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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Mar 09. 2024

두 사람은 인연이었다.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2024_10.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1.

 인연의 한자가 '因緣'이 아닌 '人緣'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현대 한국어로 흔히 쓰이는 뜻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는 의미니, 응당 '人'이 쓰일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내린 결론이었다. 인연이라는 단어가 불교에서 온 단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은 물론이다.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면 현실과 동떨어진, 손에 닿지 않을 법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어떻게 보면 이 피곤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도 모르게 발동한 일종의 방어 기제였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하기엔 너무 벅차니까. 인연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한 것 또한 여러 차례 있었던 방어 기제 때문이었다. 그때서야 인연이라는 단어가 불교에서 왔다는 것도, 사람 인(人)이 아닌 인할 인(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순간 도피를 위한 고찰이었지만, 어쨌든 삶의 시야가 확장된 순간이었다.


2.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요컨대 현실의 문제들은 삶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해성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미처 떠나지 못한 12살의 순간은 군에서 복무하던 24살, 여자친구와 이별한 36살에 그를 다시 찾아온다. 그게 어떤 결말을 향한 것이든, 갑작스러웠던 12살의 이별을 명확히 매듭지어야 이다음의 삶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그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성과 나영의 재회는 두 번 반복된다. 첫 번째 재회는 24살에 찾아온다. 군대를 전역한 해성이 SNS를 통해 나영을 찾고, 이를 우연히 본 나영이 해성에게 연락한다. 돈과 시간, 물리적 거리 따위의 현실적인 문제로 두 사람은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영상 통화를 통해 느슨하게나마 연결된다. 여기서 두 사람은 서로 머릿속에만  남아있던 각자의 12살과 같이 작은 노트북 화면 속에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의 소통은 기억 속 12살을 물리적인 방법으로 다시 재생한 것에 가깝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노벨상을 꿈꾸던 나영은 이제 퓰리쳐 상을 꿈꾼다. 나영을 이겨 1등을 차지한 해성은 이제 꽤 괜찮은 대학에 들어간 대학생이다. 나영은 이미 '나영'이 아닌 '노라'지만 해성은 여전히 그를 '나영'이라 부른다. 이렇듯 그들이 공유한 현재는 현재라기 보단, 과거의 연장선상에 가깝다. 같은 의미로 나영이 서울로 가는 비행기 표를 찾은 것은 단순히 해성이 보고 싶어서라기 보단 서울에 두고 왔던 과거로의 회귀에 관한 욕구다.


3.

 더불어 그들의 연결은 통신상 문제로 뜨문뜨문 끊기고 지연된다. 결국 작은 화면 속 재생된 두 사람은 온전하게 남아있지 못하고 시간이라는 채에 걸러져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한 기억이라는 것과 상통한다. 그들에게 그들이 겪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은 없다.


 나영이 해성에게 '뉴욕에 안 와?'라고 물을 때, 반대로 해성이 나영에게 '서울에 안 와?'라고 물을 때, '내가 왜?'라는 대답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이 찾은 서로는 현재 각자의 위치에 있는 서로가 아니라 12년 전의 서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영이 이러한 욕구를 넘어 본인의 삶에 충실하고자 할 때, 즉,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그들의 연결은 끝난다.


4.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또다시 12년 후, 36살이 되어서 찾아온 재회는 비로소 물리적으로 연결된다. 해성은 나영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간다. 두 번째 재회는 첫 번째와는 반대다. 나영에게 12년 전과 같은 당찬 목표는 없다. 노벨상을, 퓰리쳐 상을 노렸던 그녀는 이제 어떤 상도 꿈꾸지 않는다. 그녀는 뉴욕에 정착했고, 남편이 있으며 현재의 삶을 살아간다. 해성은 돈 문제로 결혼 계획에 문제가 생겨 여자친구와 시간을 갖는 중이다. 나영은 남편에게 해성을 '완전 한국 남자'라고 설명한다. 그때 그 시절의 패기 있던 둘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태평양이라는 거리를 건너, 14시간이라는 시차를 넘어, 더 나아가 24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그들은 시공간을 극복하고 물리적인 접촉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은 본인이 있어야 할 곳을, 서로를 서로가 있을 곳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추억을 그 시간에 온전히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물리적으로 가까워졌지만 감정적으로는 오히려 차분하며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멀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두 사람은 두 번째 재회가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역설적이게도 이별을 위한 것이다. 과거를 과거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의 서로를 마주 본다. 통신상 문제로 인한 끊김 없이 서로를 뚜렷하게 바라보고, 대화 사이의 침묵은 외부의 요건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추측하거나 내 생각을 가다듬을 때 발생한다. 카메라 또한 이를 의식하듯 그들을 길게 비춘다.


5.

 두 사람이 있는 곳이 현재임을 상기시켜 주는 인물은 나영의 남편, 아서다. 자신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나영의 과거에 방문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나영이 과거를 마주할 수 있도록 탐탁지 않았음이 분명함에도 해성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진다. 아서는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해성이 결혼사진 속 나영의 얼굴만 확대할 때에도, 식사 자리에서 해성과 나영이 한국말로 대화할 때에도, 다시 말해 두 사람 사이에서 배제되어도 아서는 묵묵히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해성을 바래다준 뒤 나영은 아서의 품에 안겨 운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랫동안 품고 있던 과거를 떠나보낸 뒤, 현재로 돌아온다. 현재는 내가 지금 존재할 수 있도록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한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 추억을 떠나보냈다. 이제 두 사람의 벡터값은 온전히 현재로 향한다.


6.

 어쩌면 인연이란, 내 옆에 둬야 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떠나보낼 수 있는 누군가라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둘 사이 관계의 방점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의 회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득히 먼 미래를 향한 시선도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켜켜이 쌓아온 경험들이 만들어낸 지금 이 순간의 우리다. 그리고 두 사람은 24년의 시간으로, 두 번의 재회로, 세 번의 삶으로 열두 살의 그들을 마침내 떠나보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인연이었다.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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