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이여 합류하라!
두번째. 다정한 동맹 결성
“언제 한번 밥 먹자.”
한국인들의 독특한 인사법이라고 할까. 안녕히 가시라는 말만 하기에는 어쩐지 정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다음 만남의 날짜를 명확히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관계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문장일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대체로 ‘진짜 밥을 먹자는 건 아니고, 언젠가 이래저래 마주치게 되면 밥 한번 같이 먹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부담을 서로에게 주지 말자, 오케이?’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작업실 한 번 놀러 와.”
예술인들, 특히 개인 작업실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언제 한번 밥 먹자는 인사와 다르지 않다. 허공을 부유하는 이 현대식 인사말이 현실에 밀착해 진짜로 실현될 때는 대체로 양쪽 중 한 명이 강하게 밀어붙일 때다. 그러면 상대방은 이래저래 끌려오기 마련이고.
이번에는 드물게도 쌍방이었다. 모임장의 인사말에 내가 반응했고, 그도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왔다. 어쩌면 그도 이런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임의 취지에 적극 동조하고 함께하고자 뜻을 모으는 동료가 찾아오기를 말이다.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는 모임장의 연남동 작업실은 ‘제대로 갖춰진’ 곳이었다. 내가 뭐라고 제대로인지 아닌지 판단하나 질타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변명을 남겨 본다. 나는 전문 음악인은 아니지만, 오랜 광고 제작사와 대행사 근무, 다큐멘터리와 영화 작업등을 하며 녹음실을 수없이 들락거렸고, 특히 전설적 밴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면서 어깨너머로 ‘업계 최고급’ 녹음 시설들을 둘러볼 기회도 꽤 있었다. 반대로 ‘음악한다’고 하는 지인들의 소규모 작업실도 종종 방문해 봤었는데, 구조나 장비 등에서 많이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조건 비싼 제품을 쓴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정의 투자는 필요할 수밖에 없다. 작업실의 퀄리티가 음악의 퀄리티와 등치 된다는 말도 당연히 아니다. 당연한 논쟁까지 가지 않고 변명을 마무리 짓자면, 여하간 이러저러한 내가 그의 작업실에 이래저래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디자이너의 가구들과 기역자 벽 전체를 커다란 유리로 마감하며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 거실, 커피와 위스키, 책과 음악이 녹음실과 작업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구조도 흥미로웠다. 작업실의 세포 하나하나에 그의 숨결이 닿아 있었다.
근처 빵집에서 사 들고 간 호두 파이와 소금빵을 그가 직접 내린 게이샤 원두커피와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음원 제작자로서 홀로 창업한 지 14년 차에 ‘차트를 올 킬 한 적도 있다’는 그는 시쳇말로 ‘굳이 이런 모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업계에서 인정받고 고정 팬 층도 두터운 그가 굳이 ‘가끔 현타도 오고’,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는 모임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커피에 이어 고가의 위스키를 한 잔씩 나눠 마시며, 우리는 경량화되고 개인화되는 사회에서 로컬과 다정함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상업적인’ 음악을 평생 하다 보니, 한정된 사람들과 교류하게 됐고,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필요했다고 한다. 비교적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따뜻한 가사를 쓰는 그에게는 일종의 전환점도 필요했을 것이다. 좀 더 거시적으로는 마포구를 기반으로 한 예술인들의 모임을 통해 ‘자발적 호의’를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연대를 만들고자 했다.
‘자발적 호의’라 함은 업무적으로 사소한 도움의 손길이나 조언일 수도 있고, 나아가서 협업이 될 수도 있겠다. 때로는 각자의 인맥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단순 고민 상담도 가능할 것이다.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끼리 서로 호의를 갖고 있다 보면 뭐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느슨한 연대의 장점은 기대도 느슨해진다는 것이다. 기대하면 실망이 따라오게 된다. 기대하지 않으면, 작은 호의가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오고, 조금이라도 더 큰 호의를 돌려주고 싶어지게 된다. 자발적 호의는 그렇게 서로를 핑퐁처럼 오가며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순환의 그림 또한 지나친 기대일 수도 있지만, 잘되지 않더라도, 이 정도 기대와 실망은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엔터 업계에서 잔뼈 굵다’고 하는 그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자신이 있어 보였다. 아이같이 순수한 표정과 말들 속에서도 놓지 않는 단단함과 고집도 느껴졌다. 그가 자신의 취향과 고집대로 만들어낸 훌륭한 작업실처럼, 자신만의 모임과 연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지향점은 분명해 보였다.
“금을 체에 걸러내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어쩌다 진짜 빛나는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어?”
툭툭 오가며 내뱉는 문장들에 이 모임의 가치와 철학이 묻어 있다. 아직 정제되지 않고,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집단이며, 언제 어떻게 와해하거나 흐지부지될지도 모르는 (예술인들 모임은 꽤 그런 경향이 있다) 불안한 상태지만, 정제되지 않은 만큼 예상 못 한 기가 막힌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정함과 연대, 그것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적어도 이 동맹 결성의 기치와 철학은 그러하다.
“사랑이 최고의 예술이자 가치죠.”
우리의 대화는 사랑을 예찬하며 끝을 맺었다.
예술인들이여, 이 느슨하고 다정한 동맹에 합류하라!
*매주 모임에 참여하는 예술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나무는 죽어서도 아름답습니다.
가구에 진심인 가구 디자이너 박요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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