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50. 영화 <윗집 사람들>
1.
영화 <롤러코스터>를 시작으로 벌써 네 번째 장편이다. 이제 '하정우'라는 이름 뒤에 '배우'라는 호칭을 붙이든, '감독'이라는 호칭을 붙이든, 어떤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때가 된 것 같다. 심지어 그 네 편의 영화 중 두 편이 2025년에 개봉했으니 올해는 배우보다 감독이라는 말이 더 익숙한 한 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정우 감독의 작품을 보면 쉬지 않고 툭툭 던지는 소위 잔잔바리 말장난들의 연속이 특유의 말맛을 주는데, 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이것이 진짜 웃겨서 웃는 것인지, 아니면 어처구니가 없어 흘러 나오는 것인지 모를 실소가 픽 새어 나온다. '아, 웃어버렸어'라며 자존심 상한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영화 속 대사는 하정우 감독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신작 <윗집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내내 참으로 가벼워 보이는 농담들을 쉴 새 없이 툭툭 던진다. 심지어 이번 영화 장르는 꽤나 농도 짙은 성인 코미디다. 이번 영화 또한 '아, 자존심 상해'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게 될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극장을 향했다.
2.
영화는 제목 그대로 윗집 사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 아랫집 사람의 이야기다. 부부라기보다는 룸메이트 정도에 가까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정아와 현수는 매일 밤마다 지나치게 과한 소리를 내며 사랑(?)을 표하는 윗집 부부 김 선생과 수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정아는 리모델링 기간 동안 소음을 참아준 윗집 사람들을 위해 먼저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그렇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된 네 사람의 식사 자리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3.
앞서 이야기했듯 이 영화를 포장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특유의 농담들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코미디답게 사람에 따라 다소 과하다 느껴질 수 있는 노골적인 성적 대사들이 오가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이렇다 할 노출 없이 진행된다. 성인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혹은 부부) 사이의 관계와 소통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말'을 통해 모든 승부를 본다.
대부분 연출도 대사를 살리는 데 집중하여 진행된다. 잘게 나누기보다는 길게 가져가는 컷들이 많이 보이며, 이 긴 카메라를 채워 넣은 배우들의 톡톡 튀는 대사 처리 또한 수많은 정보들이 귀에 따박따박 박히게 한다. 그리고 의외로 이를 살려주는 것은 자막이다.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는 드물게 영화 모든 대사에 한글자막을 달아 놨다. 물론 눈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피로가 늘기는 하지만 수많은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 은근히 고마운 부분이기도 하다.
4.
극은 여러 막으로 직접 나누어 진행하는데, 사실 크게 묶어보면 전반부, 후반부쯤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네 사람을 한 장소에 묶고, 여기서 형성되는 코미디를 신명 나게 보여준다. 후반부의 경우, 그 농담들을 조금은 내려놓고(말 그대로 조금. 후반부 또한 완벽히 진지해질 생각은 딱히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아와 현수의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여러 개로 나눠 막을 나누고, 한 장소 안에서 네 사람의 대사만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을 보면 연극적인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적은 로케이션과 연극적인 진행은 인물에게 더 집중하게 만드는데, 때문에 배우들이 이를 잘 꾸려나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 부분에 있어 네 배우 모두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연출에 이어 주연까지 함께 맡은 하정우는 특유의 능글맞고 능청스러운 연기를 평소와 같이 무난하게 소화한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공효진 배우의 생활 연기는 두말할 것 없다. 김동욱 배우 또한 내동 딴지만 걸던 현수가 저녁 식사를 통해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감정 변화 과정을 잘 풀어내고, 이하늬 배우는 당황스러운 제안을 건네는 손님에서 부부 관계를 카운슬링해주는 상담자로의 입장 변화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베테랑 배우들의 막힘없는 티키타카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꽤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물론 이를 지치지 않게 끌어나가는 연출 또한 배우들의 매력을 더욱 살려준다.
5.
물론 단점들 또한 여럿 존재한다. 대사만으로 진행되는 극에 시각적 변주나 흐름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인지 연근 요리 장면과 아크로바틱 한 요가 장면에 힘을 꽤 주었는데, 이 부분은 다소 뜬금없이 느껴진다. 윗집 부부들과 지나치게 가감 없이 털어놓는 성적인 대화들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판타지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이 외에도 호불호 갈릴 법한 여러 요소들을 놓고 봤을 때, 관객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6.
사실 영화를 보며 앞으로의 진행이 얼추 그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외성이나 참신함에 승부를 거는 영화로 보이지는 않으니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영화 자체의 소재와 수위를 생각했을 때,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관객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영화의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꽤 재밌게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지 않나,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아, 자존심 상해'라는 생각을 몇 번은 더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