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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Aug 26. 2023

언젠가 이런 영화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거라 믿어요

2023_39. 영화 <다음 소희>

1.

 영화를 선택할 때 최대한 편견이나 취향을 엮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이 더 보고싶은 영화, 조금은 피하고 싶은 영화가 나뉘기 마련이다. 사실 더 보고싶은 영화는 그냥 한두편 더 보면 끝나는 것이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조금 피하고 싶은 영화는 주의를 요망한다.


2.

 뻗은 손을 멈칫하게 되는 영화가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보면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슬픈 영화다. 공포영화를 보며 한 순간의 놀람이나 혐오 정도를 느끼는 경우는 많지만, '엘리베이터를 혼자 못타겠다'라거나 '머리를 못감겠다' 따위의 증상을 호소할 정도의 후유증을 느낀 적은 없다.


 이상하게도 그런 후유증을 느끼는 것은 슬픈 영화를 볼 때다.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젠 슬퍼하기도 민망해하는, 어떻게든 울려보고자 몸부림치는 소위 '신파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끌어올린, 눈을 찔러가며 흘린 눈물이라 할 지라도 꽤 오랜 시간 감정적인 부담을 느낀 적은 많았는데, 이런 경험을 미루어 볼 때 나에겐 공포영화보다 슬픈 영화에서 더 두려움을 느끼는 편인 것 같다.


영화 <다음 소희>

 두번째는 사회 고발 영화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것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그걸 모를 정도로 순수하다기엔 나 조차도 그 사회에 거칠게 반항하기 보다는 편승하는 쪽에 가까운 못난 어른이 되어버렸다. '이게 부정맥인가' 싶을 정도로 속이 갑갑해지는 답답한 현실을 보고 있자면 '이런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같은 열정이 아니라 오히려 무기력에 가까운 어떤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3.

 그렇다면 두 영화 중에 뭐가 더 부담스럽냐,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있다. 당연히 사회 고발 영화에 더 큰 부담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사회 고발 영화는 슬픈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차라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면 때려 죽이기라도 하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앞에 둔 인간은 무력할 수 밖에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사회 고발 영화는 최대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영화다.


4.

영화 <다음 소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고발 영화가 나오면 나름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이다. 이때 꼬박꼬박 챙겨보는 이유는 취향과 편견을 놓지 않고 영화를 고르겠다는 철학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 이유가 차지하는 일말의 지분도 없다 이야기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어쩌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영화들이 다루고 있는 사회 구조적 모순들이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

 영화 <다음 소희>는 지난 2017년 전주에서 발생한 콜센터 현장 실습생 자살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고등학교 3학년 소희는 통신사 협력사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게 된다. 직장을 얻었다는 기쁨도 잠시, 반복되는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 인륜을 져버리는 악덕한 회사와 그 안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부조리, 급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부당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졸업을 앞둔 2017년 1월, 소희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영화 <다음 소희>

 영화를 통해 보게 되는 소희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고작 19살 밖에 안된 아이가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어야 하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 고발 영화의 의의는 이런 것이다. 뉴스 하나로, 기사 하나로 넘기는 수 많은 사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다시 한번 자료를 찾게 하고, 내가 바꿀 수 있는게 없을지 몰라도, 나 혼자 바꾸기엔 너무 견고해 무력감을 느낄지 몰라도 그럼에도 경각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 말이다.


6.

 물론 영화는 다루고 있는 주제가 아닌, 영화 자체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자면 이 영화가 굉장히 뛰어난 영화라고가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희의 생전 행적을 복기하는 유진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는 인물이 다소 분절되어 보이도록 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줄곧 냉소적인 유진이 왜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댄스 학원에 다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이는 소희와 유진 사이의 연결고리를 위한 인위적인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 <다음 소희>

 물론 철저히 소희의 죽음을 뒤따라가며, 그 과정에서 소희의 죽음에 분노하는 관객의 눈과 감정을 대변하는 인물의 쓰임 상 일부러 인물 배경 설명을 덜어낸 것일 수 있지만 어쨌든 이는 영화의 빈틈이다. 이렇듯 <다음 소희>는 영화 자체를 놓고 봤을 때 당연하게도 아쉬운 부분도 있는 영화다. 때문에 나는 이 영화의 평가 자체를 높게 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라 해서 모두가 무조건 봐야한다는 위험한 생각 또한 전혀 없다.


7.

영화 <다음 소희>

 그럼에도, 영화 감상 여부를 떠나, 완성도 문제를 떠나, 영화 평가 문제를 떠나 어쨌든 누군가는 이런 영화를 만든다. 나 또한 모든 사회 고발 영화를 다 보진 못하더라도 한번씩 찾아본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를 봤으며, 영화 <바람이 나를 데려가게 해주오>를 봤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알아간다. '이게 부정맥인가' 싶은 답답함과 함께 어떤 주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진다. 이 경각심이 언젠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비록 이번 소희는 지키지 못했지만, 다음 소희는 나타나지 못할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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