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_10. 영화 <총알탄 사나이> (1988)
1.
요 근래 개인 일정이 많아 꽤 오래 영화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영화 <햄넷>도, <센티멘탈 벨류>도 보기 못하고, 얼마 전, 이 정도는 시간이 맞지 않을까 싶어 예매했던 <브라이드!>는 예매 날짜를 착각하여 취소 가능 시간 몇 분만을 남겨놓고 겨우 예매 비용을 회수할 수 있었다. 극장에 가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OTT를 통해서라도 영화를 한편 두편 챙겨보고 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 시간 '보고싶어요' 표시만 해두고 묵혀두었던 옛 영화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비록 국내에서는 VOD로 직행했기에 화제성은 떨어졌지만, 리암 니슨를 주연으로 영화 <총알탄 사나이>가 새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예전부터 '언제 한번 봐야지, 봐야지'하며 염불을 외던 영화였으나, 왜인지 지금까지 항상 미뤄뒀던 시리즈였기 때문에, '이때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1988년작 <총알탄 사나이> VOD를 대여했는데, 얼굴 색 하나 안변하고 뻔뻔하게 밀어붙이는 코미디를 다 보고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대여 말고 소장으로 결제할 걸'. 아, 나는 언제쯤 이런 영화를 재밌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지난 2024년에 개봉한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은 정말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는 영화'였다. '어처구니 없다'라는 말 때문에 다소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 개봉하자마자 극장에서 직접 챙겨보고 직접 단평까지 적어 올렸으니 나름 감상에 정성을 들인 영화 중 한편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모임에서 'B급 코미디 상영회'라는 이름으로 몇몇 인원이 모여 이 영화를 함께 감상했는데, 그 모임을 추진한 것도 물론 나였다.
그 모임에서는 '단편영화 상영회'라는 이름으로 또 몇몇이 모여 단편영화 4편을 묶어 감상한 적도 있었다. 그 중 한편은 단편영화 <빨간마스크 KF94> 였는데,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빨간마스크의 애환이라는 영화의 설정에서부터 알 수 있듯 러닝타임 내내 말도 안되는 말장난만 가득한 단편영화다.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을 연출한 김민하 감독의 작품으로, 지문 수준으로 뚜렷한 김민하 감독의 코미디 코드를 보며 생각했다. '장편도, 단편도 이렇게까지 어처구니 없는(다시한번 말하지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말장난들만 가지고 채워넣을 수 있구나'. 나도 나지만, 참 이 감독님도 감독님이다.
지난 2025년에 개최되었던 재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영화 <교생실습>이 상영되었다. <교생실습>은 무려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의 속편으로, 솔직히 털어놓자면 개인적으로 작년 부천에서 가장 기대되는 작품 중 하나였다. 실질적으로 내용이 이어져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일단 보면 누구든 '아, 이거 그 영화랑 같은 감독님이 만든 거네'하고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시리즈는 5편까지 기획되어 있다는 것. 나는 어째서 이 시리즈의 속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3.
영화 <킬링 로맨스>를 봤을 때에도, <핸섬 가이즈>가 개봉했을 때에도, 그리고 하정우 감독 식 잔잔바리 말장난이 가득했던 <윗집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도,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나는 왜 이런 영화를 참을 수 없을까. 이런 류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제작진이든 관객이든 '세상에 농담으로 넘기지 못할 일 없다'는 마인드를 기본으로 세팅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 모든 일에 근심걱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가벼운 마음가짐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영화를 참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마음가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나는 한대 쥐어박고 싶은 직장 상사에게 큰 소리 하나 낼 수 없지만, 그 대신 사람 죽이러 온 귀신 머리끄덩이 정도는 잡아뜯어주기도 하고(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내가 봐도 참 못난 모습에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러면 어떤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그 놈들은 어차피 다 죽을 건데(영화 <핸섬 가이즈>).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스트레스 받지만, 수능 5수 끝에 동물과 대화하는 초능력을 얻을 수도 있고(영화 <킬링 로맨스>), 이제는 엄연히 사회문제로 자리잡아버린 층간소음은 피카츄 별명 만들어줄 정도의 이웃을 만드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영화 <윗집 사람들>). 무엇보다 일으키다 못해 배설을 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사고를 치고 다녀도 어찌저찌 세상은 굴러가고 인생은 흘러가며 사건은 해결된다(영화 <총알탄 사나이>).
이렇듯 세상 모든 일은 어떻게든 된다는 마인드,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어쩌면 우리가)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오늘 자기 전에 <총알탄 사나이>의 속편을 챙겨 볼 생각이다. 아직 이 시리즈의 속편이 3편이나 남았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번에는 물론 소장으로 구입할 것이다. 대여 기간 끝난 1편을 다시 한번 소장으로 구입하는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