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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Apr 01. 2023

크립톤으로 떠난 여행이 끝나는 날, 그는 돌아올 거예요

2023_18. 영화 <슈퍼맨>

1.

 많은 사람들이 농담처럼 "'영화 같다'라는 말로 우리 인생을 칭찬하고, '진짜 같다'라는 말로 영화를 칭찬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이 그냥 농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평생 영화 같은 삶을 꿈꾸고, 영화는 평생 우리가 사는 현실처럼 보이기 위해 발전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결국 평범한 현실을 살아갈 것이고, 영화가 아무리 생생해지더라도 그것은 허구에 그친다는 것을. 존재는 가지지 못하는 것을 탐한다. 결국 우리와 영화는 평생 서로를 탐하는 관계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없이 생산되고, 우리는 끝없이 극장을 향하는 것이 아닐까.


2.

 그런 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성 없는 캐릭터를 떠올릴 때, 뛰어나게 잘생기고 예쁜 미인, 몇 년은 노력해도 능숙해지기 힘든 일을 척척 해내는 능력자, 적당히 나쁘지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예쁘거나 잘생기고, 능력 있고, 매력 있는 사람들은 드물더라도 현실 속에 존재한다. 진짜 현실에 없는 사람은 정의롭고 이타적인 사람이다.


영화 <슈퍼맨>

 이상하게 그런 캐릭터가 좋았다. 고지식하다 느껴질 정도로 정의와 옳음을 추구하는 캐릭터에 마음이 더 갔다. 아예 배경 자체가 현실에서 벗어난 판타지 영화 같은 것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물상은 드물다 하더라도 현실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아주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정의와 옳음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나쁘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를 보며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사람이라며 추켜세우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진짜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캐릭터는 올곧은 사람이다. 적어도 나는 살아가며 힘이 있는, 동시에 올곧은 사람을 찾는 것이 삐뚤어진 탕아를 찾는 것보다 힘들었다.


3.

 같은 이유로 나는 슈퍼 히어로를 좋아한다.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상 결국 다른 인물들에 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준을 명확히 지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은 범인들에 비해 거대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자신의 삶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타적으로 힘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히어로 캐릭터들의 이런 모습을 반의 반만큼이라도 닮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 세상에 전쟁 따위의 악몽은 없었을 것이다.


4.

영화 <슈퍼맨>

 영화 <슈퍼맨>은 우리가 흔히 아는 바로 그 슈퍼맨(클락 켄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것도 이미 40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사실 지금 보자면 촌스럽고, 어설픈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그 어떤 히어로 영화도 이 정도로 도덕적 흠결을 줄여 '선'에 가까운 인물을 내세운 영화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의 정형이다.


 이 영화를 떠올릴 때 더더욱 영웅의 면모를 떠올리는 이유는 극 중 슈퍼맨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리브 때문이다. 그는 앞서 말했던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 '올곧은 사람'이었다. 드라마 <스몰빌>에 스완슨 박사로 출연해 젊은 클락 켄트에게 조언을 해주는 그를 보며, 온몸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연기와 영화에 대한 혼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크리스토퍼 리브 재단을 만들어 마비 환자들을 돕는 그를 보며 어쩌면 그는 진짜 슈퍼맨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때는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에 너무 심취해서 이미 절판됐던 그의 자서전을 헌책방에서 구해 읽어보기도 했다.


 과거 슈퍼맨 만화에 "Do good to others and every man can be a superman(다른 이들을 돕는다면 누구나 슈퍼맨이 될 수 있다)"라는 대사가 나왔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삶을 죽 살펴보면, 이 대사 그대로 그는 진짜 슈퍼맨이 된 것 같았다. 내가 그에 대해 제대로 알기도 한참 전, 그는 크립톤 행성으로 긴 여행을 떠났지만 언젠가 노란 태양을 쬐러 오기 위해 언젠가 한 번쯤 다시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5.

 요즘 나오는 히어로 영화들은 왜인지 옆집 아이가 놓쳐버린 풍선에는 관심이 없고 나뭇가지에서 떨고 있는 고양이는 쳐다보지 않으며 소매치기를 잡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세상의 멸망, 외계인의 침공, AI의 반란에서 인류를 구해주는 것은 물론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사실 세상에 나오는 블록버스터의 반이 넘는 것이 그런 내용 아닌가. '히어로 등장!'이라며 홍보한 영화들은 이제 질릴 정도로 많아졌지만, 옛날의 그 따뜻한 영웅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6.

영화 <슈퍼맨>

 아쉽게도 요즘 영화(정확히는 DCEU 시리즈)에서 봤던 슈퍼맨은 과거에 봤던 슈퍼맨과는 거리가 멀다. 크리스터퍼 리브의 슈퍼맨이 가지고 있던 그 캐릭터성을 가져간 것은 헨리 카빌의 슈퍼맨이 아니라 크리스 에반스의 캡틴 아메리카다. 그런고로 아쉽게도 내가 그렇게 사랑한 슈퍼맨을 지금 다시 보기는 힘들어졌다. 하지만 언젠가 정의를 위해 고민하고 완전무결한 도덕을 꿈꾸며 평화를 위해 싸우는 영웅, 슈퍼맨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오늘도, 정말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준 크리스토퍼 리브를 생각한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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