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나 2등이나 내겐 그게 그거

영화<상류사회>를 보고

by 영화킬러


워낙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는 잡식성 취향의 관객인지라 그때그때 내키는대로 영화를 선택하지만, 가끔은 특별한 이유 때문에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 때도 있다. 바로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의리로 보는 영화들이 그렇다. 그래서 변혁 감독의 이전 두 작품 2000년 이정재, 심은하 배우의 <인터뷰>도 2004년 한석규, 이은주 배우가 나왔던 <주홍글씨>도 감독때문이 아니라 배우때문에 챙겨 봤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박해일, 수애 배우에 대한 의리로 안 볼 수 없었던 영화 <상류사회>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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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만큼만 하자!


학생들에게 인기많은 대학교수인 장태준(박해일)과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야물딱진 미술관 부관장 오수연(수애)은 부부다. 그룹 오너의 부인 이화란(라미란)을 관장으로 모시며 일하는 수연은 자신이 진행하던 재개관 프로젝트가 순조롭지 않자 관장을 찾아간다. 그때 관장인 라미란 배우가 차갑게 뱉어내는 "주제만큼만 하자!"라는 이 짧은 대사는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의식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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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TV토론 방송에 출연한 태준이 하는 하는 말


욕망을 금지하는 것,
그거 전체주입니다.
욕망을 제멋대로 날뛰도록 하는 건,
자유방임이구요.
욕망을 합의적인 수준에서
조절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시민사회의 응당한 책임이죠


사람이 욕망을 가진다는 것은 당연하고 그 욕망을 적절히 조절해야한다는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그



집에서 팩 붙이고 금지곡을 부르고 있는 태준에게 수연이 정치를 할 거냐 묻자, 태준은 때가 되고 기회가 오면 못할 게 뭐냐고 대답한다. 그 말에 이렇게 대답하는 수연


나는 자기가 때가 오면
놓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근데 나는
자기가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때를 만드는 사람이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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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에게 바라는 것 이상으로 자기 자신의 야망이 큰 수연은 회장을 직접 찾아가 관장자리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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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자살을 시도한 노인을 구하고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태준은 총선 출마 제의를 받고 승승장구, 수연은 한국으로 돌아온 옛 연인 신지호(이진욱)의 작품을 재개관전 메인 전시를 끌어오기 위해 그와 함께 파리로 떠난다. 그리고 태준은 자신의 비서와, 수연은 옛애인과 함께 외도를 하는데...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수연은 비서에게 찾아간 후, 태준을 만나 이렇게 얘기한다.


태준 :
내가 한번이라도 이런 문제로 당신한테
뭐 신경 쓰이게 한 적 있어?
수연 :
내가 한번이라도 이런 문제로 당신한테
뭐라 그런 적 있어?
다른 사람한텐 걸리지 말라고
당신 인생망치면 나까지 피곤해져.
태준:
야, 너 힐러리같다.
수연 :
그러니까 당신도
클린턴 되고 나서 사고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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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롭기만 한 것 같던 그들의 상류사회로의 입성은 난관에 봉착하고 심지어 약점까지 잡히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데...

이 나라가 좋은 게요. 다들 부족해.
자기 가진 돈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이 나라가 좋은 게요. 다들 억울해.
자기 자리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어.
다들 저 꼭대기가
자기 자리라고 믿고 살아.








역시 결말은 밝히지 않겠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느낀 점은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응당 궁금해야 할 다음 이야기가 전혀 궁금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결말마저도... 도대체 이렇게 화려한 캐스팅에 뭐가 부족해서 그럴까, 나만 그렇게 느낀건가?


++ 너무 익숙해져버린 반복되는 상류층의 묘사
행위예술이라며 벌이는 파격적인 성행위, 약한 상대를 향해 재미로 즐기는 폭력, 정경유착, 폭력배와의 커넥션 등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상류사회의 모습들은 이미 다른 영화에서 보아 온 익숙한 것들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비슷한 소재라도 이 영화만이 가진 볼거리와 이야기가 부족해 보인다.


참 이상해.
너넨 왜 그렇게 재벌해체하라고
데모하고 욕하는거니?
속으론 부러워 하면서.
잘들어 오수연,
재벌들만 겁없이 사는거야.
당신은 그러면 안 돼. 겁내야지.


++ 매력은 있지만 어중띤 등장인물들

술에 취해 비틀대며 겁도 없이 조폭 대장(김강우)을 발로 차는 박해일 배우의 연기와 차갑게 비꼬는 말투, 표정이 압권이었던 라미란 배우의 재벌 사모님 연기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수연의 외도를 너무 쉽게 용서하고 이성적인 모습이 되어 그녀를 격려하는 태준의 모습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고, 명색이 조폭 대장(김강우)이라는 사람은 사시미 칼로 회뜨는 장면빼고는 별로 폭력적이지도 않고, 오래전 뻥 차였던 옛 연인 신지호(이진욱)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수연이만 좋댄다. 그 중요했던 베드씬마저도 열렬하고 뜨거운 장면이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어중띤 키스 장면으로 그쳤으니 몇몇 관객이 보고 싶은 베드씬은 스리슬쩍 넘어가고, 보고 싶지 않은 윤 배우의 베드씬은 오랫동안 실컷 봤다고 투덜거리는 것도 이해가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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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겐 크게 다를 게 없는 1등과 2등
변혁 감독은 인터뷰에서 저 밑바닥에서 1등이 되려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라, 1등이 되고 싶어하는 2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감독의 의도를 읽고나니 시작부터가 적어도 내게는 재미있을 수 없었겠구나 싶다. 상류사회를 그린 대표적인 영화로 떠오르는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돈의 맛>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그려내는 진폭만으로도 흥미진진했는데, 상류사회와 그들의 언저리에 가까운 주인공들의 차이는 그리 크다고 느껴지지 않았으니 뭐 그리 발버둥이냐 싶을 수 밖에.


화제작의 조건은 다 갖췄네.
작품이 일단 커야 되고,
비싸야 되지.
그리고 이해할 수 없어야 된다.


박해일, 수애 배우의 적극적인 홍보활동에도 불구하고 흥행도 평점도 좋지 않아서 변혁감독에 대한 악플이 너무 큰 영향을 미친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이전 작품에 비해 기억에 남는 톡톡튀는 흥미로운 대사들은 많았다. 항상 좋은 배우들과 작업하시는 변혁 감독님, 다음에는 배우들말고 작품도 더 좋아지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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