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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May 13. 2019

인플루언서의 힘

임블리에게 묻는다-셀럽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나  


임블리 Imvely 사태에 붙여

최근 SNS 상의 한 인플루언서가 한국 소비문화의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임블리라는 인플루언서, 나아가 그녀의 개성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팔았던 패션기업에 대한 구독자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션산업의 얼개를 이해하고  내부적인 역학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제겐,  글을 쓰는 마음 한 구석 무겁기만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최근 부건 F&C 의 대표가 한 신문사와 했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저는 인터뷰를 읽으면서 정말이지 화가 났습니다. 현재 불거진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제가 기대한 건 브랜드의 카피 건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는가였지요. 부건 박 대표의 응답은 실망 투성이었습니다.


임계점에 달한 카피 문화

임블리 메이드가 발생시킨 명품 카피 건은 저작권을 침해당한 해외기업의 법무팀에게 맡겨야 할 듯싶습니다. 임블리뿐 아니라 동대문 전체가 이 문제에 관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날이 임박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는 지금껏 패션법과 저작권을 공부하면서, 발생하는 패션 카피에 대해 제 팔은 안으로 굽었습니다. 디자이너를 위한 패션 저작 관련법을 입안하려고 국회를 다녔지만, 프로 카피꾼들에겐 카피는 관행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략적 게으름이었을 뿐입니다. 절대로 면죄부가 주어져선 안됩니다. 카피에 대해 뭉뚱그린 해명으로 일관하는 부건 대표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박 대표의 말처럼 랩을 잘하기 위해 '랩을 자주 듣는 것'과 누군가의 성취물을 함부로 샘플링이란 미명 하에 동일한 외양으로 빚어내는 일은 차원이 다르니까요. 대기업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한국 의류산업의 메카라 불리는 동대문이 자행하는 수많은 카피를 언제까지 묵인해야 하는지 답해야 할 때가 온 거예요. 인터뷰에서 임블리, 임지현 상무는 '명품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한다'라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모티브가 해당 브랜드의 DNA 에 가까운 시그너처란 점이에요. 언제까지 이런식으로 변명하려 합니까?



셀럽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셀러브리티 Celebrity란 단어는 원래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도 통용되던 단어입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명성의 조건'이란 뜻입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행사, 혹은 전쟁영웅을 칭송하기 위해 그때도 사람들은 메달리스트와 전쟁영웅의 얼굴을 딴 동전을 발행했지요. 최근의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유명인과의 협업은 사실 고대에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유명인, 인플루언서, 셀럽이라 불리는 이들을 숭상하는 건, 그들이 세상에 보여준 현저하게 탁월한 업적과 재능, 무엇보다도 그들이 보여주는 헌신에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셀럽들은 SNS를 이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상업적 차원으로만 차용될 뿐, 그들의 영향력이 공동체의 윤리적 의제로 연결되는 꼴을 못 봤습니다. 인플루언서는 우리 시대의 소비문화를 통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해야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은 꼭 값비싼 특정 물건을 사야만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라이프스타일이란 개념은 일찍이 15세기 르네상스 시절부터, 한 개인이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련의 일상의 실천이자 태도입니다. 여기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좋은 인플루언서가 필요하다

라이프스타일은 한 개인이 성숙화의 과정을 겪어가며, 사회와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나'란 주체를 윤리적으로, 심미적인 존재로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란 점이에요. 이 나라의 셀럽이란 자들에게서 이런 걸 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빅토리아 베컴이나 스텔라 맥카트니 같은 디자이너 겸 셀럽을 칭찬하는 이유는 그녀가 대행하는 협업이 자신이 있는 로컬의 문제, 혹은 전 지구적 화두, 혹은 자신의 취향을 강화하며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현대미술 컬렉터로도 유명했던 베컴이, 소더비와의 프로젝트를 통해 15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바로크 미술에 까지 그 관심을 확대하며 '새로운 것'에 눈뜨고, 그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의지였지요. 여기에 여성화가들의 작업을 골라, 여성의 존재감을 역사적으로 물었던 것도 좋은 측면이지요. 물론 상업적인 측면이 있겠죠. 자신이 발표해야 할 컬렉션 옷과 함께 배치했으니까요.


소통의 본질을 회복하기

문제는 인플루언서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내적으로 얼마나 깊어졌는가를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게 없어요. 협업은 넘쳐나지만, 그냥 상업적 협업일 뿐, 사람들이 숭배하는 '개인'의 시각과 심미안으로 걸러낸 경험의 미가 없습니다. 그저 명성을 얻으면, 그 명성의 조각을 세분화해서 자신이 큐레이션 할 수 없는 다양한 제품군과 연결해 오로지 판매의 확대만을 꾀하는 것. 이것은 전형적인 브랜드 확장의 실패이자, 브랜드의 물타기(Brand Dillution)로밖엔 연결되지 않습니다. 언제쯤 '동질감'을 느끼고 싶을 만큼의 제대로 된 셀럽을 만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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