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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Jan 05. 2024

평소와 별다를 것 없이 새해가 되었다

2024_01.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1.

 집에서 마시는 맥주 한 잔, 동네 술집에서 마시는 소주 한 잔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렇다. 평소와 별다를 것 없이 새해가 되었다. 연말이라고, 또 새해라고 온갖 청승을 부렸던 작년을 생각하면 차이를 넘어 괴리를 느낄 정도로 무던하게 새해를 시작했다.


 변한 것은 없다. 아침에 눈을 떠보면 여전히 같은 집, 같은 방이었고, 여유롭게 운동을 다녀왔으며, 언제나처럼 영화 한 편을 봤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새 휴대폰을 샀다는 이유로 잠시 설치해 뒀던 유튜브를 삭제했다는 것. 반년 하고도 몇 개월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애써 거리 뒀던 친구였는데, 어찌나 살가운 놈인지 그 몇 주 설치해 둔 것만으로도 다시금 내 삶을 조용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새해가 아니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 친구에게 내 일상을 맡겨 뒀겠지, 생각했다. 이렇게 다시 잡음이 사라진 인생의 새해 첫날, 지나치게 조용한 일상에 불안함도 느끼긴 했으나 어쨌든 산다는 것이란 참 평화롭지 않나, 생각했다. 


2.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브루스 놀란은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앵커 자리는 자신의 라이벌인 에반에게 넘어갔고, 이에 대하여 온갖 불만을 표하다 방송국에서 쫓겨났으며, 집에 오는 길에는 양아치들에게 얻어맞고, 여자친구에게는 잔뜩 화만 내고 집을 나섰다. 하다 하다 차까지 망가진 브루스는 사는 게 진저리나 하늘을 원망하며 소리치고, 보기에 참 안쓰러웠는지 신이 직접 브루스에게 연락한다. 전능하신 분이고 신성하신 분이니 에둘러 잘 말해주긴 했으나 어쨌든 결론은 '답답하면 네가 해보든지'. 그렇게 일주일 동안 신의 능력을 얻게 된 브루스. 이제 그의 삶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을까?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는 불평불만 많던 주인공 브루스가 신과의 만남 이후 깨달음을 얻고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런 주제의 여느 영화들(예를 들어 영화 <어바웃 타임>이나 <사랑의 블랙홀>과 같은)이 그러하듯, 브루스가 깨달은 것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브루스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신의 능력을 적극 활용한 거창한 무언가를 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성취와 소소한 행복, 온정, 고마움에 있다. 강아지 배변훈련을 성공시키고, 거지와 함께 팻말을 들어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기를 빌어주는 것. 이것들은 어떤 거대한 권능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그저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뿐이다.


 브루스의 삶은 평화를 찾았다. 그의 인생은 특별할 것 없는, 어쩌면 별 볼 일 없는 전과 같이 돌아왔지만, 그는 더 이상 삶을 그저 그런 삶, 불평불만 많은 삶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았으며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금 발견했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3.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는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유쾌한 영화다. 더 잘 만든 영화, 더 웃긴 영화들이야 찾아보면 숱하게 많겠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브루스 올마이티>만큼 유쾌한 영화는 여태껏 보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많이 신세 지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미처 해결하지 못한 스트레스로, 내뱉지 못해 삼킨 화로 머리가 아파올 때마다 나는 그 영화를 꺼내보곤 했다.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한다고 생각하면 나도 같이 유쾌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세상 유쾌한 영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를 보는 난 항상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볼 때의 나는 브루스처럼 온갖 불평불만이 많았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던하게 시작한 이번 새해 첫날을 생각해 보면 새해 목표라는 것이 거창한 무언가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무언가를 이뤄야지'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과 같은. 그토록 부정적이던 브루스가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처럼 온갖 불평불만 가득한 상태로 <브루스 올마이티>를 보던 나도 무언가를 깨닫게 된 것일까. 언젠가 이 영화를 또다시 꺼내보게 될 때, 나는 브루스를 보고 그의 삶을 질투하게 될까, 아니면 공감하게 될까.


4.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사실 그럼에도 올해 이루고 싶은 무언가 들을 꼬박 적어보기도 한다. 여태껏 그래왔던 관성이 작용한 탓이기도 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은 내 일상에 대해 보답해야 할 때라는 생각도 있는 탓이다. 어디선가 들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보자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하는 동물이지 않는가. 그것이 빼는 것이든, 더하는 것이든, 소소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올해는 브루스가 느꼈던 것을 나도 느끼며 그럴듯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기를 꿈꾼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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