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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Dec 06. 2022

금주의 영화잡문을 시작하며

2022_00

1.

 '이건 꼭 글로 남겨야지', 좋은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다만 조금 부족했던 의지와 비루한 글 솜씨, 그리고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약간의 민망함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렇게 몇 년이 지났을 뿐이다. 어쨌든 마음 한 켠에 '언젠가 해야 할 일'로 늘 자리잡고 있었다. 어떤 심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는 나조차 모르겠으나 이번만큼은 정말 글을 써야겠다는 강한 압박을 느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그럭저럭 편 수만 채우는 영화 관람을 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원인모를 변화 덕분에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앞으로 쓰게 될 글은 지난 시간 계속해서 약속을 미루어 왔던 나에 대한 반성과 맥이 얼추 비슷하다.


2.

 극장을 제대로 다니기 시작한 건 스무살 무렵부터다. 지금 내가 서른줄을 앞두고 있으니 올 해로 꼭 10년이 되었다.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하루 대부분을 극장에 머물며 미친 듯이 영화를 볼 때도 있었고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그 해 기대작만 몇 편 겨우 챙겨본 때도 있었다. 어떤 영화는 러닝타임이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갔음에도 상영관 조명이 켜지는게 아쉬웠을 때가 있었고, 또 어떤 영화는 90분 언저리 밖에 안되는 러닝타임 내내 몸을 꼬며 괴로워 했던 적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엔 내가 돈과 시간을 써가며 굳이 극장에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확실한 건 지난 10년동안 어쨌든 꾸준히 영화를 봤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볼 생각이라는 것이다. 가끔 '영화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따위의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까지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인사라도 한마디 건냈을텐데.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오랜 시간 만나온 연인에 대한 사랑 편지이기도 하다.


3.

 앞으로 쓸 글은 말 그대로 잡문(雜文)이다. 특정한 주제가 없다. 대체적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이 주를 이루겠지만 특정 장면에 꽂혀 그 얘기만 수두룩하게 써놓을 수도 있고 갑자기 생각난 별 볼일 없는 일화를 얘기할 수도 있다. 어디 잡지에 주간 연재라도 할 것인 양 '금주'라는 말도 적어놨지만 '매주 적겠다'보다는 '부지런히 적겠다'라는 의미에 가깝다. 거창한 비평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애초에 그럴 능력도 없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또, 꾸준하게 영화 감상 후 짧은 소회를 적어보자는 생각이다. 이렇게 보면 이 글은 영화 감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다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4.

 몇 해 전 출간된 이동진 평론가의 평론집 제목은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내 머릿속 한 켠에는 매겨놓은 별점 수만큼 많은 필름들이 두 번째 상영을 기다리며 쌓여 있다. 이제 소복한 먼지를 털어내고 영사기를 돌려볼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앞으로 내가 자주 방문할 영화관이기도 하다. 반성이자 편지고 다짐이자 영화관인 이 짧은 글에서 시작될 두 번째 상영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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