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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Jun 01. 2024

엔진과 화기의 시대, 핏빛 복수를 향한 잿빛 서사시

2024_22.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1.

 문명사회가 붕괴된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사회 구성의 기본이 되는 모든 것들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야만적인 본성만이 남았다. 이런 절망의 시대에도 일말의 풍요가 남아있는 곳이 있다. 바로 '녹색의 땅'이다. 퓨리오사는 녹색의 땅에서 나고 자란 아이다. 평화로운 날도 잠시, 바이커 군단 일원들이 퓨리오사를 납치하고, 그들의 지배자 디멘투스에게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녹색의 땅에 다시 돌아가 씨앗을 심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퓨리오사는 오랜 시간 복수를 계획한다.


2.

 <매드맥스>가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매드맥스> 시리즈의 '퓨리오사'가 돌아왔다. 기존 3부작 영화 이후 새롭게 리메이크까지 '미친 맥스'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던 조지 밀러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맥스가 아닌 다른 인물을 메인으로 들고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맥스와 퓨리오사의 이야기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것이 어떻게 영화를 통해 비치고 있는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우선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제목이 먼저 눈에 띈다. 'saga(서사시)'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퓨리오사와 매드맥스 세계관의 대서사시를 다루고 있으며, 이는 본편을 감상할 때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본 작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보다 훨씬 더 서사에 집중하고 있다. 전 편의 대부분 장면들이 쉼 없이 몰아치는 액션의 연속이었다면 이번 편은 보다 이야기의 비중을 높였다. 요컨대 전편의 경우 관객들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며 숨 가쁘게 영화를 진행했다면 이번 편은 관객들에게 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극 중 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다.


3.

 '서사시'임을 강조하듯 퓨리오사 일대기를 선형적으로 풀어놓는다. 좋게 말하면 전통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나쁘게 말하면 다소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는 어린아이에서 지휘관까지 몇 년의 시간을 걸쳐 퓨리오사의 인생을 짚고 넘어가지만,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애할 수 있는 플래시백과 같은 형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퓨리오사의 잘린 머리카락이 걸린 나무가 자라는 장면과 같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클래식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어떻게든 시간을 역행하지 않고 퓨리오사 연대와 영화 관람 시간의 벡터값을 일치시키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몇몇 관객들이 영화 초반 지루함을 느꼈다고 토로하는 이유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영화는 시간의 흐름이나 강렬한 사건을 단 한 장면으로 응축시키곤 한다. 머리카락 장면 또한 이와 상통한다. 앞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머리카락 장면은 퓨리오사가 성장하는 긴 시간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 장면이다. 퓨리오사 캐릭터의 시그니처라 볼 수 있는 의수 또한 마찬가지다. '퓨리오사의 왼팔은 왜, 어떻게 잘렸는가'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가장 해결하고 싶은 의문이었을 것이다. 길게 끌고 갈 수 있었을 사건이었음이 분명함에도 영화는 짧고 강렬한 단 한 장면을 통해 관객들의 의문을 해소하고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를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4.

 서사의 비중이 커졌다는 의미는 그만큼 액션의 비중이 줄었다는 말과 같다. 다만 비중의 감소가 질적 하락과 직접적으로 연관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 이어지는 사막이라는 공간적 특성상, 자동차 액션을 펼쳤을 때 도심에서 펼쳐지는 레이싱보다 여백이 많이 느껴질 수 있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이를 해결한 방법은 기다란 장대를 가지고 차 사이를 뛰어다니던 워보이들과 몇몇 무기들이었다. 그 규모가 어찌 되었든 결국 자동차는 화면을 횡단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화면 속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워보이로 배경을 종단하는 움직임을 활용함으로써 여백을 채워 넣었다. 심심하면 쏴대는 불줄기와 무리 앞에서 기타를 치는 퍼포먼스는 요란하게 시선을 빼앗는 데 충분했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해당 영화보다 과거 시점을 다루고 있는 속편인 이상 같은 방식의 액션을 그대로 차용할 수는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 이런 심심함을 대체할 것인가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퓨리오사>는 이 우려를 단숨에 종식시킨다.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하늘을 아예 날아다니며 펼치는 액션은 전편의 장대 액션을 완벽하게 대체하며 오히려 더 큰 역동성을 불어넣는다. 이와 더불어 전편에서는 비중이 없던 차량 하부 쪽까지 액션의 무대로 활용한다. 즉, 차량을 구심점 삼아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가려는 팽팽한 탄성을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액션의 무대가 보다 입체적으로 구현된다.


 퓨리오사가 구현하는 액션의 변화도 눈여겨볼만하다. 처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숨기며 이동하는 것이 중점적이었던 퓨리오사의 액션은 한 장면을 기점으로 앞에 나서서 자신의 능력을 대놓고 드러내는 전투방식을 택하는데, 이는 단순히 액션 스타일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캐릭터의 내적인 갈등과 성장을 시각화하는 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5.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을 고르자면 차량도, 기름도, 무기도 아닌 씨앗일 것이다. 모든 것을 잃고 황폐해진 지구를,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을 목도한 이후에도 퓨리오사는 녹색의 땅으로 돌아가 씨앗을 심고자 한다. 씨앗은 퓨리오사가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며, 씨앗을 심는 것 또한 어머니와의 약속이다. 요컨대 어머니-자식의 연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재이다. 동시에 씨앗은 사막화된 환경을 변화시킬 희망을 상징하는 반면, 그녀의 복수심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거사를 치르기 직전 씨앗을 입안에 넣곤 한다. 그리고 이는 씨앗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과 직접 접촉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즉, 그녀에게 복수를 위한 거사는 어쩌면 자신이 살아있음을 각인시키는 수행과도 같음을 보여준다.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디멘투스를 고문하거나 죽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내는 복수를 펼칠 수 있었던 것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다. 퓨리오사의 씨앗은 디멘투스의 악행에서 빠져나온 생명이고, 동시에 디멘투스를 향한 복수심이자, 그에게 죽은 어머니와의 연결고리다. 때문에 디멘투스를 양분 삼아 다시금 열매를 만들고 이를 또 다른 어머니들과 공유하는 것은 단순히 '열매를 나눈다'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녀는 씨앗은 단순히 나무를 키우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퓨리오사의 여정이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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