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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Dec 14. 2022

우리는 그 문법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나

2022_01. 영화 <컨택트>

1.

 영화 <컨택트>의 메시지는 꽤나 흥미롭다. 여기서 '흥미롭다'라는 표현은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 자체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를 흥미롭다고 표현하는 진짜 이유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꽤 재밌는 트릭이다. 관객들은 그 트릭을 알면서도 속게 된다. 왜? 그 이유가 지금 써내려갈 이야기다.


2.

 일단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이 영화의 반전이다. 영화의 시작, 그리고 진행 중 계속 삽입 되었던 플래시 백 장면이 사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플래시 포워드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무래도 정확할 것 같다)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장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한나라는 인물이 루이스의 딸(일 것)이라는 정보를 얻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루이스가 딸을 잃고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해낸다. 심지어 이렇게 짜 맞춰진 정보는 꽤나 그럴 듯하다. 그런데 사실 그 장면이 과거 장면이 아니라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면?


영화 <컨택트>

 영화는 이를 헵타포드 언어를 이해하게 된 루이스에겐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사라지고, 때문에 루이스가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워프-사피어 가설을 통해 나름대로 논리를 구축한다) 즉, 루이스는 헵타포드 언어를 터득해 자신이 미래에 낳게 될 딸을 반복해서 보게 된 것이다. 한나가 나오는 장면은 꽤 과하게 삽입되어 관객에게 '저 장면에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쉽사리 그것이 과거가 아닌 미래 장면일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명확하다.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이해하도록 훈련되어 왔기 때문이다.


3.

 영화가 탄생한 뒤, 영상 언어 혹은 영화 언어는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그리고 극장 혹은 TV를 통해 우리는 사는 동안 쉼 없이 영상에 노출되고 그 영화 '문법'을 자기도 모르게 체득한다. 정확하게 '이건 이거다'라고 설명하지는 못할지언정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가 습득한 영화 문법대로 영화를 이해한다는 얘기다.


에른스트 곰브리치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mental set'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내용을 줄이고 간단하게 설명해보자면 어떤 사물이나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관점을 토대로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본다는 것이다.


4.

 다시 <컨택트>로 돌아와 보자. 우리가 영화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현재 진행되는 헵타포드와 소통 과정과 중간중간 삽입되는 한나 이야기다. 여기서 한나 이야기는 그저 삽입될 뿐, 이것이 과거 이야기인지 미래 이야기인지 영화 내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그리고 '제멋대로' 과거 이야기라고 재단한 뒤 영화를 이해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영화를 우리가 아는 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시작과 끝, 그리고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이를 암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고도 새로운 해석을 하지 않는다. 그저 훈련된 인식 방법을 믿고 따라갈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 체계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인식 체계는 얼마나 허술한가. 헵타포드의 언어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방법을 뒤집어주고, 영화의 서술방식은 우리가 이런 인식 방법에 얼마나 얽매여 있었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5.

 이 방식대로 생각해보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들이 모두 틀린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진행되는 헵타포드와의 소통 과정과 중간중간 삽입되는 딸 한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되는 한나 이야기 사이에 헵타포드와 소통하는 과정이 삽입된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내가 볼 때,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개념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 이 영화의 목표다. 그러니 이 영화의 또 다른 해석을 찾기에 앞서 잠시 숨을 둘려보자. 그리고 이 훈련된 통념을 뒤집어 만들어낸 서사를 그리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문법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나.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5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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