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기 May 09. 2018

패션, 종교를 만나다

패션이 종교에서 빌린 상상력의 무늬들 


안녕하세요.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입니다. 오늘은 전시소개를 좀 하려고요. 5월 10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Heavenly Bodies : Fashion and Catholic Imagination 이란 제목의 패션전시가 열립니다. 현대미술과 패션은 전시란 플랫폼을 통해 지금껏 누적해온 자신의 역사를 발화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종교란 거대한 담론을 꺼내 들었네요. 지금껏 열린 패션 전시 중 가장 큰 규모가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뉴욕 북동부의 메트의 분원인 중세미술 전문관 Cloister까지 본 전시를 확장해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패션전시가 박물관의 자본축적을 위한 첨병이 된 지 오래지만, 클로이스터의 컬렉션까지 합세해서 전시를 빛낼 예정이라니 그 규모가 가늠이 가질 않네요. 



패션은 종교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종교 Religion 란 단어를 살펴보면, 라틴어 Religio는 '연결하다'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종교적 도상 십자가를 보세요. 형상을 자세히 보면 역으로, 사람들의 욕망이 모이고 분출하며, 또 다른 대안들을 찾아가는 합류점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종교는 인간의 영성을 보살핍니다. 큐레이션이란 단어의 어원인 Cura도 사실은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교구의 성도들을 돌보는  성직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하지요.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는, 종교 복식이 패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건 매혹적인 작업입니다. 기독교는 서양문명을 읽는 대표적인 코드이며, 인간은 종교적 믿음을 어떻게 재현하고, 일상에서 실천할지 고민해왔습니다. 이 고민에 동참하며 시대를 읽지 않는 한, 종교가 잉태한 문화를 읽기가 어렵습니다. 교회는 글을 읽을 수 없는 민중을 위해, 항상 시각적 장치로 대중의 마음에 안식을 주어야 했습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옷이었으며, 사람들의 집단적 정서를 담는 그릇이었지요. 성직자가 입는 옷도 이런 논리 위에서 성장한 것입니다. 



고대부터 종교적 믿음과 관행은 많은 예술작품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영향 속에서 태어난 예술작품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마음에 불을 지릅니다. 종교는 인간을 얽매기보다 우리 안에 갇혀있던 상상력의 고리를 풀고, 가장 혁신적인 컬러와 소재,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옷을 만들도록 유혹해왔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현실은 좀 다릅니다. 일단 중세시대 미술은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어요.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잘못 이해해온 탓입니다. 


서구의 주요한 미술관을 갈 때마다 저는 소박하고 때로는 화려한 종교적 도상들 앞에서 한참을 서 있곤 합니다. 인간이 종교를 통해 구현하려고 하는 것, 혹은 얻고자 하는 것을 시대별 예술품을 통해 어느 정도는 맛볼 수 있어서입니다. 종교를 빼놓고선 로마네스크니 고딕이니, 종교개혁 후의 바로크 미술이 과연 이해가 될까요? 특히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고도의 심리 전쟁, 교리의 재확인과 종교적 세력 싸움의 중심에는 '미술'이라는 장치가 너무나도 확고부동하게 자리합니다. 



종교 복식이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기 위한 차원으로만 사용되었다고 알고 있다면 착각입니다. 가톨릭은 악에 대한 신의 승리, 선의 승리를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장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바티칸의 시스틴 성당 수장고에 있던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가톨릭 종교 복식들이 선보인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감춰져 있던' 욕망의 뿌리를 면전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어 아쉽습니다. 



우리는 종교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 순간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작업에 종교적 영성을 담기도 합니다. 물론 종교적 아이콘과 상징을 테마로 전시를 기획하는 문제는 마냥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종교계는 이런 식의 실험을 도발적으로 받아들이기 일쑤였고 신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앤드류 볼턴입니다, 저는 그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실에서 한번 만났었지요. 


그는 지금껏 뉴욕 메트의 굵직한 패션전시들을 기획해왔습니다. 그 앞에서 융복합이란 시대의 화두를 말하는 건 촌스러울지 모르겠네요. 패션이란 체계가 얼마나 응집력 있는 다양한 요소로 이뤄져 있는지를 그는 전시를 통해 풀어갈 뿐입니다. 저는 그가 참 부럽습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엄청난 컬렉션이 부럽고, 이런 전시를 위해 바티칸을 설득할 수 있는 기관에서 일하는 그가 부럽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20-21세기의 주요 의상을 통해, 옷에 재현된 종교적 상징의 의미에 대해 치열한 질문을 던집니다. 발렌시아가와 돌체 앤 가바나, 존 갈리아노, 장 폴 고티에, 마담 그레, 랑방, 알렉산더 맥퀸, 베르사체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들이 훔친 신의 영성과 상상력이 궁금합니다. 굳이 샤넬만을 언급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옷을 만드는 일은 한 시대의 남루해진 희망을 깁는 일이니까요. 이번 전시도록도 신청해두었습니다. 어떤 글들이 실리게 될지 어느 정도 예측은 가지만, 그래도 궁금하네요. 저의 목마름이 큰 탓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은 잘 짜인 한 벌의 스웨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