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상력에 더해야 할 미덕에 관하여
눈길이 간다, 마음도 가나보다
저는 사진작가 임안나 선생님의 작업을 좋아합니다. 오늘 걸어놓을 사진들은 꽤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작가가 밀어붙이고 있는 Romantic Soldier 연작입니다. 사물을 겨누며 앞으로 나아가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래전부터 작가의 작업을 아꼈습니다. 눈길이 갔지요. 눈길이 간다는 건, 사진 이미지가 타인의 작업보다 도드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눈길이 간다는 것은, 내 눈을 통해 보고자 하는 세계가 특정한 사물의 표면에 부딪힐 때 생겨납니다. 눈은 그저 응시할 뿐이지만, 내 시선에 담긴 마음은 사물과 충돌하면서, 그 사이에 '길'을 냅니다. 우리가 손으로 뭔가를 만지고 눈으로 자꾸 보다 보면,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가는 것들을 떠올리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사물과 나 사이에 '소통의 오솔길'이 생긴 것이니까요.
설명하려고 애쓰지 마라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 가지 배운 게 있습니다. 상상력을 말로 하는 이들치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말로 하는 이들치고 한 번도 '그들이 상상력을 통해 세상의 얼개를' 깨부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걸요.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사회에 대한 관점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밀도 높은 해석, 역사의식 등 많은 것을 누적해야 합니다. 단 이 과정에서 '상상력'을 자꾸 말로만 풀려는 이들만 가득해집니다. 이들은 한편으론 이해합니다. 어떤 결과물을 볼 때, 그것이 글이던, 예술작품이건 제작의 단초를 제공한 사건과 연결된 사항을 검토하고 감식하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전문가들이 툭하면 맥락이란 뜻의 콘텍스트(Context)를 이야기하는 건 이 때문이겠지요.
콘텍스트(Context)란 말에 대하여
복식의 역사를 가르치는 제게 이 콘텍스트는 참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이 뭔가를 짜고 직조하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의 패션 브랜드까지, 우리가 입는 한 벌의 옷은 우븐(Woven : 짜인 직물)으로 만들어진 세계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절, 직조기술이 원시적인 탓에, 직물에 다른 색의 실을 넣어서 함께 짜는 일은 매우 번거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콘텍스트의 라틴어 동사 Contexo는 직조하다, 연결하다, 나아가 은유적으로 '창조하다'라는 뜻을 포괄하는 단어였어요.
말로 떠드는 건 언제나 쉽다
색과 색을 조합하며, 두 개의 상이한 색을 연결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색과 색을 연결하는 문제는 단순하게 색과 색의 차이, 균형의 문제, 비율의 문제 등 정말 많은 걸 따져 물어야 하는 문제니 까요. 가령 요즘 유행하는 셀프 인테리어를 한번 한다고 해보세요. 두 개의 벽을 어떤 색으로 칠할까? 메인 벽면과 악센트 벽면의 컬러비중은 어떻게 할 건가요? 보색 관계는요. 디테일을 하나로 통합했을 때, 여기에 '내가 살고 있는 방' 이란 의미까지 직조되어야 하니 어디 이 과정이 쉽겠냐고요. 상상력의 원칙에 대한 글만 읽는다고 상상력이 생기지 않는 이유예요.
사물 앞에 설 때, 유념해야 할 것들
이 콘텍스트란 단어를 자신의 글과 웅변에 잘 썼던 이가 바로 로마의 웅변가이자 수사학의 혁신자인 키케로입니다. 그가 쓴 <신의 본질>이란 연설에 이 Contexo 동사가 자주 나옵니다. 신이 엮어 만든 세계에 대한 은유인 거죠. 임안나 작가의 작품은 항상 탈색된 세계에 놓인 어떤 사물들이 저를 부르는 탓에, 사진을 보다가 자꾸 몽유하게 됩니다. 하지만 작품 제목을 무제로 남겨놓아,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언어적 표명' 이 없어요. 제삼자의 입장에선 작가의 노트나 단상이 맥락을 찾는 꽤 좋은 출발점이거든요.
하지만 무제를 통해 '언어를 통해 연상되는 상상력의 길'을 막아버리는 것도 꽤 중요해요. 이럴 때는 차라리 작품 앞에서 오랜동안 서서, 응시하고 싶습니다. 물론 힘들죠. 머릿속에 사전에 전개되는 맥락이나 스토리 없이 어떤 이미지 앞에 서는 일,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의 뇌는 '진정' 가동을 시작하죠. 혼란한 세계, 혹은 명확하지 않은 모호함이 머릿속에서 '전투'를 하지만, 우리는 그 전투를 통해 사물의 맛을 보기 시작할 테니까요. 말끝마다 연결이란 단어를 말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보세요 제발, 자주. 자꾸 보고 만져 보고 느껴보라고요.. 그래야 우리의 손길이, 눈길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직 하고 사물과 그 앞에 선 우리 사이에 '길'을 낼 거 아닌가요. 우리의 상상력은 어찌 보면 반복되는 바라봄과 만짐의 행위가 만들어내는 '친숙하고 따스한' 세계에서 시작되는 것일 테니까요. 그제야 지금껏 우리가 공부해온 것들이, 사유한 것들이 멜로디가 되어서, 우리의 눈을 통해 '사물을 노래'하게 되겠죠.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