개 브랜드와 800개 제품의 남녀 용품 가격 차이를 조사한 결과, 여성용이 비싼 제품은 42%로 나타났지만 남성용이 비싼 제품은 18%에 불과했던 것이죠. 게다가 여성으로서, 영부인으로서 의도적으로 들여야 하는 꾸밈 노동에 대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냅니다. 핑크 택스와 꾸밈 노동은 우리 사회가 남녀에게 적용하는 이중 잣대 때문에 여성만이 고정적으로 치르게 된 사회적 비용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항상 현재 진행형의 삶을 삽니다. 우리의 삶, 그 순간순간은 고착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한 단면입니다. 이것은 부유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 인간은 매일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경주가 끝나는 날까지 말이에요. 저는 한 벌의 옷이 한 인간의 단순한 꾸밈을 넘어, 인간의 언어를 대신해 얼마나 많은 의미들을 전달해 주는지를 공부해왔습니다. 좋아하는 지도자의 옷, 영부인의 패션은 그런 점에서 더 의미 있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순간의 방점을 찍습니다. 그녀가 많이 그리울 듯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프라다는 인종차별을 입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