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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Jan 06. 2023

영화를 통해 배우를 기억한다는 것

2023_01.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1.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라는 영화를 본 날이 한 번씩 생각난다. 2016년은 내가 군대에서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로 여느 복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수많은 남성들이 그렇듯 나 또한 군대에서 '미래'라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곤 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그 숱한 고민과 계획은 전역과 동시에 사라지고 하루하루 '오늘은 어떤 영화를 봐야 하나'와 '오늘은 어디서 술을 마실까', 그리고 '오늘은 어떻게 해야 덜 열심히 살 수 있을까'라는 인생 망치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삼각 굴레 속에서 살고 있었다.


2.

 그날도 여느 때처럼 '오늘은 어떤 영화를 봐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로그 원>이 개봉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봤다' 이상의 감정이 없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지금도 스타워즈 시리즈에 딱히 애정이 있진 않다. 애초에 '스타워즈'라는 시리즈에 대한 첫 기억은 어릴 적 비디오 대여점에 길게 늘여져 있는 '스타트렉' 시리즈(정확히 어떤 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의 비디오 껍데기를 보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던 스타워즈를 갖다 붙였던 것이었다. 스타워즈가 1편이라면 스타트렉이 2편이고 뭐, 3편은 또 다른 스타 무엇이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 두 시리즈가 아예 다른 것임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스타워즈 시리즈에 대한 첫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타트렉으로 시작했다.


3.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때문에 <로그 원>을 볼까 말까 꽤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정 없는 시리즈의 스핀오프까지 챙겨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꽤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을 망치는 삼각 굴레'에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던 것은 '오늘은 어떤 영화를 봐야 하나'였고 당시 관에 걸려있는 영화들은 웬만해선 봤거나 딱히 끌리지 않은 것들 뿐이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또, 어쨌든 한 해가 가기 전에 그럴듯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헐리우드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시리즈라면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로그 원>은 이런 미사여구를 붙여 '왜 봤느냐'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만듦새가 썩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특히 영화 말미에 꽤 반가운 카메오가 등장해 그 만족을 배가시켜 줬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레아 공주는 여전히 아름다웠으며 변함없이 온 우주를 위한 희망을 전달하고 있었다.


4.

 그럴듯한 만족감을 품에 안고 극장을 나선 내가 놀란 것은 다신 만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젊은 레아 공주를 만난 것보다 영화를 보는 사이 보도된 캐리 피셔의 사망 뉴스 때문이었다. <로그 원> 상영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젊은 레아 공주는 반복해서 희망을 전달했지만 적어도 내가 만났던 그 레아 공주는 내가 영화를 보았던 그 영화관, 그 회차 상영이 끝나고 영사기 전원이 꺼진 순간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영화 상영 시간과 캐리 피셔가 떠난 그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적어도 나에게 있어 캐리 피셔는 삶의 마지막까지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 우주의 영웅으로 남게 되었다.


5.

 그날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는데 나는 레아 공주가 아닌 캐리 피셔의 삶을 생각보다 알지 못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의 게시글이나 뉴스를 통해 종종 소식을 듣긴 했지만 크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스타워즈 외에는 크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요는 그녀가 그녀의 삶 속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영화로 인하여 내가 어느 정도 감화되었다는 것이다. 영감이니 희망이니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순간 재미를 얻어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나는 그녀를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로, 그녀가 연기한 배역으로. 영화를 통한 간접적인 만남이지만 어쩌면 캐리 피셔를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로그 원>을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낼 수 있었다는 말은 가십거리나 호들갑스러운 연예 뉴스 따위를 통해 그녀의 마지막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와 같다. 한 배우의 출연 영화와 그 배우의 마지막을 전하는 뉴스를 함께 접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상황이 아님에도 썩 나쁜 기억으로만 남아있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도 은하계 저 너머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포스가 함께하길.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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