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유소가맥 Jan 14. 2024

내 연예인이 범죄자가 되었을 때

2024_02. 영화 <성덕>

1.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연예계 소식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안그럴텐데'. 너무 미련한 행동이라는 것이 자명한 일을 벌여 어울리지도 않는 사회면에 얼굴을 들이미는 몇몇 연예인들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생각했다. 물론 당장 내 일도 아니고, 웬만큼 파장을 일으킬만한 일들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 기사들에 크게 연연하는 편도 아니기에 금새 기억에서 잊혀지곤 했다. 무엇보다 본인이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는 하지 않는가. 아마 나는 평생을 살아도 유명인의 입장이 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 나름의 입장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뉴스에는 연예인 한명만의 입장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다. 직접적인 관계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그들의 언행에 영향 받고 어쩌면 인생까지 뒤흔들리는 사람들이 그 뉴스의 이면에 함께 동반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내가 '그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 바로 '팬'이다.


영화 <성덕>

 영화 <성덕>은 연출을 맡은 오세연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누군가의 팬이었던, 더 나아가 '성덕'이 되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기에 정확히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연예인을 잃은 성덕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이 열렬하게 사랑했던 연예인들이 범죄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

 영화에서 가장 크게 눈길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소재다. '범죄자가 된 연예인의 팬들'이라는 재기발랄한 소재를 봤을 때, 혹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영화도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 그 팬들의 입장을 나름 세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가수 정준영과 전 빅뱅 멤버였던 승리,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연예계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얼추 유추할 수 있는 몇몇 연예인들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직접 나와 인터뷰를 이어간다. 그들이 함께 만나 소위 '덕질'하던 때를 추억하고, 굿즈들을 모아 처분하는 과정 또한 나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그들에게 덕질과 그 대상의 의미를 말하고자 한다.


영화 <성덕>

 감독이 힘들었던 시절, 정준영이 그녀를 위로하며 관계가 형성되었고, 정준영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모인 그의 팬들 사이에서 또 다시 관계가 형성된다. 그들이 맺은 일종의 연대는 연예인이 범죄자가 된 이후에도 이어지며, 그들이 만든 공동체는 덕질할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상실감과 배신감 사이 어디쯤에 놓인 그들 스스로를 격려한다.


 이는 한 연예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너무도 명백하지만 곧바로 애정을 끊어낼 수 없는 팬의 사정이다. 소위 '덕질'은 그저 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형성된 공동체 의식과 연대 의식, 그리고 한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일종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탈덕'은 이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의 성장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어쩌면 그 성장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것이기에 뼈아픈 과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영화 <성덕>

 영화는 팬심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범죄자가 된 연예인의 팬'의 심리를 파헤치기 위해 감독은 직접 소위 '박사모'라 불리는 이들의 박근혜 석방 시위에 나가 태극기 집회와 범죄자 연예인에게 남아있는 팬들의 입장을 비교하고 이를 통해 팬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하는 흥미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비록 성공적으로 보이진 않더라도 이를 통해 무조건적인 우상화의 민낯을 드러낸다.


3.

 하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쉬움은 재기발랄한 소재로 커버하기 어려워 보인다. 신선한 소재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84분 내내 탈덕한 몇몇 팬들의 원망어린 목소리가 동어반복된다. 이들이 느꼈을 배신감 내지 상실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영화 내에서 이를 비추는 빈도가 잦다. 또한 이들의 인터뷰가 짜임새 있게 구조되었다기 보다는 넓게 범주화하여 단순히 나열한 정도로 제시되어 그 피로가 더 크게 다가온다.


영화 <성덕>

 또한 이런 동어 반복 속, 제시한 주제에 대한 깊은 고찰이 느껴지지 않아 더 아쉽다. '한때 팬이었던, 범죄자가 된 연예인에 대한 원망'이 크다고 해서, 그 나열이 길다고 해서 그것이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것과 같은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예인의 범죄사실을 처음 보도한 기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좀처럼 뻗어나가지 못한다. 앞서 말했 듯, 박사모와 범죄 연예인 팬덤을 비교하는 시도는 흥미롭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팬들을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며 더 깊은 고찰로 넘어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범죄자가 된 연예인의 팬들'이라는 소재의 재치만으로 영화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다.


4.

 영화 말미, 감독은 친구와 함께 '다시는 누군가의 팬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민망해질 정도로 해맑게 새로운 덕질을 시작한다. 이들이 느꼈던 배신감은 이들이 다시 사랑에 빠지지 못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덕질은 단순히 대상이 되는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이후의 팬질에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팬덤 문화, 그리고 그들 사이의 연대, 그리고 어떤 이들의 맹목성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소와 별다를 것 없이 새해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