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옷을 짓고, 천개의 바람이 되어 떠난
안녕하세요.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입니다. 오늘은 슬픈 소식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네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께서 타계하셨습니다. 향년 82세의 나이로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오전에 부산하게 패션전시기획 회의를 하고 오후엔 라디오 방송 녹화를 하느라, SNS 실검도 체크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황망하게 뜬 부고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아픕니다. 사회 첫발을 내딛던 해, 신세계 연수원에서의 첫 만남을 인연으로 이후로도 뵐 기회가 많았습니다. 신입사원으로 막 들어가 패션 바잉에 대한 꿈을 키우던 때, 연수원에 강사로 오셨었어요.
선생님의 한복에 대한 열정은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졌습니다. 한복의 선과 색감에서 영감을 얻어 오트 쿠튀르 라인까지 도전하셨고 좋은 평가를 끌어내셨죠. 이영희 선생님이 서양복에 도전할 때, 비난을 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한복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유독 규정된 선 하나만 파괴해도 전통적 문법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말씀하시던 분들이 있던 때지요. 요즘은 이런 논쟁 자체가 해묵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복을 모방하되, 고정된 형과 선을 넘어 서구의 정신을 포용하고 변모시키는 노력은 이제 기본값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영희 선생님의 많은 작업들이 뉴욕의 컬렉터들에게 알려지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한복을 선보이셨고, 이후의 활약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께서 잘 아실 거예요. 1993년 파리의 프레타포르테에 첫 데뷔를 기점으로 우리의 한복이 가진 매혹의 힘을 이 분만큼 열심히 전한 분도 없습니다. 1993년 서양복에서 이신우 선생님과 함께 본인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무모하지만 문을 두드렸던' 세대셨지요.
케링 KERING이나 LVMH에서 조직한 세계적인 패션상을 최근 동양인들, 그중에서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자주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합니다. 이런 변화들의 뿌리 속에서, 그 작은 파도를 일으킨 손길들이 누구인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2003년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자신의 한복 12벌을 기증하셨고 이후로 이영희 한복박물관을 설립하신 후, 많은 서구 디자이너드에게 한복이 가진 장점과 동양의 이국적인 매력을 알리셨던 민간 외교관이시기도 했지요.
오늘 글에서 굳이 한복 디자이너란 칭호를 쓰지 않은 건, 한복을 창작의 원천으로 쓰되 여기에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으셨고 새로운 현대적 실험을 꾸준히 해오셨기에 그렇습니다. 한 벌의 옷을 통해 그저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이 발화하는 옷의 언어들을 좀 더 친숙하게 알리고자 노력했을 뿐이죠. 옷은 한 시대, 한 나라가 역사를 통해 누적해온 미적 감성의 집합체입니다. 우리는 그 미감을 흔히 전통이란 단어로 표현하며, 선대의 업적들을 받아들이죠. 하지만 이 전통이란 단어 Tradition을 살펴보면 Trans(그 너머의 세계)로 Dare(전해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후대에서 전해주는 것은 과거의 무늬와 정신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새로운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정신의 씨앗입니다. 과거를 이용하고 성찰의 거울로 삼되, 거기에 매이지 않는 것이죠.
이영희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날 거 같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