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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May 24. 2023

의견을 좁히지 않는 시대에 태어난 흑인 인어공주를 보며

2023_26. 영화 <인어공주>

1.

 영화 <인어공주> 캐스팅이 공개된 이후, 크게 엇갈린, 그리고 과하게 과열된 대중들의 반응들을 지켜보며 내가 생각한 것은 '사람들 참 무섭다'와 '차라리 빨리 개봉하고 끝났으면'이었다. 나는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 자체에 커다란 애정이 있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실사화된 영화들을 모두 챙겨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매번 개봉할 때면 나름 나쁘지 않게, 나름 즐겁게 관람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인어공주> 실사화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이유는 없었고,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정확히 말해 캐스팅이 공개되고 많은 사람들이 열을 올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2.

영화 <인어공주>

 디즈니 영화들의 지나친 PC 행보, 나 또한 마냥 긍정적으로 보는 편은 아니다. 혹자는 PC에 반감을 가지는 아시안들을 보며 '본인도 차별받는 아시안인데 어째서 PC 주의에 반감을 가지느냐'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떤 의도로 얘기한 건지는 안다. 다만, '차별받는 집단에 소속된 것'과 '차별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에 100% 공감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 않는가. 정확히 말해 나는 '영화에 다양한 인종과 성적 다양성, 차별받는 소수자 설정을 넣는다'라는 명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근 디즈니 영화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보여주는 과도한 PC 설정에 고개를 갸우뚱 정도 하는 것이다.


3.

 원작 기반의 타 영화들에서도 캐스팅이 공개될 때마다 팬들 사이에서 왈가왈부하며 다투는 모습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 영화는 도가 지나쳐도 많이 지나치다. 사실 양쪽 다 틀린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봤던 에리얼을 실사에서도 그대로 보고 싶었던 기존 팬들의 의견, 물론 공감한다. '<인어공주> 실사화'라는 뉴스를 봤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을 요소일 텐데. 사실 누군가 의견을 묻는다면 나도 이쪽에 가깝긴 하다. 반대로 에리얼 역으로 흑인을 캐스팅한 게 뭐가 문제냐는 의견, 이쪽도 각색 잘하고 흥미롭게 풀어나간다면 그게 나쁠 건 또 뭐가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설득하려고도, 설득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흑과 백만 존재하지 않듯이, 세상 모든 주장에도 100% 찬성도, 100% 부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유보적인 입장을 내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편의적인, 안일한 태도라고 비판할 수 있겠으나 내 의견은 그렇다. 어떤 주장에는 찬성과 부정이 있듯이, 유보적인 입장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인어공주>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로든) 반응 폭발한 캐스팅과 PC 문제에 관하여 어떤 부분에서는 긍정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부정하는, 중도적인 입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영화 <인어공주>

 가만히 살펴보면 이 영화를 '성공해야만 하는 영화' 혹은 '실패해야만 하는 영화'로 생각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개봉 전부터 별점란은 그 두 진영 사이의 기싸움 팽팽한 전장이었고, 정작 본편은 개봉도 하지 않았을 때부터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찬양 혹은 무조건적인 비난이 게시판을 가득 채웠다. 이런 현상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이 영화를 보기 전 내 감정은 '기대'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적당히 의견을 관철하는 정도가 아니라 집단 광기를 표출하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광기는 '실패해야만 하는 영화'로 보는 진영에서 더 크게 나타났던 것 같다)


5.

 어쨌든 영화 본편이 개봉했고 이제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을 해볼 수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아쉽게도 영화 자체가 썩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앞서 디즈니 측에서 이야기했던 각색 부분은 바뀐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 와닿는 변화가 있다 보기는 어려웠다. 이 정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배우 캐스팅을 선택했다면 영화 자체도 파격적으로 틀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크게 든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럴 거면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어두컴컴한 심해 속 모습은 눈이 조금 피곤했고, 지나치게 현실적인 해산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캐릭터들이 부담스럽게 보인 것도 사실이다.


영화 <인어공주>

 전반적으로 좋게 평가하기는 힘들다. 여러모로 아쉬운 디즈니 실사 영화 중 하나 정도로 볼 수 있는 정도 같다. '극단적으로 나뉘어있던 여론을 어느 정도 봉합할 수 있느냐'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라면 실망스러움이 더 클 것이다.


6.

 프랑수아 트뤼포는 '어떤 영화가 성공을 거둔다면 그것은 우선 사회학적 사건이 된다. 영화의 질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꽤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나도 영화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며 영화가 왜 흥행했는지, 사람들 사이에 왜 오르내리는지 나름대로 분석해보고자 할 때가 있는데, 도무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을 통해 생각해 보면 이유를 찾지 못했던 많은 영화들의 비밀이 풀리는 기분이다. '아, 이건 일종의 사건이구나,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를 넘어 (그게 좋은 것이 되었든 나쁜 것이 되었든) 어떤 영감을 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보고자 노력하면 그것을 '이해가 안될 정도'에 대한 어느 정도 답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인어공주>

 물론 프랑수아 트뤼포가 의도한 바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내 편의대로 명제를 오용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영화 <인어공주>를 이 말을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영화 자체나, 흥행보다는 이 영화가 가지고 온 많은 논란들이 하나의 사건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인어공주>를 통해 느낀 것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반대를 인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그렇게 보면 영화 <인어공주>는 요 근래 발생했던 그 어떤 사건보다 최근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는 의사소통 문제, 극단으로 치닿는 여론 동향 따위의 것들을 극명하게 보여줬던 사회 현상이지 않을까.


7.

 그래도 마냥 '대분열의 시대'와 같은 부정적인 시대에 대한 한탄만 남기려는 것은 아니다.('극단으로 치닿는'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놓고 글을 마무리한다면 너무 절망적이기도 하고) 'Political Correctness'라는 말과 이에 따른 움직임이 최근에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에서는 꽤 최근, 그것도 짧은 시간 내에 큰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사상이든지 초반에는 극단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강력한 반발 또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이 모습은 우리가 흔히 봐온 상황이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과도한 PC주의적 행태와 또 그에 따른 극단적인 반발은 사상이 발전하고 사회 전반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반합 정도의 경향성, 즉 테제와 안티테제의 격렬한 갈등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꽤 오래 걸릴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 진테제를 찾을 때까지 계속될 이 진통을 보다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그 방법을 다 함께 모색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 <인어공주> 제작 기간 내내 본 그 무서운 광기를 되짚어보며 다 함께 노력해 보면 좋지 않을까. 너무 순진한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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