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한 지 40년,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공고히 하는 수작
저자: 존 드릴로
출판사: 창비
별점: ★★★★☆ (4.5)
난이도: ★★★☆ (3.5)
한줄평: 미국 사회를 다양한 표현으로 꿰뚫는 통찰력이 빛나는, 그런데 재미도 있는 대단한 소설
내가 읽게 된 경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인 노아 바움백의 신작을 넷플릭스에 시청한 후, 감명받아 도서관에서 바로 책을 빌려서 읽게 되었다.
읽은 시기: 2024/01/08~11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봤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소설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감독이라 믿고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봤는데, 그 알약이 "죽음의 공포를 없애는 약"이라는 데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처음부터 알약을 강조하고 기대를 높여놓아서 과연 김새지 않게 이야기를 잘 끝낼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어우 훌륭했다. 한편 책에서는 알약의 정체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알약의 정체에 대한 서스펜스를 몸소 느껴서 재밌었다.
영화를 처음 보고 너무 당황스러웠던 건 노아바움백 감독님의 영화를 볼 때 예상하던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독님의 이전 작품에서 '난해함'은 잘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감독님의 스타일은 원래 논리 정연한 반면 <화이튼 노이즈>는 거칠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니 그런 부분이 이해되었다. 나로서는 지적할 게 없는 충실한 각색이었으나 그럼에도 600쪽짜리 책을 직접 읽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에서 지나가는 유식한 말들은 나의 이해력 부족으로 소화를 못 했는데 책은 내 속도로 읽으니까 그런 문장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영화도 선방했으나 책 승리.
어렵다. 분명 아는 단어로 구성된 말인데 어느샌가 내 이해를 훌쩍 뛰어넘어 두둥실거린다. 그렇지만 그 문장을 느낌대로 받아들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난이도를 결정하는 건 문장뿐만이 아니라 책의 길이다. 이 책은 600쪽 가까이 되기 때문에 끝내려면, 조금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스타일은 참 인상적이다. 문체도 그렇고, 대화들은 또 얼마나 깊은지 따라가기 벅찼다. 이곳저곳에 자리한 통찰의 시비여부를 내가 판단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읽으면서 알량하게 책의 이런저런 고찰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지만 이 작품은 그런 시늉도 할 수 없을 만큼 생각해 본 적 없는 틈새의 통찰이 깊었다.
그래서 너무 구체적인 표현은 공감되기보다는 놀라웠다. 작가는 두리뭉실하게 무언가를 기억해 내거나 흉내 내는 게 아니고 명확하게 관시하고 있는 현상이 있어 보였다. 내겐 벅찬 내용이었지만 아마 미국인들은 좀 더 잘 이해했으려나. 예를 들자면 총이나 폭력에 대한 의견, 소방차를 보면서 부자가 나누는 유대감에 대한 인상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슈퍼마켓이 그렇게 인생을 비유할 수 있는 원형을 지닌 곳인지 미처 몰랐다. 병원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다. 종교를 싫어하지만 종교의 역할과 믿음에 대해서, 믿지 않기 위해 믿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첫 번째,
"그 아이는 자기가 죽을 거라는 걸 몰라요. 죽음에 대해 전려 모르죠. 그 애가 가진 이런 무구한 축복을, 어떤 해악에서도 면제된 이런 면을 소중히 여기시는 거예요. 지식 이전의 존재요, 전능한 아이니 까요. 아이는 모든 것이요, 어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람의 한평생은 모순을 풀어가는 과정이잖아요."
이 부분이다. 생각할수록 격한 표현 속에 사실이 있다. 처음에는 삶에 반짝이며 찾아오는 모순의 실마리, 그것을 풀면 문제가 해결되고 삶의 해답을 얻을 것 같다. 그러나 그걸 파고들수록 모순을 풀다가 죽게 될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이와 별개로 어른으로 전락하는 과정이다. 모순을 충분히 풀기에 인생은 죽음과 너무 가까운데, 풀지 않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 모순을 풀지 않는 자들은 모순을 직면하려 하는 지루한 자들보다도 한심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인 것 같다. 지루한 A를 고르지 않으면 한심한 B가 된다. 순수할 수 없으며 순진할 뿐이다. 어른이 모순을 모르는 건 멍청하지만 아이가 모순을 모르는 건 당연하기 때문에 빛을 간직하고 있다. 인생은 반짝이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빛을 잃는 듯하다. 빛을 간직하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기만하며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기만을 일삼는 성인만큼 기피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그래서 어린이 상태는 정말 별 게 아닌데 별 거다. 미세하지만 애초에 작은 삶에서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차이이다.
