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을 위한 감상, 속편을 위한 숙제

2026_02. 영화 <비틀쥬스>

by 주유소가맥

1.

어제오늘 일이겠냐만, 속편이 범람하는 시대다. 애초에 시리즈물로 기획하여 자연스럽게 이전, 이후 작품과 연결되도록 만든 영화도 있고, 단순히 흥행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구태여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까지 덕지덕지 붙여가며 만든 영화도 있다. 어쨌든 영화라는 것이 하나의 산업으로 굴러가는 이상, 흥행이 되어야, 그러니까 일단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흥행한 작품의 속편은 수익 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안일 테니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속편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내에도 해외에도 영화사는 여럿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모든 영화사들이 각자 영화를 만들어낸다. 이 얘기는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영화가 개봉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간의 한계가 있으니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영화를 모두 챙겨볼 수는 없다. 시간 자체가 안될 수도 있고, 솔직히 취향의 문제로 보기 싫을 때도 있을 것이고. 요는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모두 챙겨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다.


2.

표준국어대사전에 설명된 '속편'의 뜻은 '이미 만들어진 책이나 영화 따위의 뒷이야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 '뒷이야기'다. 뒷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전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쏟아져 나오는 속편들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쏟아져 나오는 속편들의 수만큼 전편을 챙겨봐야 한다. 단순히 2배로 계산하는 것도 굉장히 러프하다. 요즘 영화들이 어디 한두 편쯤에서 끝나는가. 2편에서 3편, 더 나아가 4, 5편 이상까지도 이어지는 영화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영화들의 속편 하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전 작품들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3.

영화 <존 윅 3: 파라벨룸>

영화 <존 윅 3: 파라벨룸>이 개봉했을 때였을 것이다. 이전부터 <존 윅> 시리즈를 찬양해 마지않던 친구 한 명은 나에게 제발 이 영화 한 번만 봐달라며 바짓가랑이 붙들고 부탁했지만 그때는 이 시리즈가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말 그대로 '이 악물고' 보지 않았던 이 시리즈는 나중에 <존 윅 3: 파라벨룸>이 개봉할 때가 되어서야 '아, 극장에서 봐야 하는데'라는 마음으로 급하게 챙겨보게 되었다. 원래 밥 먹을 때도 마음이 급하면 체하는 법이다. 영화 자체는 재밌게 봤으나, 후다닥 몰아본 탓일까, 재미보다는 피로가 컸던 기억이 있다.


4.

그래도 <존 윅> 시리즈는 그 이후 나온 스핀오프 영화인 <발레리나>까지 챙겨봤으니 다행이지, 사실 전편을 챙겨봐 놓고 속편을 보지 않은 경우들도 몇몇 있다. 지난 2024년,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가 개봉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해당 영화는 영화 <비틀쥬스>의 36년 만에 나온 속편이다. 속편이 나오기까지 내 나이보다 오랜 시간 걸렸으니, 전편 내용이 기억 안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틀쥬스>는 분명 본 건 맞지만 지금은 언제 봤었는지 기억마저 흐릿해져 버린 어렴풋한 추억의 영화였다.


영화 <비틀쥬스>

어쨌든 속편이 개봉한다니 한 번쯤 전편을 복습해야겠다는 나름의 의무감에 준비 중인 축제 개막을 앞두고 한창 바쁘게 업무가 진행되었던 와중에도 VOD를 구입했다. 비틀쥬스로 분한 마이클 키튼 배우를 오랜만에 만나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지만 딱 거기까지, <비틀쥬스 비틀쥬스>를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는가, 한창 바쁘게 업무가 진행되었던 시기라고.


5.

영화 <치킨 런>

아마 내 세대 친구들이라면 대부분 영화 <치킨 런>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명가, 아드만 스튜디오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니, 어릴 적 추억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찾아봤을 법한 영화다. 그리고 영화 개봉 후 23년이나 지난 2023년, <치킨 런>의 속편, 영화 <치킨 런: 너겟의 탄생>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36년까지는 아니겠지만 23년도 충분히 긴 시간이다. 당연하게도 <치킨 런>에 대한 기억도 많이 휘발되었고, 속편을 보기 위해선 한 번쯤 복습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구입한 VOD는 대여 기간이 만료되기 직전 겨우겨우 감상할 수 있었지만, 예상했겠지만 그게 <치킨 런>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속편 공개 이후 3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치킨 런: 너겟의 탄생>을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얘는 왜 안 봤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6.

지금 개봉한 속편을 위해 이전에 개봉한 모든 시리즈를 챙겨보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전편을 다 봤더라도 새롭게 나오는 속편을 챙겨보는 것이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많은 관객들은 '전편 보지 않아도 이해됩니다' 정도의 SNS 속 친절한 관객들의 팁을 듣고 사전 정보 없이 극장을 찾는다. 썩 내키는 방법은 아니지만 유튜브에 대충 검색만 해봐도 나오는 수많은 요약 영상들을 통해 전편 감상을 대체하는 관객들도 있다. 이런 숙제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까지 굳이 전편을 관람하는 이유는 좀 더 제대로 속편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일종의 자기 만족도 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예전보다 덜해지기야 했지만, 여전히 모든 시리즈를 봐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때가 한두 번쯤 있다. 이제 이 영화들을 숙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그래야 속편을 보지 않더라도 전편을 봤던 내 시간들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테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