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52. 영화 <대홍수>
1.
만족스럽지 못한 만듦새를 가진 영화들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그걸로 인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된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영화 <대홍수> 이야기다. 다소 과열된 사람들의 비판 행렬에 몇몇 사람들이 '이것은 비판이 아닌 비난'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런 사안으로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영화 흥행에 있어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지만, 비단 <대홍수> 뿐만 아니라 도 넘은 비난으로 눈물 흘렸을 여러 영화들과 제작진들을 생각했을 때, 한 번쯤은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런 이유로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영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게 어떤 이유에서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언급되는 영화는 한 번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
영화 <대홍수>는 기본적으로 재난 영화의 틀을 가지고 시작한다. 어느 날 전 세계에 전례 없는 홍수가 발생하고, 주인공 '안나'와 그의 아들 '자인'이 물에 잠긴 아파트를 탈출하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그러나 이는 영화 초반까지의 이야기고, 중반부를 넘어가며 이 모든 상황은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감정을 학습시키기 위한 가상현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영화에 대한 불호평이 지금과 같이 극대화된 지점도 아마 이 부분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선회하는 이야기가 나름의 반전이기 때문에 홍보 전면에 내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미 재난 영화라는 홍보를 통해 어떤 내용이 펼쳐질 것인지 머릿속에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리고 갔을 관객들에게 당황스러움을 안겨줬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 변주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소 갑작스럽고, 흐름을 매끄럽게 가져가지 못해 그 당황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라 보인다.
사실 갑작스러운 장르 변경 외에도 아쉬운 지점들이 꽤 존재한다. AI 강화학습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타임루프 설정은 재밌긴 하지만, 편집이 다소 난잡하다. 그러다 보니 설정 전달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관객 입장에서 불친절하게 느껴질 지점들이 몇몇 존재한다. 사실, 강화학습이라는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그렇게까지 익숙한 설정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더 전달하는 과정에 신경 썼어야 했다.
3.
아마 많은 관객들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자인'이라는 캐릭터로 인해 관객들이 느낄 피로가 상당하다. 사실 <대홍수> 뿐만 아니라 여러 영화들에서 어린이 캐릭터를 소위 '발암 캐릭터'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이들 특유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발적인 사건이 극을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흥미로움 보다는 짜증이 앞서 느껴지는 지점들이 더 많다. 때문에 갑작스러운 장르 변동이 있기 전에 이미 영화에 불편함을 느꼈을 관객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비단 <대홍수>만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린이 캐릭터를 이렇게 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린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4.
물론 장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이미 여러 영화들로 높아진 눈을 100% 만족시켜 주는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컴퓨터 그래픽 부분에서 많은 부분 발전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예산이나 후작업 시간 등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어 1:!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감독 전작인 <전지적 독자 시점>에 비해 훨씬 나은 그래픽을 보여준다. 러닝타임 내내 젖은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고생 또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병우 감독은 장편 데뷔작 <더 테러 라이브>을 통해 '관객 멱살을 끌고 가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바 있다. 그 이후 작품에서 꾸준히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번뜩였던 데뷔작이 우연히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부디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그때 그 힘 있는 연출을 다시 선보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