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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Oct 29. 2023

예술성과 오락성을 정의하지 못하더라도 생각 한번쯤은

2023_48.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1.

 아니라고 말들 하긴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블록버스터 영화, 거대 프렌차이즈 영화들, 조금 더 넓게 이야기 하자면 전반적인 상업영화들을 조금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영화의 '예술성'을 논할 때, 그 범주 바깥의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화의 예술성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정확히 그 경계나 조건을 정하기 힘들지만, 사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어떤 관념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영화를 예술성 정도로만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일까. 어떤 영화는 미술이 좋은 영화가 있고, 사운드가 괜찮은 영화가 있다. 촬영이 기가막힌 영화가 있고, 담고있는 메시지가 좋은 영화가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한 영화도 존재하고.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상업영화에도 있는 것들인데. 예술성과 오락성은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체적인 경향은 있을 수 있어도, 철저하게 분리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영화는 어느정도의 예술성과 어느정도의 오락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결국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이 없는 얘기다.


2.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엑스맨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편 세개를 골라보자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그리고 <로건>이다. 특히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로건>은 웬만한 영화에서 받지 못할 진한 감동이 있다. 이 감동은 길디 길게 이어나간 프렌차이즈 시리즈만이 팬들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이다.


 이 영화의 감동을 느낄 때, 재밌었던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장기간 이어지며, 글로벌 박스오피스를 독점하듯이 공격적으로 제작되는 영화들을 비판하곤 하는데(그리고 실제로 지탄받아야 할 부분들이 많은 기획들도 많지만) 반대로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고 오랜 기간동안 이어진 지극히 상업영화인 덕분에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는 것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3.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앞의 14년에 가깝게 이어온,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사실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던 본편과 후속편들이 아니었다면 의미가 없는 영화였을 것이다. 영화 <로건> 또한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선행된 시리즈들로 쌓아온 서사 없이 단 한 편으로만 로건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대다수 관객들은 극 중 캐릭터들에게 몰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로건>

 오래된 시리즈는 관객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관객들의 추억을 책임진다. 이제 시리즈는 단순히 제작사만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 가끔은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들이 선행해야만 받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인 예술 영화에서는 단언컨대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수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각자 의도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4.

 10여년 전, 군대도 가기 전의 이야기다. 지역 독립영화협회에서 진행하는 단편영화 워크숍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독립영화협회 사무실에는 영화 <토리노의 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여러 포스터들이 있었지만 유난히 그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어떤 영화길래 저렇게 대표작인 것인 마냥 붙어있나'라는 생각에 <토리노의 말>과 벨라 타르 감독에 관하여 이것저것 찾아보곤 했다. 


영화 <토리노의 말>

 그때의 나도 그렇고, 지금의 나도 그렇고 <토리노의 말>은 좋은 영화느냐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참 어려운 영화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지적인 허영을 충족시키기에 너무 적합한 영화 중 하나기도 했다. 그 뒤로 나에게 <토리노의 말>은 '예술 영화' 혹은 '수준 높은 영화'의 대명사처럼 느껴졌다. 이래서 첫 인상이 중요한 것인가, 여하튼 독립영화협회에서 처음 접한(심지어 거기서 본 것은 영화 본편도 아니고 포스터 뿐이었다) <토리노의 말>은 내가 '수준 높은 영화'의 예시를 들 때 가장 먼저 말습관처럼 나오는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죽기 바로 직전에 어떤 영화를 보겠느냐, 물어본다면 <토리노의 말>을 고를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따지자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가까울 것 같다. 앞서 이야기 했듯 예술성이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연출, 각본, 편집과 같은 영화 자체에 대한 부분부터, 내가 받은 몰입감과 감동의 깊이같은 영화 외적으로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것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기준이라면 나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도 충분한 예술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더 오락성에 치중했을 뿐.


5.

 굳이 다른 영화를 끌어 내리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그만큼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재미는 제각각이라는 의미다. 사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영화에서 벨라 타르 영화의 정취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반대로 벨라 타르 영화에서 매튜 본 감독의 영화가 주는 흥미를 느끼고자 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을 것이고.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로건>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을 <토리노의 말>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다. 반대로 <토리노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엑스맨> 시리즈에서 절대 얻을 수 없고. 두 영화는 각자의 예술성이 있고 각자의 오락성이 있다.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예술 영화', 누군가 그 경계를 물어본다면 나는 정확하게 답할 자신이 없다. 다만, 우리가 흔히 '예술 영화'라 부르는 영화와 '상업 영화'라 부르는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도 못했던 예술 영화를 그나마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며 나름대로 얻은 (약간은 허탈한)교훈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69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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