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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기 Jun 04. 2018

패션의 본질을 만나는 시간

기억해야 할 것들의 무게


이신우 선생님을 생각함


패션 디자이너 오리지널 리, 이신우 선생님 자택에 왔습니다. 8월 말에 열리는 패션전시의 두 주인공 중 한 분이시죠. 저는 요즘 롯데 에비뉴엘과의 협업으로, 근사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열어드려야 할 전시가치를 가진 분들이지만, 여전히 패션 디자이너의 전시를 국공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것이 힘든 상황입니다. 패션은 오랫동안 예술을 담아내는 담지자의 역할을 해왔음에도 항상 상업이라는 또 다른 축이 공공기관의 전시를 막는 요소가 되어 왔지요.


이신우 선생님이 주로 활약했던 80년대와 90년대는 한국 패션의 전성기였습니다.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기성복 시장과 함께,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암울했지만, 그 내면은  패션을 만나 새로운 분출구로 삼았습니다. 개성 넘치는 디자이너들이 우후죽순 나타났고, 그들은 시장에서 최선을 다해 경합했습니다.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간 많은 디자이너 중, 오리지널 리, 이신우 선생님과 앙드레 김 두 분을 골라 전시에 올리기로 했지요. 오늘 글은 이 두 분을 선정한 이유를 풀어내기 위함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들 앞에서


한 분은 타계하셨고, 또 한 분은 시장에서 많이 잊히셨습니다. 시중에서 오리지널 리, 혹은 이신우란 브랜드로 팔리는 옷들은 오늘 소개드릴 이신우 선생님이 제작한 옷들이 아닙니다. 90년대 IMF 직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브랜드는 타인의 손에 넘어갔지요. 이 과정에서 디자인의 화양연화라 할 시대를 풍미했던 디자인들과 좋은 작업들이 유실되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지요. 저는 이신우 선생님이 보여준 일관된 디자인 철학과 방법론, 답답했던 시대에 옷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세상에 대한 비전이 항상 놀라왔습니다.



룩북을 보다가


90년대 초반의 룩북을 보고 있자니, 80년대의 룩북을 보고 있자니, 세월이 흘러도 좋은 작업들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 기억되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제 안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었습니다.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면 이들이 살던 세대는 패션의 전성기였습니다. 이름 뒤에 패션 디자이너란 직함을 달면, 참 신비한 눈빛으로 응시해주던 시대였어요. 지금의 상황, 시장의 역학과 많이 달랐습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경합했지만, 기실 그 내면을 보면 외국 패션을 은연슬쩍 베끼는 작업도 정말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앙드레 김과 이신우 선생님 두 분을 반드시 무대에 다시 세우겠다고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요. 예술이나 패션, 혹은 디자인 영역에서 독창성(Originality)란 것을 만들고, 그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하며, 자신의 주요한 스타일링의 언어로, 패턴으로, 옷에 담아내는 정신으로 만들어가는 이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늦은 세상에 빨리 왔던 그를 생각하며


이신우 선생님의 작업들을 볼 때마다 '너무 빨리, 늦은 세상에' 태어난 것이 슬펐지요. 물론 이신우란 이름, 그가 만든 패션 브랜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거쳤고, 이 브랜드를 기억하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에서 옷을 기억할 때, 그 옷을 입었던 특정한 모멘트를 기억하는 법입니다. 여기에는 처음 그 옷을 입었을 때, 느꼈던 아련함도 담기기 마련이지요. 페이스북으로 처음 이 두 분에 대해 파일롯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두 분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말이에요. 결과는 놀라왔습니다. 장성한 나이의 분들, 40대 후반, 50대 초반이 된 상당수의 분들에게 이 브랜드가 어떻게 인지되는지, 한편으로 고맙고, 자신의 리즈시절을 기억하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전시를 통해 저는 이 분들을 한번 소환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마중물이 된다는 것은


60년대부터 착실하게 파리 무대를 준비하며 일본의 내면적 정신성을 포장했던 저패니즈 디자이너들과 달리,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중요한 계기들을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열악함 그 자체로 설명되던 시대, 패션을 가지고 이 나라를 알려온 디자이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 한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패션을 통해 소개하려고 스스로 마중물이 되려고 했습니다. 자택에서 이신우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저는 이 분에게 거장이니, 전설이니 하는 형용사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진부하기도 하려니와, 이런 수식어는 디자이너의 온 생을 제대로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저는 옷을 사랑하고, 하루 종일 옷을 만드는 작업만으로도 스스로 행복했던 한 인간을 봤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길을 정직하게 걸었던 이들에게는 향기가 나는 법입니다. 스스로 뒤로 물러서며, 이제는 내려놓았다고 하고, 잊혔다고 말씀도 하시죠. 하지만  2012년 이신우 선생님의 컴백쇼를 봤을 때, 흘렸던 눈물이 다시 났습니다. 이날 속으로 우느라, 선생님 앞에서 애교도 부렸습니다. 오래된 자료들을 설명해주시는 선생님 목소리가 환합니다. 정리하며 하나씩 공부하는 중. 평생을 디자이너로 살아오신 깊이는 자신이 잉태한 옷을 하나하나 짚어주실 때마다 되살아났습니다. 애써 선생님과 사진 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고사하셨어요. 전시회 오프닝 때 멋지게 오실 테니 그때를 기다려야겠습니다. 여러분도 이 날 꼭 와주세요. 갤러리 토크쇼도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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