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유소가맥 May 18. 2024

전편에 대한 예우와 새로 선택할 노선이 공존하는 출사표

2024_20.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1.

 최근 본 트릴로지 중 좋았던 것들을 생각해 보자. 여러 영화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감정적으로 가장 섬세했던 시리즈는 두말할 것 없이 <혹성탈출> 트릴로지일 것이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처음 봤을 때,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이렇게까지 섬세한 감정 묘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에서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바톤을 이어받은 맷 리브스 감독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과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하 <혹성탈출 3>)으로 이어지는 시저 3부작을 능수능란한 솜씨로 완성해 냈고, 그렇게 내 인생 손에 꼽는 트릴로지가 되었다.


2.

 가끔은 영화가 너무 마음에 들어 속편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미 그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한 영화인데, 굳이 필요 없는 이야기를 덧붙였다가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는가. 작품을 그 자체로 놔두고 싶은 개인적인 심리도 있지만 케케묵은 표현으로 노파심을 표현하자면 박수 쳐줄 때 떠나라는 말이기도 하다.


 <혹성탈출 3>이 개봉하기도 한참 전에 속편 제작을 확정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은 말 그대로 '굳이?'였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이하 <혹성탈출 4>)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조금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려에서 더 나아가 아니꼬움이 있었던 영화였다. 다행인 점이라면, 그 아니꼬운 우려가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말갛게 희석되어 버렸다는 것. '굳이'와 '아니꼬움'도, 그리고 내심 간직했던 작은 기대마저 저 너머로 아늑히 사라져 버린 2024년 5월 초, <혹성탈출 4>가 개봉했다.


3.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영화는 <혹성탈출 3> 이후 몇 세대나 지난 어느 시점을 다루고 있다. 어느 날 독수리 부족이 프록시무스 무리에게 공격당하고, 살아남은 독수리 부족원 노아는 프록시무스 무리에게 끌려간 독수리 부족들을 구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노아는 여행 길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위대했지만 잊혀진 과거의 리더, '시저'의 가르침을 배우게 된다.


4.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신선한 내용은 아니다. 리부트 3부작을 제외하고서도 이미 5편이나 있는 과거 <혹성탈출> 영화들을 통해, 그리고 굳이 <혹성탈출>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류의 여러 콘텐츠들을 통해 숱하게 들어왔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논점은 '타 종족 간의 공존'이다. 다만, 소재가 신선하지 않다는 것은 말 그대로 '소재가 신선하지 않다'에서 그치는 것이지, 그것이 영화 자체에 대한 불호평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혹성탈출 4>는 전작에 대한 충분한 예우를 갖추면서도 동시에 앞으로 이 시리즈를 어떻게 이어 나가겠다는 그럴듯한 출사표를 던진다.


5.

 기존 3부작이 큰 호평 속에 마무리되었기에 직접적으로 연계된 이야기를 다루기에는 부담이 컸을 것이다. 게다가 시저의 죽음으로 장엄하게 시리즈를 마무리한 이상, 바로 직후 이야기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족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즉, 이 영화는 기존 <혹성탈출> 리부트 3부작의 속편이지만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구성할 방책이 요원하여, 직전 작품에 기댈 수 없는 골치 아픈 상황에서 기획되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본 편이 선택한 방법은 아예 과거로 넘어가는 것이다. <혹성탈출 4>는 <혹성탈출 3>가 아닌, 1968년 작 <혹성탈출>로 60여 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가 버린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극 중 명확하게 표현되진 않았지만 영화 외적으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시저 사후 300년 뒤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오리지널 <혹성탈출>과 같이 이미 인류의 퇴화와 유인원의 진화가 충분히 이루어진 시대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오리지널 <혹성탈출>의 프리퀄(은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이라면, 본편은 <혹성탈출>의 리메이크에 가깝다. 흡사한 배경을 기반으로 영화 팬들이라면 하나하나 찾아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쏙쏙 집어넣었다. 특히 인간 사냥 장면은 노골적으로 <혹성탈출>이 떠오르게 하는데, 물론 사냥 목적을 비롯하여 여러 디테일한 요소들에 차이는 있지만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면에서 <스타워즈>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한다. 우리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새로운 3부작을 시작할 때,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의 리메이크에 가까울 정도의 흡사한 영화(<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들고 나온 것을 본 경험이 있다. 익히 알고 있는 틀 안에서 변주를 주며 새로운 시리즈를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혹성탈출 4>는 그 궤가 같다.


6.

 그렇다고 전편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지난 3편 동안 어마어마했던 존재감을 보였던 시저 또한 잊지 않고 챙긴다. 사실 이 영화는 140여분 동안 진행되는 시저 추모사로 보이기도 한다. <혹성탈출 4>에서 시저는 인물 자체로는 잊혀졌지만 일종의 종교적인 형태로 유인원들의 일상에 스며들어있다는 설정이다. 누군가는 시저의 철학을 고찰하고 누군가는 하나의 타이틀이 되어버린 '시저'라는 호칭을 얻고자 계략을 세우기도 한다. 영화는 노아가 시저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는 것에서 시작하여 시저라는 인물이 가졌던 철학에 대해 다시 한번 고뇌하며 마무리된다. 즉, 시저는 없지만 시저의 위대함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진다.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

 요 근래 이런저런 이유로 세대교체를 진행하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들이 많은데, 이런 류의 영화들은 대다수 전편의 캐릭터들을 깎아내리며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를 추켜 세우는 아주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기획하는 영화 제작자들은 새로운 인물을 성공적으로 소개하며 전작 주인공에 대한 예우를 지키는 <혹성탈출 4>의 방법을 충분히 참고할 필요가 있다.


7.

 결국 이 영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계승'이다. 영화 자체만 보자면 오리지널 <혹성탈출>을 계승하느냐, <혹성탈출 3>를 계승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이며, 영화 내적으로는 '시저를 계승하는 것은 누구인가', '시저를 계승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지난 3부작 내내 <혹성탈출> 시리즈는 '유인원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졌다. 3부작을 이끈 시저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군상을 마주하지만 결국 모든 인간을 용서한다. <혹성탈출 3> 말미, 시저와 맥컬러 대령의 최후 대치 장면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번 편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노아는 인간 위에 군림하려 했던 악당 프록시무스를 일정 부분 긍정하는 얘기까지 하며 인간과 유인원의 완전한 공존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메이 역시 프록시무스에게 화기가 넘기느니 독수리 부족의 수장을 선택을 한다. "유인원을 위한 게 아니야"라는 메이의 말과 "유인원을 위한 건 뭔데? 그렇다면 다시 침묵으로 돌아가라고?"라는 노아의 말은 결국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두 집단 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이는 같은 하늘을 보며 전혀 다른 것을 찾은 인간과 노아를 대비시키는 엔딩 시퀀스를 통해 더더욱 크게 부각된다. 지난 3부작을 통해 결국 공존을 선택한 유인원들을 보였다면, 새롭게 시작한 <혹성탈출>에서는 유인원들이 다른 노선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선택을 기대하게 된다. 속편이 궁금해지는, 그럴듯한 새 출발이라는 의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심과 폭력의 시대,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디어의 민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