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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Apr 03. 2019

당신은 어떤 공간에 살고 있나요?

라이프스타일의 나침반-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삶을 조립하는 다양한 방법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가는 행사지만, 갈수록 업체수와 내용도 풍부해졌습니다. 리빙 페어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어요. 저는 패션의 역사를 연구하고, 옷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개발하는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물론 전시와 방송 드라마, 영화를 통해 패션의 다양한 표정을 풀어내는 일을 하죠.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의류는 이제 우리 시대에 한물간 세계가 되고 있습니다. 



패션이 한물갔다고?

내 맞습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지요.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없다면 예술작품을 입으라" 고요. 이 말이당연스레 통용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옷의 착용과 스타일링은 개인의 정체성을 빚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경향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어요. 더 이상 사람들은 사회라는 무대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 고도의 유니폼을 계산해가며 입어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회 전반에 슈퍼 캐주얼 경향이 강해졌죠. 



상황과 시간, 경우에 맞춰 어떻게 옷을 입을까를 연구하고, 그 과정에서 패션을 읽는다는 것이 캐캐 묵은 짓이 되어갑니다. 시대가 변해간다는 것은, 사람의 취향 구조가 변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취향이란 게 결국 '내가 너무 좋아서 얻고 싶어 달려가고야 마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사람들은 이제 공간으로 눈을 돌리고 있죠.  



공간, 내밀한 자아를 위한 좌표

제 강의 테마도 3년 전부터 이 공간을 주제로 한 지 오래 입니다. 패션사 강의는 하지만, 실제 패션을 입은 인간이 향유하고 누리고, 느끼고, 만족하는 공간의 문제, 건축과 인테리어의 강의를 더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만해도 최근 집을 리노베이션 하면서, 타일을 깔고, 벽의 메인 컬러를 정하고, 이에 따라 소품들을 바꾸었어요. 어디 이뿐인가요? 



공간은 셀수 없이 많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방의 기능을 명시하고, 방에서 느끼고 싶은 개인의 감정이 패션산업의 중심부로 올라왔어요. 우리가 흔히 오용하고 남용하는 라이프스타일이란 단어에는 의식주라는 3개의 주요한 주제에 더하여, 휴식과 자기 성찰, 놀이, 고유한 나를 만드는 기술 이렇게 일곱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거주 공간은 라이프스타일의 일곱가지 속성 중 가장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요소예요. 우리는 드레스 룸에서 옷을 입고, 다이닝 룸에서 밥을 먹고, 서재에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리빙룸에서 친구와 함께 파티를 열죠. 가성비의 관점에서 볼 때, 공간에 투자하는 게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투자가 되어 가고 있어요. 더 이상 명품 의상과 핸드백, 패션 소품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의류는 쇠락하고 있는 시장이에요. 



공간, 왜 우리는 여기에 매혹될까?

그렇다면 물어봐야죠. 왜 우리는 공간에 끌리는지. 지금 한국인들의 모습은 17세기 네덜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겪어야 했던 문화적 양상과 닮아있어요. 그들은 서유럽인 프랑스와 달랐어요. 서유럽만 해도 루이 14세 같은 한 마디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 존재하고, 그가 통치하는 사회였지만, 북유럽은 서민이 주인이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서민들은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졌죠. 부부간의 유대도 깊어서, 부부 초상화가 유독 많은 것도, 항상 공화국을 끌어가는 서민들의 긍지를 담은 각종 '협회' 회원들의 집단 초상화도 생의 탄탄한 자신감 때문이었지요. 그러니 자신들의 공간도 열심히 그렸습니다. 서유럽은 이게 없어요. 최근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을 통해 우리는 민주화된 지식을 나누고 있습니다. #온라인집들이 #인테리어스타그램 #홈스케이프 등 해시태그에 주제어를 걸면, 수천 수만의 이미지가 쏟아져요. 그 덕택에 똑똑한 소비자들이 엄청 늘었죠. 



리빙 페어에 가는 이유는 내 공간을 '나의 주관과 계산'으로 나누어 새롭게 기능을 부여하고 의미를 채워 넣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방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그것이 현대사회의 주거 공간 속 방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게요. 



17세기부터 본격화된 방이란 공간이 우리를 남자와 여자, 성인과 아이로 구분지었죠. 남자들은 비즈니스 스위트를, 여성들에겐 부두아Boudoir라 불리는 내실이 생겼죠. 아이들의 방이 생긴 것은 18세기 말을 훨씬 넘어서였습니다. 방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교하게 조형할 수 있었어요. 여기에 방은 취미와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진화했죠. 공간을 구획하기 위해 벽을 만들고, 벽이란 거대 공간을 주로 하여 부속된 요소들을 하나씩 채우는 것. 이것은 옷장 속 옷을 정리하고 계열화하는 일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섬세하고,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옷을 포장해야 하는 일이 하루에도 많게는 100건 이상인 저는, 택배 아저씨의 짐을 빨리 풀기 위해 큰 테이블에 가위를 하나 올려다 놨어요. 독일식 가위가 튼튼해 보여서 사진으로 한컷. 가격이 좀 셉니다. 



당신은 좋아하는 공간에 살고 있습니까?

페어에 다녀올 때마다 이 질문을 제게 합니다. 인스타그램을 열어 물밀듯 쏟아지는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는 요즘, 핀터레스트 하나만 잘해도 정교하게 자신이 꿈꾸는 이미지 큐레이션이 가능한 지금입니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을 정교하게 개발하기 보다 판에 박은 교과서적인 내용에 천착합니다. 



하얀 벽과 초록빛깔의 포인트 벽, 그 벽에 걸린 똑같은 명화 포스터들, 루이스 폴젠의 조명, 북유럽 스타일 협탁 등 말이에요. 정말 지겨워요. 한편으론 무섭지요. 너무 똑같아서. 가구를 배치하고, 공간을 기획해서 나누고 하는 일들은 그 자체로 나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명확하게 이해할 때라야 가능합니다. 이걸 못하고 누군가의 템플릿을 따라한다면 그 속엔 '내'가 사라지게 되는 거죠. 



스타일보다 스토리가 먼저다 

저는  패션을 공부하면서, 결국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 내 메시지가 담기는 작업을 하지 못할 때, 아무리 소비를 해도 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인테리어의 어휘들을 배워도 소용이 없어요. 멋진 공간을 위한 아이디어들, 수많은 템플릿, 혹은 스타일을 설명해주는 각종 토대가 되는 '양식'에 대해 공부해봐야, 그냥 트렌드만 따라가고 맙니다. 저는 지금도 집을 고치고 있습니다. 공간 하나를 오랜동안 고민하면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습니다. 나와 가족들이 서로 약속한 것들, 희망사항들, 우리의 꿈이 익어가는 공간을 짓는 것. 그래서 먼 미래를 향해 그 공간 속에서 한 발자국씩 나가는 것. 그것인 건축의 본질이고 의미니까요. 저는 그 공간에서 우리가 익혀야 할 스토리를 담는데 더 신경을 쓰고 싶어요. 물론 페어 다니면서, 다양하게 변모하는 살림살이들의 가능성과 의미를 담는 일도 빼놓지 말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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