두 번째,
"당신은 지금 어쩌면 기억력을 손상하는 부작용이 있는 뭔가를 복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거야."
"내가 뭔가를 복용하고 있으면서 기억을 못 하거나, 아니면 뭔가를 복용하고 있지 않으면서 기억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지. 내 삶은 양자택일이니까. 보통 껌을 씹거나 무가당 껌을 씹거나. 껌을 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체중이 늘거나. 체중이 늘거나 운동장 계단을 뛰어오르거나."
"따분한 인생처럼 들리네."
"그래도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어"
이 대화가 설명하는 삶은, 삶이 매력을 잃을 정도로 단조롭고 의미 없는 고통의 반복이다. 그래서 나는 그 대화의 끝이 '그래도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어'일지 몰랐다. 어느 사람은 그러한 자각에서 죽음과 한 발짝 친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버벳이 정말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걸 느꼈다. 또한 뻔하지만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느꼈다. 죽음이 정말 삶에 의미를 만드는구나. 매시 째깍되는 수명의 시계는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성장하게 하고 감정을 느끼게 한다. 저런 의미 없는 고통의 반복, 죽음이 없었다면 죽음으로 피하고 싶었을 것 같다. 우리는 별 것도 아닌 나이의 차이도 비약적으로 확대하여 받아들인다. 10살짜리 아이와 20살 성인의 존재로서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저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제한이 존재할 뿐이다. 이 책에서도 그렇고 (머리가 광고의 타겟 대상을 얘기할 때) 아이를 그렇게 찬양하는 것을 보면 만약 죽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 아니었다면 인간은 얼마나 그 개념을 추앙하고 신격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슬프지만 그게 슬픈 건 이렇게 꽉 채운 수명동안의 삶을 잊는다는 것이다. 죽음은 삶을 이보다 꽉 찰 수 없게 가득 채운다.
물건들, 상자들. 이런 소유물들이 왜 이렇게 슬픈 무게를 지니고 있을까? 그것들엔 어떤 어둠이, 일종의 불길한 예감이 달라붙어 있다. 그것들을 보면 개인적인 좌절과 패배가 아니라 범위와 내용에서 뭔가 좀 더 일반적인 것, 뭔가 좀 더 거대한 것을 경계하게 된다.
역사에 내재한, 그리고 인간 자신의 피의 흐름애 내재한 인간의 죄책감은 테크놀로지라는 일상적으로 스며들며 믿음을 저버리는 죽음 때문에 복잡해졌다.
우리가, 어른과 아이 모두가 불가해한 것들을 공유하는 마술단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 - 삶의 이런 부차적인 차원들, 존재의 초감각적 번득임과 부유하는 뉘앙스, 예기치 않게 형성되는 관계의 망을 느끼는 순간이다.
"파동과 방사지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미국 가정의 원동력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밀폐되고, 시간을 초월하고, 자기 완결적이고, 자기 지시적인 매체. 마치 바로 우리 집 거실에서 탄생하고 있는 신화 같고, 꿈결 같고 전의식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무엇 같기도 해요"
그녀의 도움으로 난타당한 시체 두구와 냉장고에 든 시리라인, 그리고 60만 달러에 달하는 불법 자금 추적용 지폐가 숨겨진 곳을 찾아냈지만 매번 경찰이 찾던 것이 아닌 엉뚱한 것이었다고 기사는 결론을 맺었다. 미국적 미스터리가 깊어지고 있다.
군중이 된다는 건 죽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나는 개인진료소보다 차라리 응급실에 가는 편이 더 좋다. 그곳은 배에 총을 맞고 칼에 베이고 합성아편을 맞아 눈이 풀리고 팔뚝에 부러진 주사 바늘을 꽂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도시적 전율의 원천이다. 이런 사태들은 결국엔 찾아올 나 자신의 죽음, 즉 비폭력적이고 소도시적이며 사려 깊을 나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죽음이 단지 소리일 뿐이면 어쩌지?" "전기 소음이지.'" "그 소리가 끝없이 들려. 사방에서 들려와. 아, 끔찍해." "균일한 화이트 노이즈." "때로는 날 압도해." 그녀가 말했다. "때로는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난 이렇게 말을 걸어보려고 하지. '죽음아, 지금은 안돼.'"357쪽
"선생 생각은 엘리트적 발상이에요. 식료품을 봉투에 담아 주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봉투에 담고 싶은 흥미로운 식료품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가요,라고 말이에요."
"이건 죽음이에요. 죽음이 잠시 머뭇거려서 전공논문을 한편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70년이나 80년 정도 아주 멀리 가버렸으면 하는 거라고요."5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