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19.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
1.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할 때, 그때 나도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이럴 때마다 한 번씩 허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이렇게 화제 되고 입소문 탈 영화라면 도대체 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할 당시 나는 보지 못했던 걸까? 웬만큼 중요한 일정이 겹치지 않는 이상, 큰 영화제들은 꼭 방문하며 한 회차라도 더 보고자 잠도 줄이고 식사도 거르며 영화를 허겁지겁 머릿속에 집어넣곤 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돌이켜보면 정작 화제 된 영화들은 한 편도 보지 않고 비교적 많이 언급되지 않는 영화들을 나 혼자 소소하게 곱씹어보는 일이 허다했다.
물론 화제성과 작품성이 동일한 것도 아니고 비교적 언급이 적었던 영화들도 각자의 매력이 충분히 있었지만, 그래도 한두 편 정도는 화제성에 기대어 영화를 선택할 법도 하지 않는가. 부천뿐만 아니라 전주에서도, 부산에서도, 그리고 짧은 분량의 한계로 하나하나 나열하지 못하는 그 많은 영화제들 중에서도 나는 항상 화제성과 동떨어진 영화들을 주로 보곤 했다.
다행인 것은 어쨌든 수입 됐다는 것이다. 행사장이 아닌 곳에서, 행사 기간을 벗어난 때에서나마 그 화제작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큰 위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안도감 정도를 느낀다. 이런 유치한 투정은 제쳐두고 어쨌든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가 개봉했다.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공포나 두려움보다 오랜만에 그럴듯한 공포영화를 만나는 것인가,라는 설렘에 가까운 감정이 담겨있었다.
2.
잭 델로이가 진행하는 심야 토크쇼 <올빼미 쇼>는 방송 시작과 동시에 치솟는 인기를 얻지만 경쟁 방송사의 토크쇼에 밀려 만년 2위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와중에 진행자 잭이 사이비 종교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잭의 아내 매들린이 폐암으로 사망하게 되자 <올빼미 쇼>의 인기는 곤두박질친다.
1977년 핼러윈 전날 밤, <올빼미 쇼>는 심령술사를 비롯한 초현실현상 관련 인물들을 초청해 마지막 반등의 기회를 잡고자 하지만 생방송 도중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해당 방송분은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47년 후, 미국 방송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되었던 그날의 <올빼미 쇼>가 미공개 비하인드 영상과 함께 공개된다.
3.
줄거리만 봐도 알 수 듯이, 영화는 파운드 푸티지와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띠고 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파운트 푸티지 장르인데, 꽤 그럴듯하다. 요즘 시대 사람들이라면 자료화면 정도로만 접해봤을 그 시절 미국 토크쇼를 훌륭하게 재현해 냈다. 등장인물들의 패션은 물론이고, 세트와 미술, 화면 비율에 심지어 전반적인 색감과 화면 질감까지 1970년대를 빼다 박은 모습이 썩 인상적이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함께 공개되는 비하인드 영상분이 너무 현대적이라 한두 번씩 이질감이 들긴 하지만, 감안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 본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생명은 지금 보고 있는 이 영화가 실제로 '발견된 영상'이라는 믿음을 관객에게 심어주는 것에 있다. 방송 중에는 초심리학자와 회의론자의 대립이, 방송 뒤에는 해당 소재를 중단하려는 자와 강행하려는 자의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며 이 입씨름이 꽤 큰 몰입감을 가지고 있다. 위와 같이 실감 나게 구연한 <올빼미 쇼>의 화면에 입씨름이 더해지면 우리는 어느새 토크쇼의 시청자가 된다. 개봉 후, 많은 관객들의 후기처럼 의외로 공포는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올빼미 쇼>의 관객석에 앉아있는 경험을 일정 부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취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영화는 본격적인 극이 시작되기 전, 1970년대 혼란에 빠진 미국의 사회상을 줄줄이 설명한다. 굳이 영화가 따로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베트남 철군을 위시하여 반전과 반문화의 절정에 다다랐던 미국의 70년대를 알고 있다. 영화는 이를 기조로 설정을 따와 이 시대의 혼란을 달랬던 것이 토크쇼라고 설명한다.
재밌는 것은 영화 속 <올빼미 쇼>는 그 사회를 달랬어야 할 토크쇼였음에도 욕망과 폭력, 의심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잭과 방송국 사람들은 시청률 상승을 위해 끊임없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시청자와 게스트의 안위보다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많은 이목을 끌지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통해 미디어와 업계 종사자가 가진 욕망과 폭력성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아내를 떠나보낸 후 떨어진 시청률을 만회하기 위해 일종의 '프릭쇼'를 진행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카마이클은 오컬트 회의론자라는 타이틀을 꾸역꾸역 각인시키기 위해 나오기라도 한 듯, 진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초자연현상 관련 게스트들을 비꼬고 힐난한다. (사실상 피해자일 뿐인) 릴리는 자신의 몸을 빌려 악마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 토크쇼에 1970년대를 달랠 사람은 없다. 오히려 혼란의 사회상을 대변하여 보여줄 뿐이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해 보면 이 영화는 1970년대의 사회상,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미디어의 속성, 황색 저널리즘, 그리고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관한 풍자라고 볼 수 있다.
5.
영화 초반, 잭이 속한 (신흥 사이비 종교 따위로 보이는) 일종의 사교모임인 그로브의 행위를 스치듯 연속으로 보여준다. 자세히 묘사되지 않았지만 악마 숭배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로브는 릴리가 속했던 종교와 일정 부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릴리가 속한 악마숭배집단의 의식을 보여줄 때에도, 직접 악마를 소환할 때에도 큰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는 곧 잭과 그로브 또한 악마숭배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추측까지 확장된다. 잭에 대한 의심은 이미 그를 알고 있는 듯 그의 치부를 언급하는 릴리를 보며 더 커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영화 말미 잭이 악마 숭배자들의 재물이 되어 의식을 치르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위 두 가지 의식과 더불어 한 가지 의식이 더 등장한다. 핼러윈 특집 <올빼미 쇼>는 고꾸라진 시청률과 인기를 반등시키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잭이 달랜 것은 시대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며 그 재물은 시청자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뿐만 아니라 본인까지 희생되며 최악의 결말을 향한다. 하지만 잭은 희생양임과 동시에 스스로 미디어가 만든, 어쩌면 미디어를 이용한 악마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영화는 이중적이고 아이러니한 욕망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6.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잔기술에만 기대지 않는 행보와 의외로 그럴듯한 메시지를 담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영화 말미, 모든 것을 잃고 재물들의 죽음 속에서 허무한 잭을 보며 느낀 감정은 배가된다. 이 영화가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최고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 사이에서 꽤 긍정적인 의미로 회자될 영화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