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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Aug 31. 2023

서로 다르게 불안정한 지옥 속에서, 오키오키

2023_40. 영화 <지옥만세>

1.

영화 <지옥만세>

 영화 <지옥만세>의 두 주인공 송나미와 황선우는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동반 자살을 계획 중이다. 황선우는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학생들에게 불려 가 괴롭힘 당하고 송나미 또한 어머니가 운영하는 치킨집 댓글 테러를 당하는 등, 어린 학생으로서는 버티기 힘든 일들을 겪고 있다. 두 아이의 세계는 그들을 온전히 받쳐주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먼저 죽기로 약속한 송나미는 목을 매지만 곧 자신의 삶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박채린이 서울에 올라가 새 인생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두 아이는 이왕 죽을 거 본인들을 이렇게 만든 박채린 인생에 흠집이라도 내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향하게 된다. 복수를 향한 두 아이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 <지옥만세>

 굳은 다짐으로 서울에 올라왔건만 어처구니없게도 채린은 너무나도 반갑게 그 둘을 반긴다. 알고 보니 채린은 종교에 귀의하여 참회하는 삶을 살고 있었고, 자신이 용서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나미와 선우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둘은 혼란스러워진다. 채린은 정말 회개하고 있는 것일까? 채린은 정말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 것일까?


2.

 복수도 못하고 어영부영 채린과 함께 종교 시설에서 며칠 동안 묵게 된 나미와 선우는 곧 채린의 진실을 알게 된다. 종교 시설이라는 집단 내부 피라미드 정점에 채린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채린의 행동은 학교 또래집단에서 종교 교인 집단으로 옮겨 갔을 뿐, 노골적인 괴롭힘에서 보다 교묘한 눈속임으로 변경되었을 뿐, 종교 시설 내에 또 다른 나미와 선우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채린은 이전보다 훨씬 더 발전한 방식으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


영화 <지옥만세>

 시작과 동시에 여러 설정들로 재미를 붙여주지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나미와 선우 입장에서는 채린이 차라리 '잘 살고' 있어야 더 큰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그들이 행할 복수가 더 큰 의미를 갖겠지만, 지금 채린의 입장이 애매하게 불안정하다. 나미와 선우는 또래 집단의 배격과 폭력으로 본인들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던 아이들이다. 채린은 집이 망하고, 봉사점수를 채워 최대한 빨리 낙원으로 떠나야 한다. 채린이 낙원에 가기 전에는 교내 또래집단에서처럼 완벽한 정점에 오르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채린은 자신이 그렇게 못 괴롭혀 안달이던 나미, 선우와 같은 사람들에게 헛된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채린의 세상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 <지옥만세>

 여기서 '불안정한 세상'은 두 가지 성격으로 나뉜다. 하나는 나미, 선우의 세상이다. 그들이 소망하던 것은 '정상의 삶'이다.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여느 아이들처럼 수학여행을 가는 삶이다. 누구나 누려야 할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채린의 세상이다. 그가 갈구하는 것은 '권력의 삶'이다. 그것도 삐뚤어진.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고 그것을 통해 권력을 누리며, 타깃을 설정해 폭력적 성향의 배출구를 만들어놓는 것이다. 정 반대의 흔들림은 세 인물, 두 구도의 원론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결국 이 영화는 불안정한 세상을 타개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대비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작은 존재가 감당하기 거대한 현상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영화다. 즉, 영화 <지옥만세>는 시각적 스펙터클만 없을 뿐, 극단적 상황 속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낸 일종의 재난 영화와도 비슷하다.


3.

 결국 채린은 두 아이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 채린이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이유(낙원)조차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그렇게 무시하던 두 아이의 도움을 통해 종교집단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구원이 게임은 아니지만, 채린은 그 어떤 부분에서도 완벽하게 패배했다. 피라미드 구성원의 위아래가 뒤집혔고, 작지만 애써 설계해 놓은 세계의 최하층으로 내려가 도망자가 되었잖는가. 송나미 말마따나 '박채린 인생에 기스 하나'는 내지 못했지만 어쨌든 채린은 얼굴에 큰 상처를 얻는다. 채린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 것은 종교 집단의 퇴마 의식이다. 그녀는 그녀가 만들어둔 불안정한 세계가 마침내 깨져버릴 때, 그 파편으로 상처 입는다.


영화 <지옥만세>

 나미와 선우는 다시 지옥으로 돌아갔다. 다만, 두 아이의 지옥은 이전과 조금 다를 것이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 또한 두 아이의 성장담이고, 그들이 겪은 수학여행을 기반으로 한 로드무비다. 여행의 끝은 성장이다. 이전에는 자살할 생각에 마음 급급했던 지옥이라면 그들이 새롭게 맞이한 지옥은 '웰 컴 백 투 헬이다 시발'에 '오키오키'라며 웃으며 대답하는 지옥이다. 어쩌면 두 아이는 그들이 원하는 '정상의 삶'에 조금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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